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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개량된 돼지 품종 같은 몸매를 보면서

by 신형준

머리가 나쁜 편인데, 단순 수치는 잘 기억합니다.


1980년 치른 연합고사와 1983년에 본 학력고사 수험번호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당연히 군번도 기억하지요.

기억하는 수치 중 하나는 키 변화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 이후 고 3까지의 키 변화는 이랬습니다. 114cm(이하 단위 생략) 118 124 130 135 140, 중1 145, 152 158, 고 1 165 173 177.


대학 입학 때 잰 키는 177이었습니다.


흠, 이제 내 키 성장은 멈췄구만.


군에 입대(1986년)하니 180이라더군요. 입사 직후(1990년) 잰 키 역시 동일했습니다. 1990년대 어느 해였던가, 건강검진 때 181이 나오기도 했지만.


키와 달리 몸무게 변화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 20kg(이하 단위 생략), 고 3 때(1983년) 56이었고, 군 기간 내내 60이었다는 것입니다. 입사 직후 때도 60이었습니다.


그런데...


1999년, 70을 처음으로 넘겼습니다. 정확히 71kg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나도 살이 찌는구나. 저의 적정 체중은 아무리 생각해도 60 후반일 터인데.


2009년 초, 직장 생활을 이르게 마칠 때까지 70 최초반은 잘 유지했습니다.


2013년 4월쯤, 한동안 근육이 아플 정도로 달리기를 했더니 68이 나왔습니다. 12.5km를 1시간 2분대로 매일 달린 결과였습니다.


되찾은 60kg대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극심한 근육통 때문에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속도를 줄이는 대신 뛰는 거리를 늘렸지만, 다시는 60kg대로 재진입하지 못하더군요.


대신, 조금만 운동을 게을리해도 몸무게는 눈 녹은 물로 조금씩 불어가는 마을 개천마냥 눈금을 시나브로 올렸습니다.


오늘(25년 5월 5일) 늦은 밤, 트레드밀(런닝머신)에서 가볍게 5km를 뛴 뒤 잰 몸무게는 ‘형언하기 힘든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더니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 아닌, ‘육고기용으로 잘 개량된 돼지 한 마리’가 떡하니 서 있더군요.


하긴 달리는 속도에서도 저의 몸매 변화는 잘 드러납니다.


야외에서 뛰다가 2001년부터 트레드밀을 탔는데, 그때는 10km를 40분대 후반에 매일 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마음먹고 뛰어도 50분대 후반입니다. 오뉴월 개처럼 헉헉거리면서. 부상이 올까 봐 요즘은 매일 10km를 뛰지도 않습니다. 기껏해야 8km 정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기초대사량은 날로 떨어지는데 먹는 건 오히려 늘어나고, 운동량도 줄어드니 날로 ‘개량 돼지처럼’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라.(전도서 11장 9절)


#개량육고기 #몸무게 #기초대사량 #달리기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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