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날이었다. 그날 일정으로 방문해야 할 첫 집이었다. 대문을 열자마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가 지금 들어가는 곳이 집이라기보다는 지하실에 가깝다는 걸 알려주었다. 냄새의 출처는 확실했다. 온집이었다. 숙련되지 않은 솜씨로 몇 겹인지도 모르게 덧대어진 벽지 사이사이로 수묵화처럼 뻗어 나온 검은 물결무늬가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위선적으로 웃음을 띤 표정으로 "어르신 안녕하세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말로 집에 들어섰다. 같이 들어간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할머니 도와드리려고 온 청년이에요~ 멋지죠?" 하며 나를 소개하셨다. 함박웃음을 지은 할머니께서 방에서 일어나 복지사 선생님과 나를 환대하셨다. 계속 드는 생각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싶었다. 숨겨놓은 불쾌감과 측은한 감정이 섞여 착잡했다. 그런데 착잡한 마음이 사라지는 데에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근처 대형 노인복지관에서 춤을 배우며 영감님들과 교류한 당신의 이야기를 신명 나게 하시는 모습이 곰팡이로 그려진 수묵화와 배치되었다. 할머니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어구가 생각나며 '누추한 집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다운 것인가.'싶었다. 고요한 충격이었다. 대학생이면 대부분이 한 학기 씩은 해보던 휴학. 나의 휴학은 그렇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배운 것으로 시작된 듯했다.
그 깨달음, 아니 깨달음인 듯했던 생각이 다른 충격으로 뒤집어지는 데에는 고작 1주일이 걸렸다. 그날도 처음 시작은 그전 주에 노인복지관에서 춤을 배우셨다는 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신명나 계실까 싶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머리를 며칠이나 감지 않으신 건지 잔뜩 떡져있는 파마머리의 할머니께서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절뚝거리며 나오셔서 나와 사회복지사를 맞이하셨다. 우리에게 짜증 난 것은 아니셨다. 할머니의 짜증 가득한 얼굴은 며칠 전 복지관에서 귀가하다가 넘어져 허리를 삐끗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거동이 불편한데 좁고 냄새나는 방안에 하루종일 있다 보니 문득 다시금 본인 인생에 대한 회한이 깊어지셨던 것이다.
"2천만 원 떼어간 그 할마시가 문제여. 그 돈만 있었어도 내가 이꼬라지는 아니었을 텐데."
"아주 비참해. 이게 도대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야. 얼른 누구든 죽여줬음 좋겠어. 죽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여."
아마도 사회복지사 선생님께는 자세한 맥락을 이야기했을 법한 자금횡령범 할머니 이야기와 자신의 신세 한탄이 논리적인 연결고리도 없이 이어졌다. 비참했다. 저번 주만 하더라도 비참함이라는 것은 아무리 곰팡이 슨 집에서 초라하게 살 지라도 아름다운 삶, 그거 하나면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비참함은 항상 노인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비참함은 스스로를 비참해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하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이 자신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비참함을 온전히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죽어감을 생각했다. 어떻게 죽어가야 삶이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을지 휴학할 때 만났던 독거노인 분들의 삶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정리해 보았다. 많은 것들이 필요할 수도 혹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1명의 사람과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을 그제야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라 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돈과 사람, 완전 별개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려 10억 조차도 우습게 보는 이 시대에서 돈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또 sns로 수많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은 이 시대에서 단 1명의 사람은 많은 것이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만약 저기에서 1명의 사람도 찾지 못해 홀로 남으면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돈은 훨씬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돈은 반려견과 같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을 사기 위해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
돈과 사람 중에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똑같이 빈곤한 노인이라 할지라도 2명이 함께 사는 것과 1명만 사는 것은 삶을 견뎌내는 힘의 차이가 매우 크다. 간혹 독거노인으로 지내다가 복지기관이나 주변의 권유 등으로 합가 하는 노인들도 있고, 아니면 혼자 살지라도 복권기금 등에서 마련한 연립주택이나 다가구주택 1채에 독거노인들이 여러 세대로 나뉘어 모여사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부대끼는 사람이 늘 곁에 있는 노인 분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 분들보다 자신의 비참함을 고백하는 경우가 훨씬 드물었고 대화할 때도 훨씬 활력이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 주는 힘은 억대의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실제로 내가 휴학하고 나름 독거노인 봉사활동이라고 한 일은 그냥 매주 1번씩 복지단체에서 만든 반찬을 가지고 어르신들께 배달해 십분 남짓 수다를 떠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절반은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였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돕는 정도의 의미만 있거나 절반은 그마저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내가 주 1회 하는 반쪽짜리 봉사가 가진 의미에 의심을 품고 사회복지사께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하니 복지사 선생님은 "제가 혼자 가는 거랑 다른 사람과 함께 갈 때 어르신들의 활력이 다르세요. 또 가끔 추석맞이 행사로 기업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여러 사람들이 가면 더 활력 있으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와 같이 가면 훨씬 덜 힘들고 재밌을 때가 많아요." 하며 사람의 의미를 되새겨 주셨다. 그때 알았다. 왜 혼자 사는 많은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해 걸어서 수십 분이 걸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노인복지관을 찾아가는지, 또 왜 종교가 없다가도 많은 노인들이 교회를 찾아가는지.
