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였지만 기자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취재했습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연 10억 원 이상 버는 이에게 소득세를 45%로 물릴지, 35%로 물릴지는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그냥 판단이나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는 없지요.
물론, 옳고 그름으로 명확히 가려야 할 때도 있죠. 예를 들어, 1 더하기 1은 2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3”이라고 답해서 “그건 틀렸다”고 이야기했을 때, “2만을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당신은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말하는 이가 무지한 겁니다.
해서, 그 어떤 토론이나 대화를 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이 있는 것인가, 아닌가’부터 가리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정치나 정책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앞서도 말했듯, 연 최고 소득세 비율 문제에서 정답이 있겠습니까? 이럴 때는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최선입니다.
미국 대선 결과를 24년 11월 6일 이른 아침부터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승패를 알기 힘든 백병전이 될 것이라는 중론 속에서도, 많은 미국 언론은 민주당 해리스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24년 11월 6일 오후 2시 40분 현재, 미 언론의 예측은 틀렸다고 저는 감히 선언합니다. 개표 상황을 살피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해리스 승리를 예측했던, ‘세계적인 언론’인 미국 뉴욕 타임즈나 영국 이코노미스트를 보면서 ‘고소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미국의 유수 언론은 대부분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파?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좌파나 우파나 그냥 성향이 다른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은 전혀 아니지요. 게다가 미국은 우리와 달리 언론이 사설 등을 통해 누구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미국 언론 대부분이 민주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 들어 미국 주류 언론의 태도가 내내 불편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티비 토론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사회자조차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는 듯한 인상을 저는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설 등에서 공식적으로 호불호를 밝히는 것과, 티비 토론이나 일반 기사에서조차 특정인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전자는 ‘개인 혹은 해당 단체의 견해’인 것이고, 후자는 ‘사실에 기반’해야 합니다.
기실, 이런 태도에 제가 극도로 민감한 이유는 어쩌면 미국과 제 주변의 상황이 너무나도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이 이름을 ‘윤석렬’이나 ‘이재명’으로 바꿔보십시오.)가 의회나 언론을 무시하고, 독재적이라면서 ‘저런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 식이면, ‘쇼파 승진’이라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정치에 입문한 해리스는 얼마나 올바른 정치인일까요?)
흠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완벽한 사람,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을까요? 그럼에도, 영국 철학자 칼 포퍼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뿐’이겠지요.
더 중요한 점은... 유권자들은 그런 것을 다 알면서도 후보 중 한 분을 고민 끝에 찍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해리스, 혹은 윤석열 이재명으로 바꾸셔도 됩니다.)는 안 된다고 ‘지적질’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고민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을 찍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절망합니다. ‘평소에 저렇게 행동할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사람조차 “윤석열 하야”를 외치거나 “이재명 무조건 구속”을 외치는 것을 보면서요.
대통령 하야든, 이재명 구속이든 그건 엄정한 법적 절차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특히 대통령은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쫓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지율이 낮다고 하야시키겠다면, 앞으로 그 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나요? 그리고 하야시킬 지지율 기준치는 뭔가요? 귀하가 싫어하면 하야 대상입니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역시 우리가 법치주의를 믿는다면, 법원의 판단을 차분히 기다리는 게 나을 겁니다.
이번 미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미국 주류 언론의 오만을 보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사람만큼은 안 돼’라는 선입견에 둘러싸인 미국 주류 언론의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게 너무도 싫었습니다. 고상하고 잘난 미국 주류 언론이 그렇게 생각하고 보도하는 사이,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주류 언론과는 다른 판단을 내린 겁니다.
만약 미국 언론이 ‘왜 우리는 국민 절반 이상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 했을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그들 역시 한국 언론처럼 ‘기레기’라는 소리를 곧 듣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아, 이미 듣고 있나요?)
삼류였지만, 제가 ‘기자로 지냈던 제 삶’을 때로 반성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