예식을 올린 뒤부터 당신은 님편
집안끼리의 만남은 이제 그만, 당사자의 사랑과 행복만 가득하길
일단 전제조건은 며느리나 사위가 어른에게 해야 할 기본적인 존중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거의 모든 고부갈등과 장서갈등은 부모 잘못이다. 자식이 결혼한 순간부터 부모의 역할은 그 둘이 행복하도록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 상식적인 예의 수준을 벗어나 내향적인 사람에게 싹싹하게 먼저 다가와 딸이나 아들처럼 대하는 의전을 요구하거나 명절 때 사돈보다 자신들을 더 챙기길 바라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자녀내외에게 식사를 하자고 하는 등의 특별대우를 바라는 것은 몰상식한 행위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결혼은 집안간의 자산배분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결혼은 부모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따라서 결혼 당사자들의 사랑 여부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결혼에 있어 자녀는 재산이나 물건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결혼은 법적으로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문제이며 실질적으로도 결혼 시점부터 그 이후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을 고르는 각 당사자의 일생일대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변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식을 물건 취급하는 미개한 옛날 제도를 답습하면서 본인들의 소중한 자녀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자식된 입장에서 분명한 것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자식으로서의 최고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결혼을 했다면 그 이후로는 부모보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때문에 만약 자신의 배우자가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자신의 부모에게 예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가 당신의 배우자로 하여금 과한 의전을 요구해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이 있을 때에는 상처받은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조차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지혜롭고 용감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은 각자가 자기 배우자의 변호인이자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일단 결혼을 했다면 부모보다도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의 명예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다.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존중할수록 나도 존중받게 되고 배우자를 우습게 볼수록 그런 사람과 결혼한 나도 우습게 된다. 그것은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부모가 배우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면 자신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뇌를 가졌음에도 본능적인 부분은 대동소이한 것이 많다. 본능적으로 서열을 구분하게 되어있다. 내 배우자를 업신여기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들이댄다면 더 이상 내가 회초리 들고 맘대로 다루던 자식이 아님을 깨닫고 나에게 대해서도 조심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에게 배우자의 험담을 한다면 그걸 부드럽게 변호해서 변명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설령 자신의 배우자가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있더라도 완전히 예의에서 벗어나거나 몰상식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 앞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욕하는 것 자체를 단호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배우자가 전적으로 못했더라도 그 사람과 이혼할 것이 아니라면 내 배우자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의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가 완전히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부터는 며느리나 사위를 대할 때 자녀의 눈치를 보게 된다. 부모가 눈치 보는 것이 뭐 그렇게 좋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며느리나 사위를 자녀 앞에서 험담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눈치 보는 것이 훨씬 좋은 상황이다. 전자의 상황은 방치했을 때 그것이 부부 갈등의 씨앗이 되어 이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후자의 상황은 부부가 서로를 든든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어 더 돈독한 관계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망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부모 입장에서도 설령 자신이 자녀의 눈치를 보더라도 그것이 나은 길이다.
사실 이것은 결혼 전부터 제대로 자리 잡으면 좋다. 오히려 결혼 전에 내가 배우자로 고른 사람에 대해서 부모랍시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자신들의 평가기준에 어긋나면 내 배우자로 허락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서열정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옛 어른들 말씀 중에 틀린 말이 정말 많지만 맞는 말도 있다. 그중 하나가 끼리끼리 논다는 것이다. 자신이 고른 배우자가 부족한 사람이면 거의 100% 확률로 자신도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거나 지금 부모가 나를 신뢰하지 않고 업신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부모의 평가를 돌아보고 정말 타당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나 부모가 내 배우자 후보의 잠재된 폭력성 혹은 불성실을 우려한다면 정말로 곰곰이 그 타당성 여부를 확인해봐야 한다. 다른 것들은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이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폭력성의 경우 이혼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불성실한 성격의 경우 한탕주의 투기나 도박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 내가 모은 재산까지 완전히 날려먹을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확신을 갖고 대해야 한다. 더 이상 내가 배우자로 고른 사람을 자꾸 험담질 하면 부모와 연을 끊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라는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즉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고른 이상 그 사람이 부모보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라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부모라면 나와 연을 끊고 싶지 않은 까닭으로라도 그때부터는 내 배우자를 감히 험담하지 못할 것이며 적어도 부모들에 의해서 우리 부부에게 갈등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주변 기혼 여성들이 남편의 뜻은 '남의 편'이라는 한탄을 하는 것을 꽤 들었다. 시부모와의 갈등 상황에서 남편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면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배우자가 이런 한탄을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내가 평생 데리고 살 사람'이라는, 배우자에 대한 존재인식을 평소에 명확히 한다면 익숙한 위계질서보다 내 인생 전체에서 이 사람이 가진 의미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그에 마땅하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비혼을 택했다는 것은 나 자신을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비혼을 택한 이상 나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도 결혼에 대한 해묵은 잘못된 인식과 각종 오해 때문에 안타깝게도 결혼을 많이들 꺼리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결혼 자체가 맞지 않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눈치를 주는 사회였지만 이제는 정말 결혼이 자신의 온전한 선택이 된 사회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세대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마치 하자 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함부로 지적질이나 충고를 하려 드는 경우들이 많다. 주눅 들지 않고 평생의 반려자로 나를 선택한 만큼 온전한 독립적 주체인 나 자신을 지켜낸다는 생각으로 단호하게 대처해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누구도 감히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 글은 결혼 당사자들보다도 부모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우리 자녀들은 동방예의지국에 태어나서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더러 '그래도 어른인데 네가 먼저 굽혀야지.'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습관은 우리 소중한 자녀를 불행 혹은 심지어 이혼위기로 몬다. 평소에 자녀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 혹은 부모가 자신의 배우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괴롭다는 기혼자들의 고백이 대한민국 땅에서 끊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존재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하고 삶의 다양한 면모를 고찰할 수 있도록 독서도 많이 해야 한다. 나이에 걸맞은 지혜를 쌓아야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령화는 진행되는데 진짜 어른은 많지 않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어른으로 늙어갈 수 있기를, 그래서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이란 말이 나오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