곁에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다. 하다 못해 애완동물이라도 키워야 한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어떤 할머니는 저 놈 때문에 내가 못 죽는다며 강아지가 주는 사랑을 유일한 삶의 낙으로 삼고 살아가시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결국 잘 죽어가기 위해서는 사람과 돈이 필요하고, 그렇게 보면 결국 사람 사는 문제는 모두 사람과 돈, 두 개의 문제로 압축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종착지는 죽음으로 향한다.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는 그 두 가지가 무척 필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어갈지를 선택하는 의식이다. 결혼과 동거의 가장 큰 차이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죽었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했다면 내가 죽었을 때 배우자가 가장 먼저 내 재산을 상속받는다. 하지만 동거 중이라면 법적인 효력을 갖춘 별도의 유언이 없다는 전제로 부모나 자식 같은 직계존비속이 가장 먼저 재산을 상속받는다. 배우자와 배우자 아닌 사람의 상속세 차이도 매우 크다. 2023년 기준 배우자는 최소 5억 원에서 최대 30억까지 상속세가 면제될 수 있다. 하지만 자녀는 5천만 원까지만 면제된다. 그러니 혼인신고를 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만약 죽었을 때 재산을 가장 많이 물려주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는 문제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내가 함께 죽어가고 싶은 사람을 위해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과외비를 많이 벌거나 논문이나 학술 공모전에서 거액의 상금을 탔을 때도 있었지만 A와의 결혼을 결심하기 전의 나는 돈이 좀 모이면 당시 하던 산악부 활동을 더 멋있게 하고자 고가 등산장비를 지르거나 이탈리아 음식 같이 평소에 상상하지 못한 근사한 음식을 A와 먹기 위한 비용으로 써버렸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부터 진로를 고민하기 위해 기업 공부를 하며 시작한 주식투자에서 증권계좌에 내 전재산을 쏟아부었는데 그때 내 전재산은 모든 걸 끌어모아봤자 40만 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와이프와 결혼을 결심한 때부터는 악착같이 저축했다. 직업 선택도 와이프와의 결혼을 1순위로 두고 했다.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시작한 주식투자가 어떻게 인연이 되어 국내에서 꽤 명망을 가진 자산운용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와이프 부모님께서 탐탁지 않게 여기자 퇴직금도 받지 않고 11개월 만에 퇴직했다. 그래서 퇴직 2개월 만에 와이프 부모님께서도 만족할 만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긴 했지만 월급의 80%를 저축해 쌓은 자산을 가지고 다음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소득의 80% 이상을 저축했다. 와이프와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와이프 부모님께서 계시던 일본에 간 것을 제외하고는 와이프와의 첫 해외여행이 신혼여행이었다. 그 모든 것은 결혼의 의미를 '함께 죽어갈 사람을 선택해 그 사람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인생의 결단이라고 생각했고 함께 죽어가는 세월을 모두 지나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나도 그녀도 절대 비참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것은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대방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했는데도 기댈 곳 없이 외롭다고 느끼게 되면 그 순간 인간은 비참해진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결국 외롭다. 하지만 그때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어깨가 없다면, 심지어 결혼을 했는데도 아무도 없다면 그것은 외로움을 넘어 비참함이 된다. 한 편 경제적으로 기댈 곳이 된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닌 모든 상황에 대비해 어느 시점에서도 후회가 없도록 저축과 건전한 돈관리를 이어간다는 뜻이다. 갑자기 젊어서 큰 병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검소하게 살지 않아 병원비가 모자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무리한 묻지마식 투자로 배우자에게 남겨줄 재산이 얼마 없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후회는 반드시 스스로와 상대방을 비참함의 구렁텅이에 몰게 된다.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채워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생로병사를 대비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나와 상대방에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배우자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겠다는 삶은 비단 경제적인 것을 넘어 감정적으로도 의지가 된다. 감정적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도 기댈 곳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고, 그게 다시 배우자의 든든한 감정적인 지지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삶에서는 '배우자만 함께 한다면 인생의 고난들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는 다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함께 죽어갈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생각, 그렇기에 배우자가 될 사람이 비참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과 그에 기반한 나의 결혼 생활은 과정을 놓고도 결과를 놓고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내가 어쩌다 외로울 때는 와이프가 열심히 살아가는 날 위해 기댈 곳이 되어주었고 나 역시 또 그녀의 기댈 곳이 되어주기 위해 다시 열심히 살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나름 그런 생활을 10년 가까이했다. 결혼 전 4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고 결혼 후 5년 넘게 그렇게 살고 있다. 오늘 당장 죽는다면 너무도 슬프겠지만 후회는 없다. 그런 여정 속에 커진 것은 자산과 유대감이다. 