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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Nov 27. 2023

갈라파고스化가 심화되는 의사 집단

-어느 의사로부터 ‘당신, 역겹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대 증원과 관련,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파업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의협 회장은 삭발까지 했네요.     


저는 의사 단체의 움직임에 무척이나 비판적입니다. 물론 ‘무조건적’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의대생 늘려봐야, 수도권 혹은 지방 대도시에서 감기 환자나 보고, 점빼기 등 피부 미용을 하려는 의사만 늘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 생각, 대부분 거기서 거깁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자 하죠.     


모든 게 수도권에 집중된 나라에서 누가 지방에서 살려고 할까요? 아내가 좋아할까요? 자식 교육은? 수술이 잘 못 됐다며 소송에도 휘말릴 수 있는데, 누가 수술하는 외과의가 되려고 할까요?     


◆ 우파임에도, 문재인 정권의 공공의대 신설을 찬성했던 까닭     


2000년 이후 좌파 계열에는 단 한 번도 표를 주지 않았음에도 2020년, 문재인 정권 때 공공 의대 추진을 찬성했던 것은 일반 의대와는 달리, 공공 의대를 통해 특정 직역(예를 들면 외과계)과 특정 지역(산골 섬 등)에서 평생 일할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있는 의대는 ‘일반 의대’로 하고, 거기를 졸업한 이들이 어느 지역에서 뭐를 하든 ‘법만 따른다면’ 상관 말고요. 

    

의사들은 수술을 맡는 외과계 의사 등 필수진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예, 맞습니다. 지원 늘려야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수술을 하고, 산골이나 섬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 직역 간-지역 간 수가 조정부터 해야


단, 전제가 있습니다. 지원을 늘리기 위해 무작정 건강보험료율이나 장기요양보험료율을 높이거나, 국가 재정을 우선 늘려 투입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의사 직역 간 ‘의료 행위’에 대해 공단에서 지급되는 돈(공단지급금)을 우선 조정해야 합니다. 이는 지역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 직역 간-지역 간 수가 조정’부터 하자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감기로 병-의원을 찾으면, 약값까지 대략 환자의 직접적인 부담금은 1만 5000원 정도일 겁니다. 연로하신 부모 님을 요양원에 모시면 본인부담금은 대개 월 100만 원이 안 됩니다. 정말 싸죠?     


한데, 그 ‘이면’도 보셔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이런 행위가 발생했을 때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걷어 모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공단지급금’ 형식으로 병-의원 혹은 요양원에 지급합니다. 이게 공단지급금입니다. 그 돈, 죄다 국민이 병-의원을 찾기 전에 세금처럼 먼저 낸 돈입니다.      


◆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사회주의적 틀 안에서 존립한다     


내가 내는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가 월 7만 원도 안 된다고,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싸고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병-의원에 가지 않아도 월 400여만 원을 건강보험료로 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연봉 2억 정도인 봉급쟁이는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로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낼 겁니다.(회사 부담금 포함) 그 사람이 연 1800만 원 정도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까요? 그렇게 많이 내도, 병-의원에 가면 동일 질환의 경우, 월 5만 원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과 똑같은 비용을 내야 합니다. 월 5만 원을 내나, 월 400만 원을 내나, 병-의원에 내는 돈이나 받는 대접은 같습니다.     


직원 몇 사람을 고용해서 조그마한 가게든 중소기업이든 하는 분들은 직원의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야 합니다.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이런 분들에게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보험’이 아니라, ‘과중한 세금’일 뿐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무조건 건강보험료율이나 장기요양보험료율을 높여서 의사 배를 지금보다 더 불리자고요? 그보다는, 감기 환자에 대한 공단지급금을 확 낮추거나 없애고(대신, 환자 본인부담금은 늘 수 있음), ‘박리다매’, 즉 많은 환자가 몰리는 수도권이나 대도시 의원에 지급하는 공단지급금은 낮춰서, 그렇게 적립한 돈으로 외과계 등이나 의료 낙후지역의 공단지급금을 높이자는 겁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그때 건강보험료율과 장기요양보험료율을 높이거나, 국가 재정 투입을 해야지요.      


◆ 헬조선에 의사만 사는 게 아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 통계상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3069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정규직 근로자의 연봉은 4500만 원 정도였을 것이고요. 일반 국민에 비해 의사들이 5배 이상 더 번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의사의 벌이를 더 올리기 위한 정책을 쓰자는 말인가요?     


오해는 마십시오. 공부 잘 한 의사들이 대학 때 더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돈을 더 받는 것 자체를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1977년 처음 시행될 때부터 사회주의적 틀 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국민이 함께 책임지고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동네 자장면 가격을 한 그릇당 1만 원에 받든 5만 원에 받든 기본적으로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국가로부터의 그 어떤 지원도 없이, 개인이 오롯이 경영을 책임지는 한, “자장면 값이 비싸니 낮춰라”라고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의원비나 대중교통 요금은 다릅니다. 국민의 세금, 혹은 세금이나 다름없이 걷은 돈이 투입되는 분야이기에 의사가 아닌 국민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KBS가, TV를 갖춘 전 가구가 다달이 강제로 내야만 하는 월 2500원 때문에 국민의 감시를 받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단돈 월 2500원 때문에요.      


한데, 다달이 강제로 400만 원 이상을 내는 사람도 있고, 대기업 같은 경우는 소속 근로자에 대한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통에, 다달이 몇억 원 혹은 몇십억 원 이상을 내는데도 입 닥치고 의사 단체의 말을 듣기만 하자고요?     


