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
불교 신자가 아닌, 유물론자에 가깝지만, 요즘 자꾸 뇌리에 박히는 말이 있습니다. ‘업보’(業報)입니다. 풀어 말한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 정도가 될 듯합니다.
아부지와 큰 형님이 중등교사였습니다. 제 아해는 초등교사이고요.
요즘 교사들, 정말로 불쌍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교사, 특히 초등교사가 가장 신경 쓰는 게 학부모랍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는 교사가 왕이었는데. 학생 뺨 몇 대 때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하지만, 그런 교실에서 교사에 적대감을 가졌던 학생들이 성장해서 요즘 학부모가 된 것이겠지요.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제가 기자로 입사했던 1990년, 기자 하기 정말로 좋았습니다. 웬만한 오보를 써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어도 되던 시절이었지요.
기자 초년병 시절, 제가 들었던 이야기.
“어느 기자가 중앙 부처와 관련한 오보를 썼대요. 중앙 부처 국장이 아쉬운 소리를 기자에게 했겠지. 기자 왈, 국장, 미안해요. 다음에 좋은 기사 써 줄게.”
요즘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은 저를 포함한 선배 세대들의 잘못도 크다고 봅니다. 언론이 독자와 국민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았으면 이랬을지요.
문재인 정부 이후 심화된 의정 갈등에서 부분적으로는, 그리고 당장의 현실에서는 의사 집단이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의사 집단에게 결국은 업보가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그런 까닭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집단에게 남는 게 뭘까요? 그 대가, 앞으로 의사들이 치르겠지요.
‘업보’를 생각하노라면 특히나 씁쓸해지는 것은...
제 주변(686 혹은 586, 아니면 474 최고참 세대)을 돌아보면 이념적으로는 좌파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뭐, 좌파라고 잘못된 것은 아니죠. 우파가 잘못된 것이 아니듯.
다만, 이념적 편식이 이 세대에 왜 특히도 심할까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이 자라던 10대 혹은 20대 초반 때 겪었던 상처랄까, 그로 인한 증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경제적 발전에 따른 자유의 확산 과정 속에서도 군부 정치, 혹은 군 출신 정치인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가 갖는 특징이랄까.
정당적 배경으로나 이념적으로나, 군부 정치 혹은 독재의 유산을 우파 정당이 이어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기에, 감성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에 이를 경험한 세대는 우파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1997년에 태어난 제 아해와 대화하노라면, ‘나에게 여전히 좌파적 감성이 강하게 남았구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지요.
코비드가 한창이던 2020년 초, 감염자에 대한 강제적 동선 파악과 공개 등에 대해 아해는 ‘개인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비판적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강제적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으니, 그런 제재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요.
공동체나 국가에 대한 강조.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큰 정부’를 지향하는 태도. ‘나’가 아닌, ‘우리’가 주어가 됐던 국민교육헌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세대. (국민교육헌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문장 주어는 항상 ‘우리’입니다. ‘나’가 한번 등장하긴 합니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할 때 말입니다. 그때도 ‘나’는 ‘우리’에 종속된 채로 등장합니다.)
우파임을 공언하고 자임한 지 수십 년이 된 상황이었음에도, 아해와 비교할 때 저는 여전히 좌파였습니다.
6월 3일, 대선을 치릅니다.
저는 이번 대선은 사실상 결판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26년 지방선거 역시 사실상 승패는 났다고 봅니다. 28년 총선이라면 모를까.
어쩌겠습니까? 인구구조로 볼 때, 좌파적 정서가 우세한 40대 후반, 50대, 60대 초반 인구가 가장 바글바글한 상황에서, 우파 대통령이 계엄령까지 선포했다가 쫓겨난 상황인데요.
죄다 업보입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우파 입장에서는 ‘그 좋던 시절’인 1970~1990년대, 대중의 마음을 읽고 얻으려는 공부를 전혀 안 한 채 ‘부잣집 막내 도령’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이들, 혹은 그 후예들이 ‘자신들의 잘못 여부와는 상관없이’ 책임을 질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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