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떨어짐 권하는 사회
지난 23년 9월, 당시 영부인이던 김건희 씨가 일반인 출입 제한 구역인 경복궁 근정전에 입장한 뒤 임금이 앉는 자리(용상)에 앉았던 사실로 국정감사장이 뜨겁습니다.
아무리 영부인이어도, 국가 외교나 국익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면 근정전 같은 일반인 출입 제한 구역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용상에까지 앉았던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듭니다. 용상이 현대 재현품일지라도요.
한데, 비판에도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닐지요.
다음 영상 한 번 보십시오.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67772?influxDiv=NAVER
(jtbc는 안 본 지 오랜 방송이지만, 지인이 보도 내용에 혀를 차면서 보내주더군요.)
국회의원 두 사람, 그리고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던 이의 발언 내용입니다.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1. 25년 10월 23일, 국회 문체관광위 국감장에서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용석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사건 당시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 근무)에게 던진 질문.
“김건희가 왜 용상에 앉았냐고. 근정전에서. 왜 앉았어? 일개 아녀자가!”
이 분, 왜 국감장에서 반말을 하나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으면, 그리고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온 이에게는 반말을 해도 되나요?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일개 아녀자’라는 단어입니다.
아녀자는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성인지 감수성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 아녀자라는 단어를 쓰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한데 양 의원은 너무도 당당하게 ‘일개 아녀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2.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cbs 김현정 뉴스쇼’에서 발언
“윤석열 다음에는 김건희가 대통령 돼서 왕좌에 오르겠다 하는 망상 속에서 역술인들의 말을 믿고 저런 짓을 했지 않느냐...”
박지원 의원은 독심술의 대가라고 자칭한 ‘궁예’의 환생인가요? 김건희 씨를 비판하는 것은 좋은데, 그 비판의 근거는 과학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건희 씨의 속마음을 박 의원 님은 도대체 어떻게 추정한 것일까요? 이해불가.
3. 언론인 출신으로 24년 총선 때 국민의 힘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김종혁 씨의 ‘cbs 박재홍의 한 판 승부’ 발언.
“무속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왕의 기운, 왕의 어쩌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했던 거고… 왕의 어떤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라든가, '나 같이 왕이 될 팔자가 있는 사람들이 여기로 와야 되는 거고, 내가 조선 시대 왕이었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이 분 역시 독심술의 대가인가 봅니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그저 자신의 추측만으로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분, 중앙일보에서 베테랑 정치부 기자를 거쳐, 편집국장까지 지낸 것으로 저는 압니다.
김건희 씨든 윤석열 전 대통령이든, 비판하고 비난하세요. 하지만 누구를 비난할 때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장이라는 중인환시, 아니 ‘전국민환시’ 속에서 ‘아녀자’라는 여성 비하 용어를 사용한 양문석 의원에게 여성단체에서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까 하는 점입니다. 침묵하거나, 아니면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처럼 넘어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추신
임기 말년이던 2022년 4월 5일,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 탐방로 개방 기념 산행 때 법흥사 터로 알려진 곳에 있던 연화문 초석 위에 앉았다가 ‘종교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 없음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에 김건희 씨가 경복궁 근정전에 입장해 용상에 앉은 겁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앞으로 국가유산 업무 담당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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