의사 집단은 “대한민국에서 의사들이 희생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우습습니다. 헬조선에 의사만 삽니까? 우리 모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평균 인구 밀도가 2020년 기준, 1 제곱킬로미터 당 61명입니다.(세계은행 통계) 대한민국은 531명이고요. 인구밀도가 높으니 기본적으로 ‘사람값’이 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한데 왜 의사들만 “우리가 희생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나요? 헬조선에 의사만 사나요?     


◆ 담임수당 대폭 올리려면 非담임 월급 낮춰야     


교사의 경우, 담임 수당이 월 13만 원입니다. 이 돈 받으며, 고 3 담임의 경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합니다. 서로 담임을 안 맡으려고 할 수밖에요. 그러니, 담임 수당을 월 100만 원 정도로 높여야 하나요? 한데, 그 돈 누가 지급할 겁니까? 국가 재정을 투입하자고요? 우리나라에 돈 쓸 곳이 이곳밖에는 없나요?      


예를 들어, 징집된 군인은 항시 대기 상태에서 퇴근을 못 한다는 점에서 일 24시간, 월 30일 근무로 봐야 합니다. 회사에서 강제로 귀하에게 “당신, 퇴근 못 하고, 회사에서 먹고 자. 비상이 되면 당연히 근무하고”라고 하면, 귀하는 그것을 근무로 보지 않을까요? 그럼 징집병사들의 시간당 급여가 계산됩니다. 병장 월급이 100만 원이니, 병장 시급이 1500원도 안 되네요? 최저 시급이 9620원인 나라에서?


담임 수당을 높이려면, 우선 담임을 맡지 않는 이들의 월급을 깎고 담임 수당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고도 안 되면, 그때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지요. 그런 조정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담임 수당을 대폭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의사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역과 지역 간 공단지급금 조정부터 해야 합니다. 한데 의사 집단은 무조건, 건강보험료율을 높이든 국가 재정을 투입하든 해서 의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헬조선에서 그나마 최상의 대접을 받는 게 의사인데. 그래서 의대 커트라인이 이리 오른 것인데.     


◆의대 커트라인이 오른 것은 의사가 먹고 살기가 가장 낫기 때문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4년, 몇몇 지방의대는 4%대 성적으로도 입학 가능했습니다. 2023년 정시 기준, 의대 커트라인은 꼴찌 의대조차 0.6%입니다. 우리 때는 이 성적으로 연대 의대조차 넉넉하게 갔지요.     

의협에서 2018년 5월~2020년 2월까지 홍보 및 공보 이사, 그리고 홍보 및 공보자문위원을 했습니다. 의료나 의료 정책을 전혀 몰랐기에 거절했지만, ‘우파의 재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 달라’는 부탁에 동의했습니다. 당시는 박근혜 탄핵 이후, 우파가 지리멸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단 며칠 같이 일하면서 의협을 구성하는 의사들에게 경악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의사지상주의적 발언만 하더군요.      


의사들은 건강보험제도 아래서 희생당하고 있다, 그러니 수가는 30% 올려야 한다. 의사를 옭고 죄는 각종 규제는 모두 철폐돼야 한다.      


단 며칠 의협에서 일하면서 ‘와, 이곳은 내가 일할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회화가 덜 된 사람들, 갈라파고스에서 동떨어진 채 진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의협 이사가 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나는 곧 나갈 것이다. 한데 나를 임명한 분의 체면도 있으니, 두세 달 뒤에 나가겠다”고 의협 집행부에 말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지요. 사표를 내니, 자문위원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자문위원에는 응했지만요.      


◆ 의사 단체의 사회적 고립은 의사 단체가 자초     


의사 집단에 대해 제가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의협에서 일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귀하들, 이렇게 가다가는 사회에서 고립된다. 귀하들이 정말로 필요할 때 의사 집단을 도울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문재인 정권이 공공의대 신설을 주장했을 때, 의사 집단은 수술을 맡는 외과나 소아과 산부인과 등 특정 직역과 의료 낙후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어떻게 양성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 집단은 무조건 반대만 한 뒤, 의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앵무새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습니다. 공공의대도 반대, 의사 증원에도 반대, 그러면서 무조건 우리 배를 불려줘...     


그 반감이 결국 이 모양 요 꼴로 나오는 겁니다. 의사들이 파업할 때 과연 국민이 지지할까요? 국민의 반대가 ‘국평오’(국민 평균은 수능 5등급일 정도로 낮다는 뜻)의 저능함 때문일까요?      


◆의사 파업, 법대로 엄정히 처리되길     


의사도 노동자인 만큼 파업은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금과도 같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내는 우리의 경우, 의사 파업은 공무원 파업에 준해서 판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법 집행자가 잘 알아서 판단하겠지요.      


의사 단체의 고립은, 의사 단체가 자초한 일이라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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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최근 이런 논조의 글을 여러 차례 제 소셜 미디어에 올리니, 의협에서 일할 때 저와 숱하게 술자리에서도 교류했던 분이 저에게 ‘늘 혼자만 깨끗한 척, 이젠 좀 역겹다’는 말을 댓글로 남기셨더군요.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의협에서 이사로 일하던 의사 중에는 가장 말이 잘 통하던 분 중의 하나였는데. 영혼도 맑고... 뭐, 어쩌겠습니까. 끊어질 인연이라면 끊어지는 것이고, 이어질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이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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