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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를 가진 이가 코끼리를 만질 때

권리 없는 책임 없고, 지원 없는 규제는 없다

by 신형준

오늘 자(25년 11월 7일) 조선일보에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께서 ‘한국 농업을 되돌아 보자’는 내용의 글을 쓰셨습니다.


짧게 요약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쌀농사 등 농업에 대한 지원을 다시 생각하고 산업적 재편을 생각해 보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11/06/XEH3PM7QGJG6DMQMQXWBH2I3PM/


옳은 말씀. 14년차 농민으로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다만, 이런 주장이 정책으로 육화하려면 전제가 있습니다. 권리 없는 의무는 없고, 지원 없이 규제만 받아서는 안 된다 입니다.


제가 농사짓는 곳(인천시 서구 대곡동)의 예를 들겠습니다.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 내륙 중 도농복합지역으로 분류된 몇 안 되는 곳입니다. 전체 토지의 40% 정도가 농업진흥구역입니다. 농업진흥구역은 쉽게 말하면 ‘농사만 짓도록 정부가 지정한 땅’입니다.


이곳에서 농사짓는 이중 ‘방년 60세’인 제가 제일 젊습니다. 토박이 농민들의 나이는 대개 70대 중반 이상입니다. 하고한 날 쪼그려 앉아 농사만 지은 탓인지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논 1000평 정도를 경작할 때 ‘기계 값’(이앙이나 추수, 탈곡, 벼를 말릴 때 사용하는 기계 비용)이나 비료 그리고 농약 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연간 순수익은 250만 원이 절대로 안 됩니다.


쌀값이 오른다고 푸념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산지의 쌀 판매 가격은 지난 세월 동안 다른 물가 상승과 비교한다면 오른 게 없습니다. 아니. 마이너스이지요.


이러니 젊은이들이 농사를 업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1000평 논농사로 노동력 비 포함해서 연 300만 원도 못 버는데 왜 쌀농사를 짓습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요.


최저 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이니, 주 15시간 기준 한 달에 60시간만 근무하면 주휴수당까지 포함해서 68시간 임금분 즉 68만2040원을 받습니다. 주 15시간씩 넉 달만 연속으로 근무하면 1년 1000평 논농사보다 더 법니다.


한데 제가 사는 곳에서 논 1000평을 가지면 다른 재산이 전혀 없더라도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합쳐서 월 30만 원 정도를 내야 합니다. 논 한 평당 공시지가가 최소 60만 원은 하거든요. 그러면 건강보험 관련으로 1년에 360만 원을 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논농사 1000평을 지으면 결국 손해죠? 건강관련 보험료까지 포함하면 ‘적자 인생’입니다.


농민에게 각종 정부 지원이 있지 않느냐고요?


예, 있죠.


제가 사는 곳의 농민들은 논이든 밭이든 1000평 정도를 소유하면 제곱미터 당 150원의 직불금을 받습니다. 이 돈에도 뭔지 모를 세금이 붙어서 실질적으로 연 47만 원 정도 직불금을 받을 겁니다. 농업인 공익수당으로 매달 5만 원도 지급되니, 1년이면 60만 원입니다.


즉, 농민이 연 1000평 정도 토지를 보유하면 연 100만 원 정도의 각종 지원금을 중앙이나 지방 정부로부터 받습니다.


그러나, 토지 소유로 인한 건강관련 보험료나 토지 보유 재산세까지 포함하면 농업으로는 마이너스 인생이죠? 이건 간단한 산수이니까. 미적분도 아니고.


그럼 농사를 짓지 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예, 되죠. 한데요, 농민임을 포기하는 순간, 토지를 팔 때 양도세가 ‘징벌적으로 징수’됩니다. 양도세가 일반 세율에서 10% 중과되니까요. 게다가 날이 갈수록 ‘비농업인으로 분류된 이’에 대한 추가적 중과 조치가 언급되니 농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토지 공개념 도입까지 운운되는 나라입니다.)


그럼 농업도 하면서 다른 일도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예, 되죠.


