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일, 우리 결혼 5주년 기념일이자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지 15주년 D-1일. 이 날은 참 센스없게도 회사에서 부산 출장 일정이 생겨 저녁도 함께 못하게 되어 미안하게 되었네요.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아무리 빨리 돌아와도 저녁 9시... 내심 짜증이 가득한 상태로 부산발 KTX에 몸을 실었지요. 그런데 어찌 보면 난 이 날 결혼기념일을 가장 결혼기념일답게 보냈어. 부산행 ktx가 출발하던 때부터는 출장 가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당신 생각을 했으니까.
딱 십 년 전 당신의 첫 직장 발령지는 부산. 연고가 없는 당신은 사택에 머물게 되었고 돈 없는 자취 대학생이었던 나는 용돈을 쥐어짜고 아껴 한 달에 한두 번은 그 비싼 ktx를 왕복으로 타고 부산으로 가 2층 침대가 즐비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당신을 만나야 했네요. 그런 기억이 떠올랐는지 ktx가 출발한 순간 나는 어느새 10년 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잠시 먹먹해지는 귀와 순식간에 지나가는 농촌의 풍경, 많은 것이 달라진 나였고 평택을 지나가다 수백 개가 들어선 타워크레인을 보며 세상도 많이 달라짐을 느꼈지만 그 외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 보여 반가웠네.
회의는 점심시간 직후에 열리니 점심을 해결하고 가야 했는데 11시 일찌감치 부산역에 도착한 나는 바로 부산역 근처에 유명한 중화요릿집을 찾았어요. 대학교 때 그렇게 가보고 싶었지만 끝내 가보지 못한 식당. 영화배우 하정우가 영화 속에서 소주로 입을 가글하는 멋들어진 모습을 선보여 유명해진 식당이지만 원래도 부산역 근처 터줏대감으로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이 들끓었다고 당신에게 들은 적이 있지요. 무조건 계란 프라이를 함께 준다는 부산식 간짜장면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그때는 기차 타기에도 돈이 모자라 서울에서도 파는 간짜장이라고 그거 한 번 못 사 먹고 편의점 김밥으로 점심하고서는 당신 일하는 빌딩 옆 카페에서 제일 싼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하염없이 당신 퇴근만 기다리곤 했었네. 드디어 오늘 그 간짜장을 먹어보니 맛있네요.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 난 곱빼기가 아니어도 보통 한 그릇이면 충분히 배부른 것이 달라.
점심 먹고 시간이 좀 남아 당신이 일하던 빌딩 쪽으로 산책을 해보았네. 그때는 그렇게 높아 보였는데 이젠 그냥 평범한 빌딩 같아. 직장생활 10년 가까이하며 나도 이제 오피스 물 좀 먹었나 봐요. 회사 근처에서 당신을 기다리던 카페는 망했어. 그런데 안 망하기도 했어. 무슨 말이냐면 비슷한 인테리어로 다른 카페가 들어섰네. 들어가서 차 한잔 할까 하다가 기다릴 당신도 없고 곧 점심을 다 먹은 주변 직장인들이 밀려들어올 시간이니 괜히 자리차지 하고 있기 눈치보여서 그냥 회의장소 근처인 서면역으로 향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참 많이 남았어. 서면역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회의장소인데 나에겐 1시간 가까이 남아버렸더라고. 그래서 그냥 근처 서점에 갔는데 갑자기 뭔 생각이 들어서 편지지를 샀네. 생각해 보니 만난 지 4000일 기념일이랍시고 4년 전쯤 쓴 이후 정말 참 오랜만의 손편지라 그때부터 설렜다오. 그렇게 일 마치고 집 가는 기차 기다릴 동안 써야지, 하며 아직 하루 일과 한참 남았는데 편지지 고르는 이후부터는 일 끝난 이후만 생각했네.
일 끝나고 나와서는 저녁 먹으러 당신 직장 선배들 단골이라 자주 찾았다던 돼지국밥집을 찾았어. 돼지국밥은 당시 서울에서는 조금 희귀한 음식이라 나도 가끔 삼각김밥 대신 아끼고 아껴 사 먹고 당신과도 가끔 먹었기에 아까 간짜장보다 더 반갑게 먹은 것 같아요. 그땐 이 국밥이 나름 나를 위한 선물이었는데 이렇게도 쌌었나. 이제 팔천 원짜리 국밥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데 말이지. 그런데 이것만큼은 그때보다도 지금이 더 맛있네. 나도 아저씨가 다 되었나 보오.
