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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Oct 25. 2023

광화문 복원과 세운상가 철거, 그 묘한 ‘협주’(協奏)

삼류였지만, 문화재 기자를 하면서 ‘문화재 보존’을 열정적으로 외치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젊지만, 나이가 들면서 판단이 흐릿해집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을 보면서 든 생각.      


누가 뭐래도 세운상가는 우리 근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기계-전기전자 산업이었든, 하다못해 도색잡지나 도색 비디오 유통이었든. 종사자들이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자부했던 곳. 저 역시 고교를 졸업한 뒤 불법 복제 음반(속칭 ‘빽판’)을 사기 위해 자주 들렀습니다.     


그곳을 헌답니다. 정확히는, 세운상가 등 비슷한 시기에 남북방향으로 세운 7개 상가를 헐어서 공원화하고, 주변을 재개발한답니다.      


2006년 이후 서울시장이 오세훈-박원순-오세훈으로 이어지면서, 세운상가는 철거(재개발)-보존-철거로 파도를 탔습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세운상가 등 7개 상가를 보존하겠다면서 건물을 잇는 공중 보행로도 만들었습니다. 그 역시 헐린답니다.     


시야를 서북쪽으로 채 2km도 떨어지지 않은 경복궁 광화문으로 돌려봅니다. 정부는 경복궁의 역사성을 살린다면서, 대원군 때 만든 광화문 월대(건축물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만든 기단 같은 구조물)와 어도(왕이 다니는 길)를 최근 재현했습니다. 하긴, 100년이 되지 않은 건축물도 ‘역사성’이 있다면 근대문화재(정확한 명칭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제도를 수립한 지 20년이 넘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느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느니 하면서, 역사 관련한 잠언이 이리도 많은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지요.      


그럼에도, 70년 가까이 대한민국 근대화의 산증인 역할을 한 세운상가는 철거하려고 합니다. 세운상가에는 역사성이 없나 봅니다.      


기실, 그 모든 건축물은 시효가 있습니다. 천년만년 보존되는 건축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도시의 양적 발전이랄까 효율로만 본다면, 그리고 소유주 입장에서 본다면, 재건축이 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지역은 ‘그간’의 역사성을 상실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2000년이었을 겁니다. 제가 졸업한 고교(서울 성남고)에서 60년 된 본관 건물을 헐고 재건축한다고 했습니다. 반대했습니다. 어떻게 학교의 역사성을 제 손으로 파괴하느냐며. 그 어느 선진국에서 이런 짓거리를 벌일 것 같냐며. 최소한 건물 정면(facade)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결국 헐렸지요.     


그나마 이런 주장은 ‘공공건물’(학교 건물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법인 소유)에서나 가능할 터. 사유재산에 이런 제약을 두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한지가 가장 의문이겠지요. 만약 제가 해당 건축물 소유주인데 ‘당신 건축물은 역사성이 있으니 재개발하지 마라’고 한다면? 저 역시 흔쾌히 동의하기 어려울 겁니다.     


인구밀도가 세계 평균보다 9배 가까이 높은 나라. 하여, 땅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나라. 때문에, 가계 자산의 4분의 3이 부동산인 나라에서, ‘당신 부동산은 재개발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요. 역사성 보존은 남의 부동산에나 적용할 일.      


역사성 복원(혹은 재현)과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이마를 맞대고 서울 도심에서 한날한시에 이중주 되는 현실. 이것이, 도시 재생을 위한 앙상블인지, 불협화음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저는 한정치산을 넘어 금치산으로 향하는 듯합니다.     


오늘 오후, 세운상가나 오랜만에 찾아야겠습니다. 값싼 빽판 사겠다면서 한나절 세운상가 주변을 돌아다녔던 20대 추억을 남상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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