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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아빠 Dec 07. 2023

최고의 신혼집은 비싸지 않아요

 최고의 신혼집 고르는 방법

 퇴근시간,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 4층에서 복도 끝으로 가면 우리 신혼 집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신발장 옆에 작은 부엌과 세탁실이 붙어있었다. 신혼집에서 강렬하게 남는 감각의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는 불편했던 기억이다. 여름에는 세탁조 하수구에서 불쾌한 냄새가 미세하게 올라와 후각이 예민한 나를 불쾌하게 했고 겨울에는 현관문에서 한기가 새어 나와 난방을 하고 있어도 코가 시렸다. 그렇지만 감각이 아닌 가슴과 머리의 기억 속에 우리 신혼집 풍경은 퍽 아름답다. 비 오는 날 걸어서 전통시장까지 걸어가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장을 보니 말게 갠 하늘에 무지개를 본 순간, 장마진 어느 날 살짝 열어놓은 거실 새시 사이로 들어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작은 식탁에서 차담을 나누던 순간과 같은 토막 장면들이 우리가 신혼집을 이야기하면 회자하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은 우리 부부에게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우물이 되었다.


결혼에 있어 집문제가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서울에 번듯한 전셋집도 못구했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내 집마련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결혼에 반대를 놓는 철딱서니 없는 일부 부모세대들이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신혼집을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는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 어렵다는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집문제가 결혼, 특히 신혼단계에서는 가장 쉬운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둘 사이에 헤쳐가야할 복잡한 인생의 과제들은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하면 신혼집은 정말 쉬운 과제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좋은 신혼집으로 '본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능한 가장 싸고 누추한 집'을 추천한다. 뭐 하나 빼먹을 문구가 없다. 본인들이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은 아무리 싸더라도 본인들이 최소한으로 생각하는 위생이나 치안이 결여되어있거나 침수, 곰팡이, 벌레나 소음과 같은 유해 요소들이 본인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우려된다면 안된다는 뜻이다. 대학교 때 곰팡이가 피어있는 방에서 자취를 해본 나나 반지하에서 자취를 해본 와이프의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보증금이나 월세가 싸다고 해도 본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은 없던 우울함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본인들이 감당만 할 수 있다면 싸고 누추할수록 좋다. '싸고 누추한 집'은 둘의 앞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장점이 다섯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그런 집에 살면 둘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좁고 누추한 곳에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넣자면 드라마에서 보는 쾌적한 신혼생활을 꿈도 꿀 수 없다. 그런 방에 혼자 있자면 무척이나 외로울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배우자에게 기대게 된다. 좁은 집에서 싸워봤자 결국 밤에는 서로 얼굴 보고 자는 수밖에 없기에 신혼초기 빈번할 수 있는 갈등 속에서 화해 여건도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두 번째로 둘이 손잡고 자주 산책하게 된다. 산책은 여러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께서도 말씀하듯 정신건강에 정말 좋은 행위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한데 좁고 누추한 곳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웬만하면 산책을 나가게 된다. 산책을 하면서 둘이 겪은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면 여러 고민들이 혼자서 생각했을 때보다 훨씬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다. 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의 고민은 물론 미래의 계획까지도 서로 공유해 볼 수 있다. 모든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나 잘 짜인 계획이 있으면 틀어지더라도 기민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부부가 함께 매일마다 산책을 하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토록 바람직한데 누추한 신혼집은 부부의 대화가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 번째로 돈이 저절로 모인다. 집이 작으니 관리비도 싸고 열심히 손품 발품을 팔면 매우 합리적인 보증금과 낮은 월세의 집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또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안전하고도 가장 경제적인 집을 찾으면서 각자에게 맞는 전월세대출을 알아보는 과정을 철저하게 거친다면 돈에 대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쌓인다. 이건 은행권 종사자 중에서 전세피해가 이슈화 되기 전에 유일하게 전국에 범람하는 전세 피해의 위험을 알리고 다녔던 내 입장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렇게 보증금이나 월세가 경제적인 집은 대게 주차공간도 없거나 매우 열악해 통근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차를 사지 않게 된다. 글쓴이 같은 경우도 와이프가 임신했을 때 비로소 첫 차를 샀다. 결혼 4년차의 일이다. 연애 10년은 물론이고 결혼 후 3년이 넘도록 뚜벅이 여행이나 가끔 렌터카를 빌리며 여행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싸고 누추한 신혼집은 둘의 저축을 극대화해 그 이후로도 두고두고 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자산을 형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네 번째로 더 좋아질 것만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반복되는 모든 것을 익숙하게 만든다. 신혼집을 처음부터 신축 아파트로 하면 그 쾌적함이 당연해진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지금의 삶이 아무리 풍요롭더라도 그것에 충분히 감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행복을 어렵게 만들고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든다. 자신들이 가진 소득이나 자산에 비해 비싸고 좋은 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더 좋은 집에 살지 못해 스스로 가난하고 쪼들려 사는 것이다. 

