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어느 분이, 외국 대학에 갓 입학한 자제의 1학년 1학기 학점을 전하면서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봐도 너무 낮은 학점.
떠오르는 기억.
대학 입학 뒤 첫 수업 일은 1984년 3월 6일 월요일이었다. 그날 아침 8시가 안 돼서 학교 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조금 과장하면, 고 3 등교 시간과 거의 비슷한. 1학년 1학기 내내 아침 일찍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내가 학구적이어서? 공부에 미쳐서?
노.
고백하면, 나는 그 대학에 거의 꼴찌로 입학했다. 대학은 가고 싶고, 성적은 턱없이 부족하고. 하여, 치열한 눈치작전과 배짱 지원 끝에 경쟁률이 낮은 과에 지원했다.
입학 뒤 다짐했다.
이 학교에 꼴찌로 들어왔지만, 졸업할 때 중간이라도 하자.
1학년 1학기 성적표가 나오고 한 2주 뒤 등록금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됐는데,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다. 학생회비 6000원만 내면 되는.
그 며칠 뒤 고 3 담임 선생님을 학교로 찾아뵙고,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나 대학 가게 하려고, 사실은 불법이던 ‘백지 원서’를 주셨던 분. 원래 지망학과를 적은 뒤 학교장 도장을 받게 돼 있는데, 나는 학교장 도장이 미리 찍힌 백지 원서를 들고 원서 접수 창구로 간 뒤 치열한 눈치와 배짱을 바탕으로 지망 학과를 적었던 것.
지금도 고 3 담임 선생님께 감사함과 죄송함을 갖는 이유이다. 선생님 기대에 조금 더 부응했어야 했는데.
전액 장학금을 받고도 입학 성적 콤플렉스는 쉬 지워지지 않았다. 졸업 뒤 언론사에 입사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지만.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하면, 그 대학에서도 인정해 주던 시절.
그분 자제의 성적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초반에 조금 늦은 것이 뭐 그리 중요해. 신(臣)에게는 아직 7학기가 남았는데. 여학생도 그렇겠지만, 남학생도 목표 의식만 뚜렷하면 언제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나는 본다.
하여, 무조건 격려하라고 조언했다. 자제분도 부모님이 보낸 헌신을 잘 알 것이라고 말씀드리면서. 그 헌신에 곧 보답할 것이라고.
여전히 그리 생각한다. 정상적인 자식이라면 부모의 헌신을 이해한다. 그리고 보답한다.
자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부모에게 내가 면전에서 “조금 더 기다려 달라”며 부모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 ‘자식은, 믿는 만큼 돌아온다’는 것을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심도 있는 토론 혹은 논쟁이 오가기도 한다.
부모의 관심이나 조언을 간섭이나 비판으로 매도하지 마라. 애정이 없으면 그런 조언도 안 한다.
당신(=나) 같은 사람도 문제다. 사회는 냉정하다. 냉정한 정글로 나가야 할 사람을 언제까지 감싸줄 수는 없다.
헬리콥터 맘, 헬리콥터 파 같은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이 사회가 캥거루족을 양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을 농밀히 들여다보노라면, 내 이런 생각은 어쩌면 내 정치적 성향 때문에 배태된 것일 수도 있다고 자인한다. 내 또래의 ‘정치적 경향성’을 나는 혐오에 가깝도록 싫어하니까. 그러니, 그 세대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를 일부러라도 지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니들 주제에 누구를 비판해‘라는 식의.)
내가 여전히, 너무 나이브한 것일까. 아니면 매사 정치적 경향성에 과몰입한 것일까.
모를 일이다.
#부모 #자녀 #교육 #양육 #세대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