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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Oct 15. 2023

의사 집단을 보면서 조선일보를 회상한 까닭

1990년대 조선일보의 오만을 대한의사협회에서 보다 

의대생 증원 문제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등 의사 집단은 난리가 난 듯합니다. 파업 이야기가 바로 나오는 걸 보면.     


정부가 밝힌 것처럼, 인터넷 댓글만 봐도 국민 대부분은 의대생 증원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의사들은 ‘무지한 국민. 의사가 잘 벌어서 배 아픈 국민, 문재인보다 윤석렬이 더 하다. 사회주의적 의료 시스템을 갖춘 영국이나 캐나다가 얼마나 진료받기에 불편한데’라는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년 초까지 의협에서 홍보 및 공보 이사 그리고 동 분야 자문위원을 했습니다. 그 짧은 경험 동안, 저는 ‘1990년대 후반 조선일보’의 모습이 의협, 혹은 의사 집단에서 겹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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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당시 조선일보는 ‘대 조선일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동아나 중앙, 그리고 KBS나 MBC에는 ‘대’라는 접두어가 붙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수재의연금 등 국가적 모금 운동이 필요할 때 언론사에 기부금을 내는 풍토가 있었는데, 전 언론사에서 합친 모금액 총액보다 조선일보 모금액이 많다던 시절입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완장’을 오래 차면 취하게 돼 있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과정에서 조선일보 기자 개개인은 물론, ‘조선일보’의 오만도 여러 곳에서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선연한 기억 몇 개.     


1997년 대선 직전. 당시 이인제 후보 지지자 측이 조선일보 앞에서 격한 항의 시위를 열었습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이유였지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조선일보의 고위 관계자가 차를 타고 지나다가 차창을 열고 시위대에 그랬다지요. “니들, 며칠 뒤면(대선 마치면) 다 죽어.”      


1993년, 전(前) 회장 고희 기념일 행사 때 “박정희 대통령 때조차도 (전  회장을) 밤의 대통령으로 불렀다”는 ‘찬사’가 나왔고, 그 이야기가 대외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 사보’에 버젓이 실렸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안티조선운동이 시작됐을 때 조선일보를 적극적으로 돕는 세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인상을 저는 받았습니다. 우파일지라도, 그간 조선일보가 보인 오만 때문에 ‘거리’를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백하면, 저 역시 삼류 저질기자였을 겁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저를 포함해서 조선일보 종사자 모두 ‘조선일보’라는 권력에 취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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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의협에서 의사들과 대화하면서 저는 의사 집단을 ‘갈라파고스에 갇힌 채 아일랜드 멘털러티(자신이 속한 집단이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빠진 사람들’로 정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논리에서는 ‘자기분열증’조차 보였고요.     


‘의사들은 생명을 살리는 존귀한 존재들임에도, 우리는 저수가에 희생당하고 있다. ‘국평오’(국민 수능 평균은 9등급 중 5등급이라는 뜻)일 수밖에 없는 국민은 의사들이 부러워서 의사들을 끌어내리기에 급급하며,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니 수가는 30% 올라야 하고, 의사들을 옭는 그 어떤 제도든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반박했습니다.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건강보험제도를 제대로 이해해달라고.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이름(시니피앙)만 보험일 뿐, 누군가에는 복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세금이라고. 국민은 병-의원에 가든 말든 세금과도 같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매달 내고 있다고. 수가 인상안을 심의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근로자 대표보다는 사용자 대표로 나온 이들이 건강관련보험료 인상에 왜 결사반대하는지 생각해 보라고.(봉급쟁이가 내는 건강관련보험료의 ‘절반’은 사용자가 내므로.)      


무엇보다도, 의사들의 희생을 귀하들이 그리도 이야기하면서, 왜 귀하들조차 자식이 공부 잘 하면 의대를 보내려고 하느냐? 이런 ‘자기분열증’이 어디 있느냐,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결국, 귀하들조차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좋은 것, ‘투자 대비 수익성’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지요.     


의사 개개인은 인격적으나 실력으로나 정말로 다들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집단’에 소속돼 발언하면 바로 태도가 바뀌더군요. 당시 의협 회장이었던 최대집 회장마저(제가 보기에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단 둘이 이야기할 때면 ‘의사 지상주의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의협회장’으로 발언할 때는 ‘오만한 의사 집단의 수장’이었을 뿐입니다.      


의협에서 홍보와 공보를 도우면서 ‘의사 집단의 논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의협 기관지인 의협신문에 기고하면 바로 kill. 비판에 전혀 열리지 않은 조직이 도대체 어떻게 발전하나요?     


조금이나마 의협에 남았던 정을 떨어뜨리는 일이 2019년 말 벌어졌습니다.      


의협 수뇌부에서 자기 손으로 모셔온 ‘의사가 아닌’ 사무총장(이하 A씨)을, 제가 보기에는 정말로 비합리적 방법을 동원해 모욕을 주면서까지 해고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집단은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선비는 죽일지언정 모욕해서는 안 된다. A씨를 이렇게 해고하거나 벌해서는 안 된다’고 의협의 최고 결정기구인 상임이사회에 탄원문까지 올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A씨는 해고됐지만, 해고 무효 소송에서 의협은 패소합니다. 부당 해고였기에, A씨는 3년 계약 기간 중 1년여 정도 남은 임기에 대한 월급을 ‘일하지 않았음에도’ 받았습니다. 의협은, 노동위원회의 ‘사무총장 업무 복귀 권고’조차 무시해서 벌금 격인 이행강제금 2300여만 원을 물었고, A씨의 변호사 비용까지 판결 결과에 따라 지불했습니다.      


외부 비판에 열리지 않은 집단. 자기들만이 잘났다고 생각하며 갈라파고스에서 아일랜드 멘털러티에 빠져 사는 집단. ‘의료 정책 수립에서 전문가인 의사들을 무시한다‘고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노동 문제에서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볼 수밖에 없는 노동위 권고도 무시해서 벌금이나 맞는 집단...     


그것이 제가 목격한 의협, 아니 의사 집단의 모습이었습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하죠. 좋을 때 낮게 가라는 뜻일 겁니다.


1990년대 조선일보가 한창 좋을 때, 저 같은 놈을 포함한 조선일보 기자 모두 조심했어야 합니다. 크게 봤을 때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의협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비판했습니다.     


과연 의대생 1000명 이상 증원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밝혔을 때 의사들을 지지할, 아니 그들 목소리에 귀라도 기울일 세력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는 부정적입니다.      


의사 집단이 파업을 한다면,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되기를 바랍니다. 2020년 일부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 시험‘을 거부하고도 버젓이 재시험 기회를 바로 받은 것 같은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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