 의외로 연봉이 높은 둘이 만나 결혼해도 돈이 쉽게 모이지 않고 돈에 쪼들려 사는 사례는 내 주변에 흔하다. 쪼들려 사는 느낌은 많은 갈등의 씨앗이 된다. 결혼하면 대부분 돈 때문에 싸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빈곤통계연보를 보면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노인, 1인가구, 한부모가구 층에서 높다. 이마저도 상대적 빈곤율 수치인데 생산가능인구 연령대에서 2인가구 이상은 빈곤 통계를 산출해주지도 않는다. 건강한 남녀 둘이 만나 한 가구를 이루면 빈곤하기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결혼을 해서 함께 산다고 식비나 각종 생활필수 지출이 2배로 늘어나지는 않는데 소득은 두 명의 것을 고스란히 합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돈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진짜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갖춰보이는 삶'에 대한 추구가 스스로를 빈곤하게 느끼도록 한 것이 더 본질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다. 자신들이 현재 가진 돈의 그릇에 비해 큰 것을 추구하는 까닭으로 불만족스러운 삶의 지속은 많은 경우 그것이 주식이든 집이든 무리한 투기를 유도한다. 결혼에서 그것은 큰 갈등, 심지어는 이혼의 원천이 된다. 또한 처음부터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는 소득이 많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부모들의 간섭이 둘 사이에 쉽게 치고 들어오고 그것이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 심지어 집안간의 싸움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신혼 삶은 둘만의 힘으로 자신들의 현재 그릇에 충분히 들어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그릇보다 더 작은 내용물을 담아낼수록 그릇에는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원단위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부자는 객관적인 척도로 계산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에서 자유로운 자가 부자다. 즉 월 200만원의 소득으로 나름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이 월 1천만원의 소득으로 자기 소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불만족한 사람보다 부자다. 때문에 자기들이 가진 것보다 더 검소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면서도 감사함을 갖는 삶은 어찌보면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다. 그런데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다소 누추하더라도 검약하게 살아간다면 '풍요로운 여건이 아니더라도 감사함과 행복을 갖고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는다. 현재 상황에서 나름 만족하고 사는 연습이 자동으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부자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검약한 신혼생활을 통해 열심히 모은 돈과 그간 쌓은 경험으로 조금만 더 좋은 집으로 가도 둘의 행복은 크게 증진된다. 원룸에서 1.5룸으로, 1.5룸에서 투룸으로, 그러다가 전월세에서 내집마련으로,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삶을 개선해 가는 재미가 명백하다. 인간은 익숙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갖춘 삶보다 조금씩 개선할 여지를 만들어가는 삶이 더 지속가능하고 행복하다. 심지어 본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싸고 누추한 집이라면 정말 더 좋아질 것만 생각하면서 조금만 더 좋은 집으로 가도 큰 행복감과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


 다섯 번째로 끈끈한 유대감이 가득한 둘만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다른 장점이 다 사라져도 이 장점만 살리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싸고 누추한 집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살다 보면 불편한 점도 많고 집들이 하기에도 모양새가 영 별로라 남들에게 말하기에 마음이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함께 그 집에서 수다를 떨며 사랑을 나누는 기억을 쌓다보면 정말 둘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강력한 유대가 형성된다. 

 본인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누추한 집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 경우 둘만의 유대감을 만들기 더 좋다. 본인이 넉넉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이 불편을 겪게될 때 우리는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미안함은 자신을 더 열심히 살도록 이끈다. 미안함을 갖고 열심히 살면 상대방은 나에게 고마워한다. 열심히 살기 위해 고생스러운 모습이라도 보이면 고마움을 넘어 도리어 당신이 미안해하기도 한다. 내가 부족해 미안함에도, 그런 미안함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 뿐임에도 그것에 상대방이 고마워하면 나에게 역시 고마움이 생긴다. 이렇게 서로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쌓인 집에서는 비 오는 날 나누는 작은 찻잔도 추억이 된다. 그 추억들은 둘의 삶에서 많은 고난을 이겨내는 무기가 된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쌓여 성을 이룬 부부라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내 배우자가 최고"라고. 물론 거기에 불필요한 사족이 붙을 수는 있다. 가끔 밉지만 그래도 내 배우자가 최고라거나 돈은 잘 못 벌어오지만 그래도 내 배우자가 최고라거나, 맨날 싸우더라도 내 배우자가 최고라거나... 그런데 뭐 어떤가. 어찌되었건 서로가 최고면 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첫 신혼집은 마포에서 꽤나 유명한 신축아파트였다. 사람들은 긴 이름을 축약해 부르기도 했고 그 이름은 부동산 폭등기 신문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장인장모께서 외국에서 일하시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실 줄 알고 미리 잡아놓으신 전셋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두 분의 귀국은 늦어졌고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와이프는 3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때문에 결혼하자마자 그곳에서 우리의 살림이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 모두 충분히 거기서 신혼을 누리다가 독립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내기 위해 2개월 남짓의 서울 신축아파트의 신혼생활을 접고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침대를 놓을 수 있는 방도 하나밖에 없는 작고 오래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이 진정한 의미로 우리의 첫 신혼집이었다. 그 집에서 2년 가까이 살았는데 정말 그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 와이프 직장과 가까워 선택한 집이었는데 야근에 너무 시달린 와이프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외벌이가 되었다. 그런데 더 좋았다. 집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그냥 집에서 잘 때 입는 대충의 차림으로 저녁 준비를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습, 하루 종일 맨얼굴로 지내던 와이프가 퇴근길 갑자기 비가 오는 날씨에 츄리닝 하나 걸치고 남편 비맞을라 걱정하며 허겁지겁 우산을 들고 달려온 모습은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보다도 아름답고 예뻤다. 그런 둘만의 추억이 산더미다. 집이 누추하니 그런 곳임에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그대가 빛났다. 누추한 집에서 우리는 둘만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없어도 서로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이면 충분하다.'는 진한 사랑을 갖춰갈 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이런 결단을 하지 않고 그 좋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누렸다면 우리 둘 사이의 유대감이 지금 이토록 깊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경험자로서 강력히 추천한다. 싸고 누추한 집에서 신혼의 낭만을 누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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