기분이다, 싶어 진짜 몇 년 만에 혼자 국밥에 소주도 한 잔 하고 아까 지나친 그 카페에서 제일 싼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오랜만에 이렇게 손 편지를 쓰네. 어쩌면 가장 우리 다운 우리 결혼기념일의 축하의식인 것 같아. 제일 싼 에스프레소 앞에서 몇 천 원짜리 편지지에 싸구려 펜으로 편지를 쓰는데 작년에 칼질하던 때보다 나는 지금이 더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더 벅차오르네요.
이제 거의 다 쓴 것 같아요. 방금 문장을 쓰고 나도 모르게 "이제 내 자리로 가자."하고 읊조려 외쳐버렸네. 사회 초년생 당신과 당신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대학생의 나는 여기 두고 이제 고생하는 내 새끼, 그리고 원조 내 새끼에게 매달려 고생 주는 새로운 내 새끼, 그런 내 새끼들 보러 가야지 하고.
거지 같은 하루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소중했던 오늘 하루. 그리고 심지어 진짜 거지 같은 하루를 살았을지라도 당신들만 생각하면 한 없이 감사한 삶, 내 자리입니다. 내 자리 잘 지켜 당신들을 지켜줄게요.
이렇게 나의 결혼 5주년 기념일은 와이프와 저녁 한상 못 먹었지만 하루 종일 간간히 와이프와 내가 부산에서 쌓았던 연애시절 추억을 되새기는 날이었다. 되새긴 추억은 고급진 코스요리보다 맛있었다. 와이프도 나의 출장길에서 돌아와 함께 되새긴 추억이 맛있었다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추억은 뭐가 그렇게 맛난 것일까. 어찌 보면 그냥 지나간 시간일 뿐인 추억의 정체는 대체 뭘까. 과거는 죽은 시간이다. 그런데 '과거의 시간을 되새긴다.'라고 하면 그 무의미함이 문장 전체에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추억을 되새긴다.' 하면 과거의 시간을 되새기는 뜻은 같음에도 뭔가 풍부한 의미로 가슴이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단지 말장난일 뿐일까, 아니면 추억이라는 것이 그냥 과거를 넘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해 내린 결론은 추억은 '중요한 것들로 재구성된 과거'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추억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모든 과거를 추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추억은 기억의 부분집합이다. 과거의 시간에서 무엇인가 소중한 시간들만을 추리고 추려내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좋았던 기억 그 모두가 추억인가 했다. 그래서 인간의 필수요소인 의식주 관점에서, 그러니까 입고, 먹고, 자는 관점에서 내 생애 가장 좋은 기억을 회상해 보았다. 옷으로는 내가 결혼준비를 할 때 처음으로 수제 양복을 예복으로 맞췄던 것이 현재까지 가장 좋은 옷이다. 처음으로 옷에 줄자를 대던 근사한 경험이라 좋았지만 추억으로 이름을 붙이자니 어색하다. 지금도 와이프와 결혼 준비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내가 예복 맞추던 기억을 추억으로서 회자하지는 않는다. 그다음 음식으로는 꽤나 큰 부자이신 친척 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서 저녁을 사주셨던 때였다. 그런데 추억이라고 명명하기에는 아까 옷보다도 더 어색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자는 관점에서는 와이프와 갔던 모리셔스 신혼여행에서 두 번째 숙소로 고른 1박에 50만 원에 육박하는 고급 리조트에서 묵었던 첫날이었다. 와이프와 맞이한 현재까지도 가장 비싼 1박이고 와이프와 10년 연애 후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이었기에 기억이 강렬하다. 이건 지금도 와이프와 내가 회자하는 명백한 추억이다. 의식주 관점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추려보니 딱 하나만 추억이다. 그냥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될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다음에는 내가 명백하게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와이프와의 추억은 배제했다. 떠올려보니 너무 많고 또 추억이라고 당장 생각하면 와이프와의 과거 기억만 떠오르니 그 감상에 빠져 뭔가 추억의 본질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이전 시기를 추적해 보았다.
