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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Dec 08. 2023

문과 극최상위라면 미적을 선택하세요

-관군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Don't fight the Fed)

오늘(23년 12월 8일) 수능 성적표가 개별 통보됐습니다.     


사교육을 잡네, 마네 말도 많았지만, 제 눈길을 끄는 것은 수학의 표준점수였습니다. 정확히는 수학 ‘선택 과목별’ 표준점수(이하 ‘표점’) 차이입니다.     


지금 50대 이상은 학력고사 혹은 예비고사 본고사 세대여서, 표점이 뭔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표점은 ‘내가 맞은 원점수를 평균과 비교해서 매기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평균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맞으면 당연히 좋습니다. 반면, 내가 좋은 점수를 맞았어도 ‘내가 속한 집단’이 ‘낮은 평균’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면, 나 역시 도매금으로 낮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게 뭔 말일까요?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학력고사를 쳤던 1983년 11월 22일, 문과든 이과든 수학은 공통으로 25문제를 풀었습니다. (이과는 심화 과목으로 ‘수학 2’를, 문과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국어2’가 필수였습니다.) 공통 수학은 50점 만점이었습니다. 문제당 무조건 2점이었고, 어떤 문제를 틀리든 무조건 2점을 깎는 방식이었습니다. 무슨 문제를 틀리든 원점수만 같으면 같은 점수였지요.     


반면, 24 수능의 경우, 수학은 30개 문제로 구성됩니다. 이중 22번까지가 공통 문제이고, 23~30번 문제가 각각 확률과 통계(이하 ‘확통’) 미분과 적분(이하 ‘미적’), 그리고 기하로 구성됩니다.      


수험생들은 수학을 응시하려면 확통이나 미적, 그리고 기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확통을 치든, 미적을 치든, 기하를 치든, 수험생들은 수학이라는 과목을 함께 치른 구성원으로 분류돼서, ‘수학 표점’을 받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확통과 미적, 기하를 푼 친구들은 22개 문제는 공통으로 쳤지만, 8개 문제는 각각 다른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럼에도 수학 점수는 ‘확통 수학’ ‘미적 수학’ ‘기하 수학’이 아닌, ‘단일한 틀 안에 존재하는’ 수학 표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점수로 문과를 가든 이과를 가든 하는 겁니다. 때문에 ‘단일한 틀’을 가진 수학 점수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자, 이때 표준점수는 어찌 매길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 표점 체계는 ‘나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할 때’ 높은 점수를 맞습니다. 그렇기에, 수학 표점을 매길 때 수학 공통 과목에 대한 ‘집단 간 평균 점수’가 중요합니다.     


어찌 됐든 의대 등을 갈 때 대학이 요구하는 수학은 미적이나 기하입니다. 때문에 미적 선택자의 수학 평균 점수가 확통보다 높습니다. 그건, 수능 점수를 매기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통계로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평가원은 ‘수학 공통과목 점수가 낮은 확통에는 낮은 표점’을, ‘공통 과목 점수가 높은 미적에는 높은 표점’을 줍니다. 23학년도 수능에서 확통 만점이 144점이었는데 반해, 미적은 147점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게다가 24학년도 수능에서 확통 8개 문제가 예전과 비교할 때 쉬웠다는 게 중론입니다. 그럼 확통 8개 문제 평균 점수도 높아졌겠죠? 평균이 높아지면, 내 표점도 높아지기 힘듭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표점은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높게 나오는 구조’이니까요.     


그럼 답은 나옵니다.      


  1. 지난해인 23학년도 수능 결과, 미적과 확통의 표준점수 차이를 확인한 극최상위 문과 수험생들은 ‘표점 손해를 보기 싫어서’ 미적으로 갈아탔다.      


  2. 때문에 24학년도 수능 수학 공통 과목에서 확통과 미적 평균은 예전보다 더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왜? 수학 잘 하는 문과 친구들마저 ‘확통 버리고 미적으로 갈아탔으니’.     


  3. 게다가 24학년도 확통이 쉬웠다.      


 상황이 이러니, 확통과 미적 만점 표점 차이가 올해 11점으로 벌어진 겁니다. 표점 11점은 정말로 큰 점수 차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공통 수학을 2개 틀리고 미적을 다 맞은 원점수 92점짜리 미적 응시자 표점이, 공통은 물론 확통 8개 문제마저 다 맞힌 확통 100점짜리보다 표점이 높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수학 공통 22번 문제는 미적 응시자마저 5% 정답률을 보였다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평가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틀리고 다른 공통 문제 하나를 더 틀린 미적 92점짜리가 확통 100점짜리보다 높은 표점을 받은 겁니다.      


 물론 ‘통계적으로 볼 때’ 그리고, 공부량 등을 볼 때 이렇게 표점을 매길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 끝판왕’을 저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으로 생각합니다. 82학년도 학력고사 수석, 학생운동에서 돌아서서 사법시험을 쳐서 92년 사법시험도 수석...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대입 시험과 사법시험에서 모두 수석한 사람은 지금까지 원희룡 장관이 유일합니다.      


 만약 원희룡 장관이 24학년도 수험생으로 수학 확통을 응시했다면 그는 표점 137점을 맞습니다. 과연 이 사람이 미적을 쳤다면 어땠을까요? 그 점수를 받을까요? 저는 148점을 맞을 것이라고 100% 확신합니다. 지금과 달리, 19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엘리트가 모였던 시험이 사법시험입니다. 당시 서울대 의대는 서울대 법대보다 커트라인이 한참 모자랐습니다. 이과는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등으로 인재가 나뉘던 시절이니까요. 그런 시절에 학력고사, 그리고 사법시험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한 이가, 수능에서 11점이나 깎일 것이라고 보시나요?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미국 월가의 금언처럼 ‘관군과 싸워서 손해 보는 것은 우리’입니다. (Don't fight the Fed) 입시 원칙이 그렇다면, 그 원칙을 따르면서, 내 손해를 줄이거나, 이익을 최대로 만들어야지요.      

수학 머리가 정말로 없다면 모를까, 내가 문과 극최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대 경제 경영 등을 목표로 한다면, 수학은 미적을 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야구 같은 경우, 운동 신경이 아주 좋은 친구들을 보면 투수든 타자든 다 잘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표 투수인 류현진도 고교 시절에는 투수 겸 4번 타자였던 것이고요. 물론 프로로 갈 때는 ‘괴수만 우글거리는 곳’이니 자기 전공을 확실히 분화시켜야 하지만요.     


고교 수학 정도면 극최상위의 경우, 미적을 택하든 확통을 택하든 점수 맞는 데는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물론 공부량은 미적이 더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5학년도 수능 때 확통과 미적이 ‘24학년도 수준’으로 나온다면, 확통과 미적 표점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표점 차이를 보고, 문과 극최상위 누가 확통을 치려고 할까요? 그럼 수학 공통 과목에서 확통 응시자 평균은 더 떨어질 것이고, 결국 확통 100점을 맞은들, ‘내가 속한 집단의 평균 점수’ 때문에 도매금으로 나 역시 나락으로 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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