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낭비의 악순환을 인내와 환희의 선순환으로
결국은 행복입니다. 우리는 딱히 목적도 이유도 없이 태어났지만 일단 태어난 이후에는 다들 행복을 갈망하며 살아가죠. 누군가는 돈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만 왜 돈이 중요하냐 물어본다면 '돈이 많아야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행복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사람들은 대개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 주면서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느낌, 또 돈이 어느정도 충분히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로서 행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행복을 정확히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지언정 비슷한 느낌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치고, 그렇다면 행복에 대해 우리가 세 개 정도의 질문은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2. 돈과 행복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3. 행복에 대한 생각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비슷할까?
이 질문에 대해 행복 연구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명한 심리학자인 서은국 교수님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1.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사회적 관계다
2. 돈이 어느 정도 있고 나면 행복에 돈이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미미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3. 한국인들은 행복에서 돈이 중요하다고 응답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높은 편이다
학문이라는 것이 늘 주장과 근거, 반론과 근거가 이어지는 분야이기에 위 문장들이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행복에 대한 연구가 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긴 시간 이어진 걸 고려하면 정답은 아닐지언정 정답에 가장 가까운 문장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들을 우리들의 현실과 함께 이어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참 서글퍼집니다.
'한국은 1인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주류 소비와 요식업 매출의 급감이라는 숫자가 사회적 모임 역시 줄어들고 있음을 나타낸다. 혼인율과 출산율도 급격히 낮은 상태다. 행복에 있어 사회적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관계는 점차 사라지고만 있는 것 같다. 돈이 행복에 있어 필요한 요소는 맞다고 쳐도 우리는 행복을 위해 너무 돈돈 거리면서 살고 있다. 아마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사람이 스트레스인 걸 어쩌란 말인가.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다가 잘 맞지도 않는 사람이랑 괜히 엮여 스트레스받느니 덜 행복하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그냥 안 만드는 게 더 나은 삶 아닌가.'
그렇습니다. 사회적 관계, 참 좋죠.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어울려 놀거나 평생의 동반자로서 함께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상처받는 통로도 바로 사람.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린 그동안 권리는 없되 의무만 많은 관계들 속에서 사람이라는 단어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공허한 물질세계뿐이라 어느 정도 충족된 이후에는 그 부질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물질, 돈을 추구하며 우리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동안 행복은 물론 돈에서도 더욱 멀어집니다. 관계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삶의 염증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 소비에 눈을 돌리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통장잔고가 녹아내리고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싼 맛집음식과 비싼 옷, 신발, 가방, 시계, 자동차에 손길이 닿는 순간 우리 손에는 행복도 돈도 남지 않습니다. 아 한 가지가 남겠군요. 삶의 권태. 우리 뇌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 대상 자체만으로 지속적인 만족을 느낄 수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그 모든 낭비도 결국 돈을 지출하는 순간으로부터 며칠, 길어봐야 수개월 내로는 적응해 버리고 권태만 남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낭비와 권태, 권태와 낭비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책 속에 길이 있다더니,「행복의 기원」에서 이런 문장이 눈에 띕니다.
-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적응이라는 화두로 잠깐 다시 돌아가 봅니다. 곱디고운 흰색의 마블링이 가득한 소고기 꽃등심은 참 비싸지만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한 번 그 맛을 보면 다시는 그 이전의 소고기로 못 돌아간다고 합니다. 정말 좋은 것에 익숙해져 그 이전의 조금 덜 좋은 것에도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것, 적응의 또 다른 예시입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이전까지 먹던 음식은 더 성에 차지 않고, 다양하고 멋진 기능이 들어간 각종 전자기기들을 사용하고 나면 그것 없이는 못 살 것 같고. '그것 없이 어떻게 살았었지?' 하는 생각마저 들지요. 문제는 그런 편리하고 좋은 생활들을 유지하고자 자꾸 지출이 늘기만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야심 차게 절약을 시도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생각보다 많이 절약하지 못하고 '이것 아껴봤자 부자 안된다.' 하며 포기하고 마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끼는 대상을 돈이 아닌 쾌락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고급 소고기를 덜 먹거나 심지어 고기 자체를 좀 덜 먹다 보면 저렴한 고기더라도 맛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체질에 따라서는 고기를 덜 먹다 보면 고기 자체를 예전보다 안 좋아하는 취향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향긋하고 식감이 좋은 귀한 채소들을 좇느라 소비가 늘 수도 있는데, 이 때도 마찬가지로 잡곡밥과 간단한 반찬들 위주로 살아가다 가끔 그런 채소를 먹으면 맛있는 채소를 최고로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먹고 싶고 떠오르는 음식이 늘어나 디저트로 하나만 더 예시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케이크는 비쌀수록 맛있긴 합니다. 고급 호텔의 파티셰 분들이 인생을 걸고 만든 디저트는 입에 넣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먹고 난 후에도 생각만으로도 달콤하고 풍미가 있지요. 그런데 쾌락을 아끼기 위해 1주일 동안 아무런 단 것도 먹지 않으면, 흔한 빵집에서 파는 케이크만 먹어도 황홀합니다. 꼭 비싼 음식일 필요도 없습니다. 단 것을 오래 참으면 초코파이에 바나나 우유만 먹어도 극락에 간 듯한 쾌락을 느끼고 자극적인 음식을 한 열흘에서 한달간 꾹 참고 끓여 먹는 라면보다 맛있는 음식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겁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아무리 좋은 것에도 쉽게 적응해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게 되기도 하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것에도 견디다 보면 이 또한 적응해 그럭저럭 살만하다 생각하며 살 수 있는 동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1년에 한두 번 향유할 것, 1달에 한두 번 향유할 것들을 정해 그 순간의 온전한 향유를 위해서 나 자신을 아끼다 보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저축도 확 늘어나고 행복도도 크게 증가합니다.
'이것 아껴서 부자 안된다.'라는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보지요. 이 문장을 정말로 아주 가끔 사용한다면 이 문장은 맞는 말입니다. 일시적인 소비를 하는데에 먹는 것에는 비싸봐야 아낄 수 있는 돈이 몇 만 원, 입는 것에는 몇 십만 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문장을 자주 사용하면ㅅ니 소비의 최저 만족선이 높아지기에 '이것 아껴서 부자 안된다.'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틀린 말이 됩니다. 오로지 평소에 만족의 기준점을 낮추는 노력, 즉 쾌락을 아끼는 노력을 지속하는 사람들에게만 정말로 가끔 찾아오는 거액 소비의 환희가 앞으로의 자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말로 '이것 아낀다고 부자 되지 않는' 행위가 됩니다.
쾌락을 아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려는 노력이 우리를 행복에 더 가깝게 하면서 돈에서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빈곤하지 않을지언정 풍요를 느끼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