내가 유년기에 추억이라고 떠오른 기억 중 하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아빠와 엄마, 형까지 해서 어느 계곡 언저리에 텐트를 치고 여름휴가를 보낼 때였다. 아무 걱정 없이 물놀이하고 물놀이하다 지치면 수박 먹고, 그러다 배고프면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여 다 같이 함께 먹었다. 누가 맞는 일도, 윽박지르는 일도, 폭언을 듣는 일도 없었고 그냥 모두가 한가했다. 또 다른 기억은 큰 이모부의 사업이 크게 번창해 큰이모네가 정말 큰 집으로 이사 갔을 때, 7남매 수준의 온 외가친척이 다 모여 그 집에서 밤새 놀던 기억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또래 형동생들과 함께 그 큰 집에서 숨바꼭질을 했고 어른들은 큰 부엌에서 근사한 바에 모인 것처럼 앉아 다 같이 웃으며 술 한잔씩들을 했다. 내 유년기의 추억을 생각해 보면 그 외에도 외가친척들과의 기억이 많다. 외가 친척들이 모이면 형들이 워낙 많아 우리 형이 날 때리는 일도 적었고 맞더라도 울다 보면 형들이 말려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윽박지르는 일 역시 아무래도 훨씬 덜했다. 외가친척들과 다 함께 만나는 날은 일종에 가장 약자인 내게 우산이 씌워지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점점 늙어가시며 아픈 곳들이 생기는 외가 친척들 소식을 들으면 때로는 하루종일 슬퍼지기도 한다. 추억의 흔적들이 오랜 세월에 바래어지는 느낌이 든달까.
그렇게 내 삶의 추억들을 모두 꺼내어 그 추억들의 공통점을 추려보았다. 공통적으로 떠오른 단어들을 써보니 안전, 평화, 화목, 사랑, 유대 같은 것들이다. 정리하고 보니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추구해야 할 모든 것이 이 안에 다 들어있지 않나 싶었다. 어떤 영화에서 처럼 '뭣이 중헌 지' 알게 해주는 것들 같았다. 신체 안전한 상태에서 화목한 관계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그렇게 유대감을 쌓아가는 삶.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추구하면 좋을 가치들을 몇 개의 단어로 축약한 것만 같다. 그래서 추억을 '중요한 것들로 재구성한 과거'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입으로 추구하는 부의 자유 같은 것도 어쩌면 안전과 평화, 화목, 사랑, 유대를 이룰 수 있는 극히 일부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일 게다. 안타깝게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는 걸 넘어 유일무이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자는 관점에서 가장 좋았던 신혼여행의 고급리조트 역시 그 방이 비싸고 좋아서 추억이라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얼마나 침대가 좋았고 룸 컨디션이 어땠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첫날 체크인하고 본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우리가 노을을 보는 옆에서 리조트 수영장에 아무도 없이 물소리만 평화롭게 울리고 있고, 그 옆에서는 이름 모를 새가 처음 듣는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해외여행 한 번 없이 알뜰하게 서로를 사랑한 우리 스스로에게 준 보상을 온세상이 함께 축복해 주는 것 같다며 함께 웃던 둘의 대화가 따뜻한 우리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좋은 삶이란 살면서 추억을 많이 만들어가는 삶인 것 같다. 추억을 만들어가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아예 정의를 내려버려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도 같다. 쉽지만은 않지만 엄청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돈이 많지 않아도 만들 수 있다. 돈은 많아지려고 노력해도 많아지기는 커녕 없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다만 반드시 필요한 게 있으니 사랑인 것 같다. 계곡 휴가를 돌아보면 유년기 시절의 나는 아무리 맞고 폭언을 들을지언정 엄마와 아빠, 형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외가 친척들이 나를 보호해 주는 느낌에 평화를 느끼며 삼촌과 이모, 그리고 사촌형들을 사랑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사랑이 나와 와이프를 지켜주고 나 스스로를 단련해주는 것이었다면 그 이전의 내 사랑은 의심 없이 기대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던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또 어찌 보면 세월에 따라 흘러가는 내 삶의 중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나와 내가 지켜주고 싶은 것들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는 마땅히 사랑받고 보호받는 것이 그 시기의 마땅한 삶이다. 그렇게 오늘도 딱 한 문장이 결론으로 남는다. 원래 이 책의 주제의식에서 주제만 바뀐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주제가 '결혼은 사랑만이 현실이다.'라고 했다면 오늘은 이렇게 남기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인생은 사랑만이 현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