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사람이 있는데 둘 중 한 사람에게 반드시 돈을 빌려줘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다른 모든 조건이 같지만 한 사람은 빚이 전혀 없고 또 한 사람은 이미 빚이 수억 원이나 있다. 과연 누구에게 빌려줘야 할까? 당연히 빚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줄 때에는 그 사람이 돈을 갚을 능력은 있는지 , 이미 많은 빚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전월세 계약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내가 계약한 집을 떠날 때까지 돈을 빌려주는 계약이다. 때문에 전월세 집을 들어갈 때에는 과연 내가 보증금을 빌려줘도 되는 집주인인지 따져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증금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중요도는 커진다. 보증금이 억 단위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전세계약의 경우 그 어떤 요소보다도 보증금의 안전이 일반적으로 더 중요할 정도다. 인간은 큰 부자가 되는 기쁨의 크기보다 큰 재산을 손실하는 상처의 크기가 더 크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과연 돈을 빌려줘도 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여기서 영화 '불한당'의 명대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그렇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모든 사기나 기만을 당하는 순간은 사람을 믿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믿을 만한 상황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전월세에 있어서 믿을 만한 상황은 계약하기 전 알아볼 수 있는 것과 계약할 때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나뉜다. 우선 계약 전에 확인해 볼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계약 전 알 수 있는 믿을 만한 전월세 상황(확인할 것)>
1. 집에 과도한 대출이 잡혀있지 않다.(등기부등본)
2. 현재 집주인이 신용상 문제가 없다.(등기부등본, 매매시세 대비 보증금)
3. 집이 법적으로 큰 문제없이 지어졌다.(건축물대장)
4. 집의 보증금이 과도하게 비싸지 않다.(KB시세, 주변 시세, 현장확인)
1.부터 3. 까지는 집에서 간단하게 해당 주소의 서류를 직접 열람해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고 4. 는 1차적으로 집에서 확인해 본 다음 임장할 때 한 번 더 봐야 한다. 일단 등기부등본부터 확인해 보자. 우선 지난 글에서 김지혜 씨가 골랐던 최종 후보를 다시 불러왔다.
<김지혜 씨 후보지들>
1. 보증금 300만 원/ 월세 20만 원 (다가구 주택 원룸) 통근시간 왕복 1시간 10분
2.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0만 원 (다가구 주택 원룸) 통근시간 왕복 1시간 20분
3. 보증금 6천만 원 전세 (빌라) 통근시간 왕복 1시간
4. 보증금 1억 원 전세 (오피스텔) 통근시간 왕복 40분
5. 보증금 8천만 원 전세 (다가구 주택 원룸) 통근시간 왕복 40분
이 후보들의 모든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보았다. 등기부등본은 누구나 대법원 등기소 사이트(iros.go.kr)에 가면 열람 혹은 발급할 수 있다. 열람과 발급의 차이는 열람의 경우 확인만 하는 용도로 관공서나 금융기관에 제출하기에는 효력이 없는 대신 수수료가 2024년 현재 700원으로 싸며, 발급은 수수료가 1000원으로 비싼 대신 관공서 등에 제출했을 때 법적 효력을 갖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어디 제출할 용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증금의 안전을 점검하는 용도이므로 "열람하기"를 선택해 등기부등본을 열어보자.
적어도 5개 후보 중 다른 네 개는 집에 과도한 대출도 없고 일단 이 집의 등기부등본만으로는 빚으로 인해 곤란을 겪은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건축물대장을 살펴보았을 때 불법건축물로 등재된 내역도 없었다. 그런데 한 집의 등기부등본을 봤을 때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보였다. 위에 굵은 글씨 표시를 한 마지막 5번 집이 그 주인공이다. 이 집을 예시로 등기부등본에 대해 한 번 공부를 해보자.