한데요, 토지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억제책이 있습니다. ‘농업 외 소득이 연간 3700만 원 이상이거나, 농업 외 근로로 전체 근로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순간’ 양도세를 낼 때 농민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령 내가 농사를 내내 짓더라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은퇴한 대법관이 은퇴 뒤 내내 농사를 지었어도 단 한 건 수임으로 성공 보수까지 연 4000만 원을 벌었다면 그는 농민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토지를 팔 때 10% 중과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농업 소득이 연 300만 원도 안 되는 제가 농업 이외의 근로에 종사하지 못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농지를 형질 변경해서 대지나 공장으로 바꾸라고요? 그 허가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불가능하고요.

우리 마을은 지난 20여 년 전부터 도시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데 여태 난항입니다. 주된 이유가, 정부(지방정부 포함) 반대 때문입니다. 00년대 후반에는 검단신도시 2기로 포함했다가 토지 보상 능력이 없어서 지방정부가 포기했고, 요즘은 농림부에서 ‘농업진흥구역을 도시 개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 양보해서, 논을 밭으로 변경해서 쌀농사 대신 고소득 밭농사를 하자고요?


농사 안 해보셨죠?


농민들이 쌀농사를 하는 이유는 쌀이 고소득 작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쌀농사가 편해서입니다. 모든 공정이 기계화로 진행되니까. 하지만, 고추나 마늘 농사 200평만 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아시게 될 겁니다. 10km를 1시간 안에 거뜬히 달리는 저조차 이건 힘듭니다.


잘 아시듯, 농업은 노동력 투여 대비 소득이 적으니, 젊은이들이 다 떠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역 농업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력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하루 일당은 최소 15만 원이고요. 하루 일당 15만 원 주고 이익을 낼 수 있는 농업 종목이 뭐가 있을까요? 이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울며 겨자 먹기로 논농사를 하는 겁니다.

예,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님의 말씀에 저는 동의합니다.


직불금 안 받을게요. 농업인 공익수당 안 받을게요. 그 어떤 보조금도 받지 않겠습니다. 경쟁력 없는 농업을 살리려고 피 같은 혈세를 쓰지 맙시다.


다만 전제가 있습니다.


제발 농지에 대한 규제 좀 풀어주세요.


나이 80세가 넘은 제 형님과 동네 선배 님들이 구부정한 허리로 농사짓는 모습을 저 역시 보기 싫으니까, 도시개발하겠다는 농지에 대한 규제 좀 하지 마세요.


헌법에도 명문화된 ‘경자유전’ 운운하고 ‘토지 투기 규제’ 운운하면서, 농지에 대한 양도세 산정 때 ‘농민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징벌적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을 철폐하십시오. 아파트는 대도시일지라도 2년만 실거주하면 그 어떤 징벌적 양도세를 매기지 않잖아요. 농사하기 힘들다는데 왜 국가가 이런저런 규제로 실질적으로 농지 매매를 막습니까.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님. 그리고 박 전 수석 님의 주장에 동의하시는 분들께 머리 숙여 다시금 부탁 올립니다.


제발 사정을 전반적으로 알지 못하시면, 침묵하십시오.


농민들이 농사가 좋아서 농사짓는 줄 아세요? 쥐꼬리만한 지원이 아쉬워서 농민들이 목청 높여 농업 지원 철폐에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세요?


대부분의 농민들도 농사짓기 싫어합니다. 편의점에서 저도 아르바이트하면서 시간당 1만30원이라도 받고 싶어요. 그게 살림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니까.


제발 농업 지원금, 일절 끊으십시다. 다만, 농지에 부여된 각종 규제도 철폐해주세요. 권리 없는 곳에 의무도 없는 것 잘 아시죠?


추신


한데 이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세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때 밀 가격 폭등이 전 세계적으로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아시죠?


게다가 우리는 휴전 국가입니다. 전쟁이 종식된 국가가 아닙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쌀이 남아도는 것은 괜찮아도, 쌀이 부족하면 큰일 납니다.


경쟁력 없는 농업을 재편하자고요? 쌀농사를 줄이자고요?


박 전 수석 님이 농촌에서 단 1년만 현장에서 농사지으시면 이런 이야기는 하지 못하실 겁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현실에서 동떨어진 글을 쓰는 것만큼 쉬운 게 없지요. 만 18년 동안 중앙일간지 기자를 했던 이로서의 소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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