검소한 생활을 통해 오래 결혼을 준비한 덕에 와이프도 나도 또래들 평균보다는 꽤 큰 저축을 갖고 결혼했고 지금은 금융인으로서 직업 철학을 담은 내 노력과 운이 더해져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산을 갖게 되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제적 여유가 우리 부부의 행복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자산이 생기기 전에도 우리는 행복했다. 자산이 크게 불어나기 전과 후의 소비 수준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아들 우니를 낳고 나니 지출이 좀 늘었지만 워낙 그전에 검소했기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면을 더 자세히 따져 들어가 보면 와이프가 직장을 그만두고 4년 가까이 외벌이 생활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갈등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서 더 알뜰하게 집안을 챙기는 와이프 덕에 내 외벌이로도 꾸준히 매월 소득의 절반 가량을 저축할 수 있었다.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다 망가져 있을 때 대출도 일부 받아 전재산을 우리나라 몇 개 기업에 분산해 투자하자는 내 주장에 예적금을 제일 좋아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와이프가 내 결정을 밀어주기도 했다. 전 직장에서 배운 것들과 수년간 모아 온 데이터에 내 직업인으로서의 신념까지 담아 자세한 사전 브리핑을 했음에도 크게 걱정했지만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확신 있는 선택이었지만 와이프는 그 결정을 믿어주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려하고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나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와이프는 내심 우리가 아껴 모은 자산이 크게 손실될 수 있다고 걱정하며 앓는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런 위험 속에서도 화목했다.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결혼 이후의 삶까지 나를 지켜본 와이프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늘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이 결코 경거망동하며 허튼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부부의 자산은 열심히 살아온 보람찬 결과물일 뿐 우리 부부의 행복을 결정하는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돈이 더 많기를 항상 추구한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도 건전하고 도전적으로 내 자산부터 잘 운용해 어떤 사람에게도 돈 문제에 대해 좋은 답안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언제 죽더라도 그녀가 인생에서 비참해질 확률을 0에 수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나의 가장 큰 바람은 와이프와 100세가 넘어서까지 해로하는 것이다. 60세가 될 때까지 건강관리를 잘하며 내가 좋아하는 금융업에서 직업생활을 충실히 하다 은퇴해 그 이후에는 A와 돈이 목적이 아닌 소일거리를 하며 살고 싶다. 그러다가 1년에 한 번은 지금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쌩쌩한 체력을 가지고 A와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쾌적한 비행을 하며 고급 리조트에 머물고 싶다. 한적한 계곡 근처 땅을 사 작은 집을 지어놓고 가끔 별장처럼 방문해 함께 다슬기나 주우며 시간을 때우다가 밤에는 별구경과 불멍을 하면서 고구마라도 구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와이프와 함께라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때로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크게 재물을 잃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를 위해서라도 이런 삶을 지속하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정말로 중요하다. '돈을 위해서 사는 것'과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돈이 생기는 것'은 매우 다르다. 지금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이 모든 것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며 돈을 위해 살지만 그런다고 모두에게 많은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돈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살다가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결여된 상태에서 무리한 투자를 해 손실을 겪는 경우가 더 많다. 잘못된 목표가 되려 스스로 불운을 초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죽음을 향한 긴 시야로 성실하고 도전적인 오늘을 살아간다면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불운을 겪을 때 서로를 의지하며 불운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낼 수 있다.
요약하자면 결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유대감이며 그것은 서로의 죽음을 함께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끈끈하게 형성된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죽을 때가 아니라 오늘을 잘 살도록 하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있어 서로를 위한 오늘의 충실한 삶은 수조 원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과 신뢰, 유대감을 만들어준다. 또한 유대감은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돈 정도는 대부분의 경우 만들어준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열심히 사는 과정에서 생기는 신뢰와 유대감이 소득과 저축의 지속가능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재해나 예기치 못한 불운이 닥쳐 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그때 죽음을 생각하며 함께 열심히 살아온 날들은 서로를 위한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에 차 이야기한다.
"결혼은 서로를 위해 잘 죽어가기 위한 예식이다."하고.
당연히 가벼운 각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무거운 각오도 아니다. 우린 모두 오늘도 하루 죽어가니까. 어차피 누구든 결국 본인의 죽음을 향해, 또 죽음을 위해 자기 나름의 어떤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나름의 각오가 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의 예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