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롤모델은 두 명인 것 같다.
삶의 태도는 ‘우리 아빠’를,
삶의 결은 ‘이병률 시인’을 닮고 싶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다.
항상 모든 결정에 신중하셨고,
한 번 결정을 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셨다.
어렸을 땐 그런 모습이 ‘똥고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 아빠는 너무 고지식해서 유연하지 못하고,
너무 딱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내 삶이라는 작은 책임을 지게 되면서
아버지의 행동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책임감은 언뜻 보면
“자기가 말한 것, 행동한 것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단순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장남이라는 무게, 가장이라는 무게,
사장이라는 무게…
여러 겹의 무게들이 아버지의 책임감을 결코 가볍게 두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한 번쯤은 내려놓을 수도 있었을 그 무게를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던지지 않으셨다.
그런 삶의 태도를, 나도 가지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의 가치관에는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행복이 돌아간다면 괜찮다’는 믿음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항상 나는
내가 조금 더 손해보더라도
무언가를 더 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알게 모르게
내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다.
삶은 아빠처럼 살고 싶다.
자신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으로.
그리고 또 한 명,
‘이병률 시인’이다.
내가 이렇게 기록 모임에 가입하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난 이후였다.
그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기쁨, 슬픔, 행복, 아픔마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감정들을
글로,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의 산문집은
나를 흥분시켰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걸 책으로 묶고, 삶을 기록하는 그 모습이
그저 멋있었다.
그의 사랑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닮고 싶다기보다는,
그렇게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에초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에게
글처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표현력을 배우고,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어쩌면
각박한 세상에서
‘작가’라는 길을 온전히 걷는 건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기록하고,
남기다 보면—
언젠가는, 작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한다.
삶의 태도는 “아빠”,
삶의 결은 “이병률 시인”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