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에게 ‘이런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어, 대통령과 교사 간담회가 있었어”라고 묻더군요. 대통령실에서 교사 섭외를 ‘비공식적’으로 한 것이기에, 교사들도 뉴스를 보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기사를 읽으면서 아해의 얼굴은 일그러졌습니다. 하긴, 교사가 아닌 제가 읽어도 씁쓸했으니까.
내남없이 힘든 이 시기, 교사 수당을 50% 100% 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압니다. 고맙지요.
하지만, 우리 냉정히 따져보지요. 담임 수당은 월 13만 원입니다. 보직 수당은 월 7만 원이고요. 이것을 각각 19만5000 원, 14만 원으로 인상한다는 겁니다. 담임과 보직을 다 맡을 때, 모두 13만 5000 원이 인상되는 겁니다. 담임과 보직을 안 맡으면 결국 33만 5000 원을 덜 받는 것이고요.
아해나 저의 입장, 아니 교사 대부분의 입장은 같을 겁니다. 담임이든 보직이든 ‘안 맡을 수 있다면 안 맡는다’입니다. 한 달 33만 5000 원을 안 받는 게 훨씬 편할 터이니까. 한 달 22일 ‘실 근무’로 치면, 담임과 보직을 맡지 않아서 하루 1만 5000 원 정도를 덜 받는 대신, 어디 가서 매주 하루 한 시간씩 만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 정도 돈은 벌 터이니까요.
예를 들어볼까요?
초등학교에는 ‘늘봄학교’라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몇 개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됐으며, 내년부터 확대된다고 합니다. 정규 수업을 마친 오후 4시 30분부터 오후 7시 정도까지 부모가 원하면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서 교육을 받는 것이지요. 늘봄학교 교사는 담임을 맡지도 않기에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늘봄학교와 교육청을 연계하는 업무 등 행정적 처리는 모두 정규교사의 몫입니다.
정규교사가 아닌 ‘외부인들’이 늘봄학교 교사로 참여하는데, 수당은 대개 1시간 당 7만 원 정도입니다.(적은 곳은 5만 5000원 정도라네요.) 늘봄학교에서 하루 4시간만 가르치면, 4년 차 교사인 제 아해의 연봉보다 많습니다. 교사들이 ‘늘봄학교 교사를 할 수 있다면, 정규교사보다 그게 낫다’고 자조하는 이유입니다. 아니, 늘봄학교에서 한 주일에 한 시간만 가르쳐도, 담임과 보직 두 개 업무를 맡을 때보다 금전적 대가는 더 큽니다.
물론 교사들도 잘 압니다. 전 사회적으로 육아와 교육 문제 해결이 시급하기에, 늘봄학교에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교사들의 ‘소외감’도 늘어가는 것이지요. 다만, 국가 예산 집행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하기에, 참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 예산 집행이라는 현실을 생각할 때, 교사들이 희망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겪는 아픔을 ‘수당 인상’으로 치유하기에는 국가 예산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예산 쓸 곳이 어디 한두 군데입니까. 그렇기에, 교사들은 더 씁쓸해하는 겁니다. 우리가 돈 때문에 작하(昨夏) 땡볕 아래서 집회를 한 것으로 국민에게 비치겠구나, 자조하면서요.
아해는 동료 교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면서 인터넷 초등교사 사이트에 들어가더군요. ‘자존심 상한다’는 반응이 주였습니다. ‘인상 발표에 어느 교사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냐’고 한탄하는 이도 많았고요.(사실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 분위기상,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 않기가 힘들었겠지만.)
교권 관련법이 개정 공포됐다지만, 세부 사항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현실은 혼란스럽지요.
모든 학생은 ‘금쪽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화는 교육에서도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처럼 교사가 ‘전제군주’와 같은 힘을 교실에서 가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교사조차도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우려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조차도 내 아해가 “엄마 아부지,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이유 없이 혼났고 벌 받았어”라고 하면, 자초지종을 냉정히 따지기보다는 당장 화부터 내시지 않을까요? 물론 저 역시 그럴 겁니다.
아부지는 서울대 사범대의 전신인 경성사범을 나오시고 평교사로 은퇴하셨지요. 교사가 선생님으로 불리던 시절, 아부지는 교사라는 직업을 너무도 사랑하셨지만 저는 교사라는 직업이 ‘그냥’ 싫었습니다.
요즘 아해에게 그리 말합니다.
“내가 (성적에 맞춰) 교대 말고 수의대 가라고 했지? 이제라도 학교 그만두고 수능 다시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