<등기부등본 예시_표제부> 열람하면 처음에 나오는 것은 표제부이다. 표제부는 주소와 건물의 구성 면적 등을 나타낸 것이므로 보통의 경우 전월세 및 내 집 마련을 할 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은 표제부 바로 뒤에 이어진 갑구와 을구에 나와있다. 갑구는 소유권에 관한 사항을 나타내고 집주인이 누구인지, 집주인이 이 집의 소유권을 박탈당할 위험은 없는지를 표시해 준다. 반면 을구는 이 집에 대출이 있는지, 사실상 대출과 다름없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험은 없는지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제 갑구를 한 번 살펴보자.
<등기부등본 예시_갑구> 이 집은 일단 갑구부터 다소 지저분하다. 하지만 복잡하고 지저분해보인다고 할 지라도 등기부등본은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그 현황을 대부분 쉽게 알 수 있다. 순위번호 1번의 소유권보존은 이 주택이 처음 세워졌을 때 누가 소유했는지 알려준다. 김투기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3번이나 압류 혹은 가압류가 걸렸다가 풀린 것을 알 수 있다. 압류와 가압류는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중요치 않으므로 같은 것으로 보겠다. 압류는 압수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줘야 할 돈이나 갚아야 할 빚을 갚지 않아 누군가가 집을 압수했다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압류 기록을 보면 이 집에 불법건축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추론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또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김투기라는 사람은 돈 문제에 있어 신뢰하기에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매우 여러 차례 법에 의해, 또 국가기관에 의해 집을 압수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줘야 하는데 그가 여러 차례 남에게 마땅히 줘야 할 돈을 주지 않거나 세금 등을 체납해 집을 압수당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큰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 지금 등기부등본을 열람한 집은 8천만 원 전세를 매물로 내놓았다. 집주인이 이렇게 신용에 의심이 가는 경우 아예 전세든 월세든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또한 위 예시는 적어도 압류가 전부 말소되어 없어진 예시를 들었는데 말소되지 않은 압류나 가압류 내용이 있다면 그 집에 대해서는 어떤 계약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에 하나 정말 부득이하게 계약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압류라는 글자에 취소선이 그어져 모든 압류가 해제된 상태에서 계약 형태도 큰 보증금을 빌려주는 전세계약이 아닌 보증금을 1년 치 월세 미만으로 한 월세 계약 정도가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예를 들면 월세가 30만 원이라면 보증금은 300만 원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집주인이 보증금을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월세를 납부하지 않고 사는 것으로 보증금을 조금이나마 혹은 전부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는 그러한 개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집주인이 있다면 전세계약은 절대 금물이다.
계약 전에 집주인의 신용을 살펴보라고 했을 때 이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의아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집주인이 빚문제로 곤란을 겪었는지를 100%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것은 은행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신용에 아예 문제가 없는 집주인만 고를 수 있다면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은행이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등기부등본만으로도 문제가 있는 집주인을 상당 부분 거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방도로 내 보증금을 갚지 못할 확률이 높은 집주인을 차차 거르면서 내 보증금을 완전하게 지킬 확률을 100%에 근접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 등기부등본 갑구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갑구 맨 밑 순위번호 8번을 보자. 여기에 소유권 이전이라는 등기목적을 표시하면서 '신탁'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 등기부등본 예시에서 여러 압류기록을 설명한 것은 신용이 좋지 않은 집주인을 조심하는 방법의 일환을 소개하기 위함일 뿐 적어도 이 예시에서 가장 본질적인 내용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 등기 항목이자 이 등기부등본 갑구에서 유일하게 효력이 있는 내용인 이 신탁 등기다. 신탁은 쉽게 말해 내 재산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맡기면 부동산신탁이고 돈을 맡기면 금전신탁이다. 그리고 이런 신탁 업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를 신탁회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예시에서 원래 집주인 김투기는 '가상부동산신탁'이라는 회사에 자신의 집을 맡긴 것이다. 여기서 맡겼다는 말은 잠시 빌려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집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을 신탁회사에 맡긴 것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소유권에 관한 사항을 나타내는 등기부등본 갑구에 표시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전세사기 예방 콘텐츠를 시중에서 찾아보면 신탁등기가 된 집에 대해 전세계약을 할 것이라면 원래 신탁원부를 발급해 원래 집주인에게 임대차 권한이 있는지 알아보고 계약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신탁등기의 여러 맥락을 곰곰이 짚어 보면 과연 신탁등기가 된 집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괜찮은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부동산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김투기와 같은 개인이 자신의 집을 맡기는 경우 신탁회사에 자기 집을 볼모로 잡히는 대신 대출을 받기 위한 목적이 많다. 이런 부분은 등기부등본 을구를 통해서도 추론해 볼 수 있다.
