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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Dec 19. 2023

‘잠시만 이기적’이기를 빕니다.

출신 대학과 학과는 평생  따라다니니까

***수험생과 가족을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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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 이순이 되는, 아해 입시 역시 9년 전에 마친 틀딱입니다.     


대입 수시가 며칠 있으면 종료된 뒤 정시가 시작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갈지’ 고민하는 글들을 봅니다.      


기실 삶에서 ‘정답’이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삶은 수학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니까.     


다만, 삼류일지언정 그래도 인생을, 아니 입시를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수험생에게, 그리고 수험생 부모 님들께 드리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극최상위층’에게는 출신 대학과 학과가 평생 따라다닌다는 겁니다.     


학벌주의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니냐고요? 글쎄요.     


능력주의의 본향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대통령 된 사람들의 학벌을 따져보신 적 있나요? 하버드나 예일대 법과대학원 출신이 많을 걸요? 영국은 아예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합성어 격인 ‘옥스브리지’라는 표현조차 있을 정도입니다. 엘리티즘의 대명사로 말입니다. 일본에서 동경대의 위치가 어떤지, 중국에서 북경대나 청화대(淸華) 출신에 대한 대접이 어떤지 그 나라 국민에게 물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저는 봅니다. 까놓고 말해서, 먹고 살기 좋고 편한 곳, 입력(노력) 대비 출력(벌이) 효율이 높은 곳의 커트라인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솔직히 지방 어느 의대와 서울대 자연대나 공대 평균 커트라인이 비교가 되나요? 한데, 외국도 이 정도일 것이라고 보세요?      


미래를 이끌 세대에게 이런 감바리 같은 이야기를 하는 제 자신이 밉습니다. 한데, 어쩌나요? 이게 현실인데.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되뇌며 서울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를 갔던 제 친구들조차, 자기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자연대나 공대를 안, 아니 못 보내는데.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4년은 지금에 비하면 ‘낭만’이 훨씬 더 있었습니다. 철학과나 사학과를 간다면 “그래,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철학자나 사학자가 돼라”는 격려가 있었지요. 저 역시 사학과를 갈 때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학벌이 뭔 소용이냐, 사회생활은 학교와는 또 다른 장(場)이다,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     


예, 일면은 맞고 일면은 틀립니다.      


그런 식이면 소위 ‘최상위권대 잘 나아가는 학과’ 나온 사람은 노나요? 게다가 출신 대학 학과의 인맥은 아무런 작동도 안 할까요? 사람들 시각은요? 통상 ‘스카이’라며 ‘한 통’으로 이야기하는데, 정말로 서울대와 연고대를 동일 취급한다고 보세요? 더 나아가... 서울대 내에서조차 예를 들어, 법대나 인문대 간 ‘사회적 대접’이 같다고 보세요?     


‘뺑뺑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대학을 나와서 중앙일간지 기자를 할 때, 고교 선배들과 모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시험제 시절, 서울에서 중상위권 정도였습니다. 스카이 중 한 군데 법대를 나와 현역 검사를 하는 어느 선배가 술 한 잔 하더니 그러더군요.     


“나를 이끌어줄 (고교) 선배가 너무 없다.”(한국 사회에서, 아니 남자 사회에서 스카이보다 더 중요한 게 출신 고교이지요. 최소한 저 때는 그랬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이 되자고 떠들어도, 현실은 그렇게 ‘비인격적이고 냉정한’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모두 바라시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기를 바랍니다. 다만, 혹시 올해 바라던 성적이 안 나와서 고민하신다면?      

현역이라면, X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게 아니라면, 1년 더 하는 것 그리 망설이지 마십시오. 22년 기준 대한민국 기대수명 평균이 82.7세입니다. 그나마 코비드 때문에 21년(83.6세)에 비해 낮아졌습니다. 여러분이 노년이 될 때는 얼마가 될까요? 제가 고3 때인 1983년, 인문지리 시간에 배운 기대수명(당시는 평균수명이라고 했음)은 평균 65세 정도였습니다.     


설령 3수일지라도 망설이지 마세요. 젊어서 2~3년 늦는 것, 이순 가까이 돼보니 별 것 아닙디다. 뭐 4수면 어떻고 5수면 어때요. 다만, ‘N수’가 습관이 되면 안 됩니다. 내가 정말로 치열하게 공부했는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해하지도 마세요. 나 공부시키는 것 때문에 부모 님과 내 남매들이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잠시 미루시고, 아주 잠시만 ‘이기적’이 되세요. 예, 아주 잠시만 이기적이 되세요. 대신, 성공하시고 그 몇 배로 갚으시면 되니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잠시 이기적이 된 뒤 성공해서, 부모 님께 그리고 남매들에게 몇 배, 몇십 배로 반드시 갚으세요. 그것이 진정한 보답이고, 그것이 진정한 가족 사랑입니다. 가족도 그걸 진심으로 원할 겁니다.     

귀하의 이 푸른 청춘을 응원합니다.      


추신     


뭐든지 나와 맞지 않는 게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엘리트 운동가’에 이르지 못할 신체를 타고 났습니다. 이 둔한 몸으로 오래달리기를 30년 이상 하니, 10km를 여전히 1시간 안에 뜁니다. 50대 최후반 중 상위 1% 안에는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달리기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한들 전국체전은커녕 대도시 자치구 대항 달리기대회에도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 제 몸으로 미뤄 생각해본다면, 큰 하자가 없는 이상 상위 1% 안에는 누구나 들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상위 0.5% 0.1% 0.05% 안에 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고 봅니다.      


자기의 임계점을 냉정히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겁니다.      


역시, 삶에서 정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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