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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Oct 19. 2023

캐나다, 의료 사고를 형사적 처벌 대신 돈으로 때운다

-다면적 사실에서 한 측면만 보려는 것도 정파적 행위

어제(10월 18일) 오후, 어느 의료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의사들이 의료 중의 잘못으로(malpractice 혹은 negligence) 형사처벌된 것은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건이었다.’     


이 사회에서 의사들이 핍박받고 있다는 어조였습니다. 관련 기사는 여기 참조.     


 https://www.themedical.kr/news/articleView.html?idxno=1215     


정말로 놀랍더군요. 한편으로 의심도 갔고요. 기자를 하면서 이 사회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라면 무엇보다 사실에 충실할 뿐 아니라, ‘사실의 다면성’도 잘 살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가 대한민국 근대화에 큰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독재자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두 측면을 모두 살펴야 박정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지요. 그것이 ‘사실의 다면성’을 살피는 일일 겁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정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살폈습니다. 정말로 캐나다에서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없는지.      


결론은 ‘캐나다는 의료 과실을 돈으로 때운다. 이에 반해 한국은 형사적 처벌로 의료 과실을 줄이려고 한다.’ 정도입니다.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1. 캐나다 역시 잘못된 치료나 수술임이 밝혀지면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처벌은 대개 민사적 손해배상으로 이뤄진다. (형사처벌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한 통계는 제가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캐나다의 의료 행위 처벌에 대한 법적 사항을 대략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wicz.com/story/47963439/is-medical-negligence-a-criminal-offense-in-canada     

https://carscallen.com/blog/insurance-and-tort-liability/medical-malpractice-law-in-canada/          


2. 예를 들어봅니다.      


 2019년 복통으로 병원을 갔던 어느 이누이트족 원주민 여성에 대해 캐나다 의사가 환자 동의 없이 불임수술을 했습니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여인은 의사를 상대로 최근 민사소송을 제기합니다. 캐나다 정부조차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의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환자의 동의 없이는 조사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술 더 떠, 환자의 변호사는 “지금 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수술을 2019년에 했는데?) “손해배상을 받는 데 주력 중”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https://apnews.com/article/canada-indigenous-women-sterilization-5a0ecfc3897ce4fc663281c40dc31f37     


 3. 우리와는 전개 상황이 너무 다르지 않나요? 우리 같으면 사회적 공분이 일 겁니다. 피해자의 소송 제기가 있든 말든, 검경에서 수사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누이트족 여성이 제기한 손해배상액은 캐나다 달러로 600만 달러입니다.(미국 달러로 446만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60억 5000만 원입니다.     


 이누이트족 여성으로서는 ‘의사 처벌을 위해 경찰이나 법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증언을 하기보다는’ 손해배상액이나 더 받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 차원’으로만 본다면 그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릅니다. 의사가 처벌되든 말든, 내 돈이 중요하죠. 어차피 몸은 망가졌는데... 의사가 형사처벌 받는다고 내가 좋아질 것도 없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결국, 의사에 대한 처벌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상금을 얼마를 받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데요, 한국에서 이 경우, 보상금이 과연 얼마가 나올까요? 소송에서 피해보상금 60억 원을 ‘제기’라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법원이 이 금액만큼 보상하라고 판시할 확률은 0%입니다. 아쉽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람값’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4. 캐나다에서 의료 과실 등에서 의사를 변호하는 조직으로 CMAP(‘캐나다 의료 보호 연합’ 정도로 번역 가능. 우리로 치면 ‘의사협회’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가 있습니다. 이곳은, 캐나다 언론에서 종종 ‘거대 자본과 변호인단을 갖춘 비대한 조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은 의사 회원의 회비를 근간으로 운영됩니다. CMPA에 대한 최근 비판 기사 하나 보십시오.      


https://www.cbc.ca/news/health/canadian-medical-protective-association-1.6808224     


이 조직에서는 ‘회원 의사’가 소송에서 졌을 때 의사들을 대신해서 보상액을 환자에게 지급합니다. 다음에 제시한 인터넷 주소에서 ‘Compensation to patients’ 항목을 보십시오. CMPA 공식 홈페이지 중 ‘2021년 연례보고서’ 안에 수록된 통계 수치입니다.      


https://www.cmpa-acpm.ca/en/about/annual-report/2021-cmpa-annual-report#section-number     


의사를 대신해서 환자에게 보상한 총 보상액이 21년에 2억7600만 달러였습니다. 지난 5년간(17년~21년)으로 확대하면 12억 달러였고요.      


여기서 제시된 달러가 캐나다 달러인지 미국 달러인지 저는 모릅니다. 만약 이를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21년 한 해 환자 피해 보상액으로 3744억5000만원을 지급한 것이며(23년 10월 19일 오전 10시 미 달러 원화 환율 기준), 캐나다 달러로 치면(10월 19일 오전 10시 현재 989.36원) 2731억 정도가 됩니다.     


캐나다 인구는 23년 기준, 3880만 명 정도입니다. 우리는 5156만 정도이고요. 캐나다가 우리보다 잘 산다고는 해도, 인구가 우리보다 25% 정도 적으니, 의료 피해 보상액을 단순 비교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21년에 의료 피해 보상비로 낮잡아도(즉, 캐나다 달러로 처도) 2730억 원 정도가 피해자인 환자에게 지불됐을까요?      


게다가 낮잡게 친 2730억 원도 전체 캐나다에서 벌어진 의료 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액이 아닙니다. 우리로 치면 ‘캐나다 의사협회’ 쯤 되는 CMPA에서 지불한 피해 보상액입니다. 전체 캐나다의 의료 피해 보상액은 분명히 이보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을 겁니다.      


5. 이러면 답이 나옵니다. 왜 캐나다에서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그리도 적은지...     


캐나다 의료 피해자들은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든 말든, 피해보상액을 많이 받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원치 않는 불임수술을 동의도 없이 의사가 마음대로 했을 때 피해보상액으로 60억 원 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데 한국은 어떤가요? 과연 환자에 대한 피해 보상액이 어찌 잡혀 있나요? 우리도 캐나다 원주민 여인 불임수술 같은 건이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액으로 60억 원이 넘는 돈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의료 피해 보상액이 캐나다 등에 비해 무척이나 낮으니, 환자든 국민이든, “그럼 저 의사라도 형사적으로 잡아들여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의료 피해를 줄이거나 막으려는 수단이 캐나다는 돈, 요즘 말로 하면 ‘금융 치료’가 되는데, 우리는 돈으로 때울 능력이 없으니, 형사처벌로 대신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캐나다 국민으로 의료 피해를 보았다면, 저 역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보다는 배상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나한테 한 푼 떨어지는 게 없는데,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위해 뭐 하러 경찰에 왔다 갔다, 법원에 왔다 갔다 증언합니까?     


결국은 돈입니다.      


이런 차이점을 막말로 ‘개무시’한 상태에서 ‘캐나다 의사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라고 단순하게 주장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지요. 우리도 원치 않는 불임수술을 받게 될 때 60억 원이 넘는 돈을 피해보상액으로 제시할 수 있는 나라인가요?      


캐나다와 비교할 때 대한민국 의사들은 형사처벌도 받는 등 사회적 희생을 당한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이런 이야기도 가능할 겁니다.     


캐나다 의료 피해자들과 비교할 때, 대한민국 의료 피해자들은 개값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의 다면성에는 눈 감은 채, 그저 자기 이해 관계에 따라 사실의 단면만을 보(려)는 것. 그것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하긴, 이런 모습이 어디 의료계에만 국한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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