<등기부등본 예시_을구> 예시에서 근저당권 설정이 2023년 6월 5일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근저당권은 대출을 안 갚았을 때 대출을 해준 쪽에서 집을 팔아 받을 수 있는 돈의 최대 금액이 얼마인지 나타낸 권리라고 볼 수 있다. 위 예시에서는 집주인 김투기가 대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대형은행은 '만약 대출을 안 갚으면 내가 이 집을 강제로 경매로 넘겨 팔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되면 팔린 돈에서 최대 30억을 먼저 받기로 '찜' 합니다.'라는 내용을 등기부등본에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근저당권은 쉽게 말해 집을 팔면 받을 수 있는 돈의 최대금액을 선점할 권리라고 이해하면 쉽다.
만약 이 집에 근저당권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내가 전월세 계약을 체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계약 만기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일정한 법적 절차를 통해 이 집을 팔아 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근저당권이 살아있는 집을 계약하면 집을 팔더라도 그 돈이 먼저 근저당권을 설정한 쪽으로 가서 빚을 갚는 데에 먼저 사용한다. 만약 그 빚을 갚고나서 돈이 남지 않는다면 내 보증금은 영원히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입자인 내가 계약하기도 전에 먼저 이 집을 담보로 존재하는 빚을 "선순위 채권"이라고 한다. 선순위채권은 이렇게 등기부등본 을구에 나타나는 근저당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을구에 근저당권 외에도 다른 내역이 존재한다면 그 역시 선순위채권이라 볼 수 있고,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등기부등본에는 나타나지 않는 선순위채권도 있기 때문에 전월세를 알아본다면 선순위채권을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 중 하나로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예시에서 근저당권은 현재 말소가 되어 취소선이 그어진 상태다. 원래의 근저당권 내용을 잘 읽어보면 집주인 김투기는 집이 지어질 때부터 대형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갑구에서 소유권 보존, 그러니까 집이 다 지어져 정식으로 등기부등본에 올라간 것이 2014년 4월 1일인데 그 날짜에 동시에 대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집을 짓는 건축자금을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부분을 건물이 다 지어지면서 이 건물을 담보로 1 금융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갚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대출이 2023년 6월 5일 없어졌다. 그런데 이 날은 집주인이 가상부동산 신탁에 집을 맡긴 날로서 등기부등본 갑구에 나와있다. 신탁을 맡기면 갑자기 없던 돈이 생겨나기라도 하는 것일까? 신탁을 대가로 대출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 물론 모든 신탁이 이런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예시만 보면 원래 집주인 김투기가 신탁 제도를 활용한 목적은 대출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신탁 제도가 참 어려운 것이 이렇게 집을 신탁회사에 넘겼다는 내용은 등기부등본에 나오지만 그 대가로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지는 등기부등본에 나오지 않고 신탁원부라는 서류를 별도로 돈을 내고 발급받아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탁증서로 대출을 받는 것이 일반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보다 유리한 것은 보통의 경우 대출 한도뿐인 경우가 많다. 즉 보통은 가능한 많은 금액을 대출받고자 신탁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등기부등본 갑구에 신탁이라는 글자가 존재하는 집은 많은 경우 그 집에 이미 빚이, 즉 '선순위채권'이 사실상 잔뜩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설령 원래 집주인이 전월세 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다고 한들, 그런 집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합당할까? 바꿔 말하면 집을 담보로, 그것도 소유권도 넘긴 채로 빚을 잔뜩 진 집주인에게 큰 금액의 보증금을 빌려주는 것이 합당할까?
