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파도타기

K culture wave on

by Esther Active 현역

미쿡 참새가 방앗간을 알아버렸다. 미쿡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갈까 못 지나갈까? 정답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이다. 14년 전 만해도 LA, 뉴욕, 시카고 등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던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 음식 문화는 지금은 웬만한 곳에선 다 같이 즐기는 문화가 된듯하다. 뉴욕만 하더라도 42번가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국 프랜차이즈 빵가게가 세 군데나 있고 자동차로 9시간이나 떨어진 우리 동네에도 한국 프랜차이즈 빵가게가 세 군데나 있다. 처음 문열었을때는 정말 빵, 케이크가 너무 빨리 떨어져 점심시간이 지난 2시 이후에 가면 빵이 없었다. 한국식 케이크는 미국처럼 너무 달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높아 생일 파티가 많은 토, 일요일에 가면 헛걸음을 할 정도였다. 그뿐인가 한국식 핫도그, 즉 설탕도 뿌리고 치즈가루도 뿌리고 케첩도 뿌리고 미국 사람들이 애정하는 감자튀김도 옆에 붙어있는 핫도그는 줄을 서서 사 먹는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 다시부는 프랜차이즈 투자 이민설명회 광고를 우연히 본 적 있다. 아마도 이미 포화상태된 한국 시장을 너머 미국에 좀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계획과 K Culture의 물결이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5년 전 우리 교회 구역장님께서 김밥집을 오픈하셨을 때가 생각난다. 이게 토종 미국애들 입맛에 맞을까? 했었을 때 집사님은 자신 있다고 하셨다. 좋아할 거라고.... 좋아하는 소불고기 김밥도 만들고 매운 제육김밥도 만들고 vegan과 vegitarian을 위한 야채김밥도 만들고 튀김 좋아하니 새우튀김 김밥도 만들고 김치는 다 아니 김치 김밥도 만들고 집사님의 예상은 적중했다. 몸에 좋은 야채와 단백질의 균형 잡힌 finger foods인 김밥은 점심, 저녁, 파티음식으로 너무나 인기가 좋다. 처음엔 혼자서 김밥을 마시다 지금은 매니저 한 명을 포함한 다섯 명의 종업원이 있다. 얼마 전부터는 같이 먹을 라면과 후식으로 먹을 호떡도 메뉴에 포함 사업을 늘리셨다. 또 2년 전에는 우리 구역의 또 다른 집사님은 방앗간 떡기계를 한국에서 들여와 방앗간을 차리셨다. 한국사람 먹는 떡을 미국 사람도 먹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말이다. 물론 일본인도 찹쌀떡을 먹고 중국인들도 려타곤을 먹지만 한국식 떡은 또 다르지 않는가? 근데 웬걸? 일명 꿀떡, 깨송편, 요즘 유행하는 딸기 찹쌀떡등 일손이 모자라 사업체를 못 늘리신다. 단가가 비싼 떡은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는데 주문만큼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술자가 필요하다. 기도제목이 떡판을 들었다 내렸다 잘할 수 있는 힘 좋고 일 잘하는 Amigo랑 Amgia 구하기와 한국에서 떡 만들기 가능한 계절노동 아줌마 구하기다. 이를테면 블루베리 수확시절 3개월만 일하려고 국경 넘어오는 남미인들 같은 개념인 거다. 두 집사님은 미국서 미국사람에게 한국 음식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전도사들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 문화의 큰 파도가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닌 듯 보인다. 한국인 여성의 1등 신랑감 국적이 베트남이란 기사 제목을 보고 Really? How com Vitenames? 하며 기사를 한 번에 주-욱 읽어 내려갔었다. 내용인즉 대한민국의 젊은 삼포세대와 달리 늦게라도 베트남 신부를 맞이한 나이 많은 농촌 총각과 베트남 처녀는 언어 차이도, 문화 차이도, 세대 차이도 극복을 못해 이혼율이 높은데 이 베트남 여성들이 결혼 후 취득한 한국 국적은 이혼 후에도 유지가 되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 자기 마음에 맞는 베트남 남성과 재혼을 하거나 이미 한국에 거주 중인 베트남 남자와 결혼해 한국 영주권을 신청해 주고 가족을 초청해 한국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젊은 세대는 결혼을 안 하기 때문에 결혼 선호도에 관한 통계 결과가 이상하고 엉뚱해 보일 수 있다. 하긴 속초 시장에 오징어순대 먹으러 갔다 베트남 며느리에게 같이 시킨 어묵의 국물이 덜 끓어 " 덜 끓었어요 더 끓여 주세요!" 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다른 그릇에 똑같은 국물을 새로 퍼 담아주어 맛집 투어를 망친 것과 같은 경험이 몇 번이었는지.... 한국어와 한국 음식문화가 뼈에 기억되지 않은 며느리는 자기 나라 말과 자기 나라 음식이 익숙한 베트남 남편이 1등 신랑감 일 것이다. 그라운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우리가 미국서 원정 경기를 뛰는 동안 홈그라운드에서 뛰던 다른 우리 팀이 상대편에게 박살 난 축구 경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우리가 K culture의 파도에 흠뻑 취하기도 전에 K culture의 home, 한국은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훌륭한 surfer도 파도가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어둠이 바다에 이르면 surfing board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신없이 파도만 쫒다가 돌아갈 집을 잃어버린 surfer가 되지나 아늘지....미쿡 방앗간에 쌀 빻으러 가는 길에 문득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그 홈그라운드를 떠나온 것에 대한 자책감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남겨진 자들이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고 남탓하고 싶은 정죄감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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