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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한국 마라톤, 그리운 정봉수 감독

-2시간 35초 세계기록 수립을 보면서

by 신형준

지난 일요일(23년 10월 8일) 외신으로 급보가 터져 나왔습니다. 마라톤 세계 기록이 나온 겁니다. 케냐 마라토너 켈빈 킵툼. 2시간 35초.


https://www.bbc.com/sport/athletics/67047638


(마라톤은 도로 경사도 등 여러 사정 때문에 ‘대회 기록’은 있어도, ‘세계 기록’은 없다는 게 육상계의 공식 입장이지만, 언론은 물론 육상계조차 세계 기록이라는 표현을 여전히 씁니다.)


마라톤 2시간 내 돌파 역시 꿈만은 아니게 됐습니다. 36초만 단축하면 되니까요.


그 며칠 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라톤 경기. 한국 대표 중 최고로 잘 뛴 선수가 2시간 16분 58초를 했습니다. 마라톤에서 16분 이상 차이는 거리상으로는 5km가 훨씬 넘습니다. 이 기록은 1974년 동아마라톤 때 문흥주 선수가 세운 2시간 16분 15초보다도 늦습니다. 한국 마라톤의 현재가 50년 전보다도 못한 셈이지요.

하긴, 2012년 이후, ‘토종’ 한국 마라토너가 매년 세운 최고 기록 중 2시간 10분대 안에 드는 기록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주한 선수는 케냐에서 귀화한 선수이므로 제외합니다. 한국 육상계가 애초부터 키웠던 선수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왜 이리 됐을까요? 베를린 영웅 손기정, 1950년 보스톤 마라톤에서 한국인 1~3위 석권 등 예전 일을 들먹이지 않겠습니다. 1992년 올림픽과 1996년 올림픽에서 한국은 마라톤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지 않았나요? 단 30년 만에 한국 마라톤은 1970년대 기록으로 돌아간 겁니다.


1990년대 한국 마라톤의 중흥은 정봉수라는 거인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김완기 황영조 이봉주 김이용 등 한국 마라톤 기록 제조기들이 모두 코오롱에서 감독직을 했던 정봉수의 아이들입니다.


정 감독은 혹독한 훈련량은 물론, 단백질 위주로 식사를 하되 식사량까지 엄격히 제한하는 등 지독한 통제로 유명했습니다. 1990년대 마라톤 르네상스는 그래서 탄생했습니다. 1987년, 당시 코오롱 회장이던 이동찬 선생의 지원 아래 코오롱 마라톤팀이 창단된 뒤 이룬 업적은 형언하기 힘듭니다. 기록으로 볼까요?


1990년 김완기, 한국 최초 2시간 11분대 진입,

1992년 황영조, 2시간 8분대 최초 진입(한국 기록을 대번에 2분 15초 앞당긴 것)

1992년 올림픽 제패

1996년 올림픽 은

1998년 이봉주 2시간 7분대 최초 진입

1999년 김이용 2시간 7분대 재진입


이 모든 기록이 정봉수 감독팀 때 이뤄진 일입니다. 황영조, 이봉주, 김이용의 기록은 당시 세계 기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요.


호사다마인가요? 황영조 선수가 부상과 기록 부진 등으로 96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뒤 은퇴했고, 혹독한 훈련과 규율을 견디지 못한 코오롱팀 선수들이 1999년 10월 즈음, 코오롱팀을 이탈합니다. 성실함의 대명사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이봉주 선수조차 이때 이탈합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82485

결국 정봉수 감독이 ‘내가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선수들의 태도에 학을 뗐는지, 이동찬 회장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을 줄이게 되죠.


그 결과, 한국 마라톤은 뒤로 뛰고 있습니다. ‘정봉수 키즈’였던 이봉주 김이용, 그리고 정봉수의 ‘마지막 제자’ 격인 지영준이 기록을 그나마 유지했지만, 이들이 떠난 뒤 한국 마라톤에서 2시간 10분 이내에 진입한 마라토너는 단 한 사람뿐입니다. 그것도 2011년에 세워진 것이지요.


이동찬 코오롱 회장과 함께 한국 마라톤 르네상스를 열었던 정봉수 감독은 2001년 7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0084938


저는 그의 사망과 함께 한국 엘리트 마라톤도 죽었다고 봅니다.


정 감독을 생각하노라면,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똑같은 역사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남과 북이 이렇게까지 차이를 낸 것을 보면, 박정희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다시금 느끼고요. 물론 독재를 한 것도 인정합니다만...


마라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정치와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저 역시 ‘정치병자’인 건가요. 그냥, 답답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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