완벽한 정답은 없겠지만 이 예시에서 김지혜 씨는 결국 신탁원부에서 임대차계약의 권한이 원래 집주인에게 있다는 것까지도 확인을 했지만 이 집을 최종 후보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신탁 중인 집에 대해 원래 집주인이 전월세와 같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원래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경우 신탁 중인 집은 권리 관계가 복잡해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조언을 금융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맞는 이야기다. 보증금을 원래 집주인에게 청구해 집주인과 소송을 해야 하지만, 보통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이 집을 경매로 넘길 수 있어야 하는데 원래 집주인은 현재 신탁으로 인해 집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집을 경매로 팔아 그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받기도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신탁 중인 집은 1금융권에서 전세 대출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부 공공임대 주택의 경우에도 신탁이 되어있는 집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대출을 받기 위해 신탁을 활용한 것이 아니고 임대주택을 관리하기 위해 신탁회사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신탁의 관리를 받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대부분의 경우 1 금융권의 전세대출 활용이 가능하고 이런 집은 전세로 들어가도 공공의 관리를 받고 있는 만큼 대부분의 경우 위험도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공공임대의 경우를 제외하고 민간에서 신탁이라는 글자가 등기부등본 갑구에 있다면 계약을 하지 않거나 부득이하게 계약을 하더라도 월세로, 또 보증금의 액수 역시 압류 기록이 있는 집주인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1년 치 월세금액 미만으로 하는 것이 그나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등기부등본의 앞 뒤 맥락을 통해 집주인에 대한 신뢰도는 물론 신탁과 같은 특이한 형태의 등기 내용의 경우 그 목적까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언론매체나 부동산 관련 콘텐츠에서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는 집인지 확인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세입자가 등기부등본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위 예시의 집은 사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압류도 모두 해제된 상태였고 근저당도 말끔하게 지워져 등기부등본만 보면 집에 빚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또한 일반적인 전세사기의 뉴스에서 처럼 갑자기 집주인 바뀌거나 하지도 않았다. 신탁원부에서도 임대차계약 권한은 원래 집주인에게 있다고 써져 있었다. 암기과목 외우는 식으로 전세사기 예방 체크리스트를 숙지했다면 아마도 전세계약을 덜컥 체결할 수도 있던 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등기부등본을 마치 책 읽는 것처럼 앞 뒤 맥락을 따져가면서 읽을 수 있다면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위험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세 보증금 피해는 전세사기가 아니더라도 최근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전세사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증금을 받기에 신뢰할 만한 상황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하고, 그런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전세사기는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교육은 물론 그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전세사기가, 또 사기가 아니더라도 신뢰하기 힘든 상황에서 큰 보증금을 빌려줌으로써 전세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까의 예시에서 김투기가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로 설정된 근저당권 30억 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 은행에서는 대출금액은 물론 이자까지 못 받은 상태에서 집을 경매로 넘겨 팔 상황을 가정해 대출금액의 1.2배까지 근저당권을 설정해 놓는다. 그러니까 근저당권 내용에서 채권최고액을 1.2로 나누면 대출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30억을 1.2로 나누면 25억이므로 집주인 김투기는 25억을 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고 알 수 있다.
25억의 은행 빚이 존재하는 집은 전세 계약을 하기에 안전할까? 정답은 '아직은 모른다.'이다. 25억이면 아주 큰 빚일 것 같은데 왜일까? 그 답은 이제 시세를 조사해보고 직접 집들을 방문해 보면서 알아봐야 한다. 공교롭게도 김지혜 씨는 신탁 등기가 된 이 집을 후보지로 걸러내면서 4곳만 임장 하기 아쉬워 하나의 후보를 더 물색해 보기로 한다. 일단 변경된 김지혜 후보지는 다음과 같다.
<김지혜 씨의 변경된 후보지들>
1. 보증금 300만 원/ 월세 20만 원 (다가구 주택 원룸) 통근시간 왕복 1시간 10분
2.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0만 원 (다가구 주택 원룸) 통근시간 왕복 1시간 20분
3. 보증금 6천만 원 전세 (빌라) 통근시간 왕복 1시간
4. 보증금 1억 원 전세 (오피스텔) 통근시간 왕복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