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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북카페 Jun 06. 2022

키워드로 본 2022 아카데미 어워즈 - 3 -

3. 할/많/하/않     


*** 본 글은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인

     2022년 3월 28일에 작성됐음을 알립니다 ***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윌 스미스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가장 심기 불편했을 사람, 누구일까? 일단 크리스 록은 빼고. 원인 제공자로서 자의 반 타의 반 매너모드일 테니. 그렇다면 답은 - ‘하마구치 류스케’ 아닐까 싶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그 이름이 생소하다면 영화 <아사코>를 떠올리면 되고, <아사코>가 금시초문이라면 이 헤드라인을 떠올리면 된다.


2020년, 일본을 뒤흔든 희대의 불륜커플


영화 <아사코> 메인 포스터


 아니, 아니다. 류스케 감독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니라 <아사코>의 주연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카리타 에리카가 그 주인공이다. 소년미 물씬한 마사히로와 청순미의 대명사, 에리카가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데에는 하마구치 감독의 책임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아사코>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은 류스케 씨가, 첫사랑의 애틋함을 애틋해도 너-어-무 애틋하게 그려내는 바람에 남녀 주인공이 실/제/로 사랑에 빠져 버렸으니 말이다. 감독 역할을 지나치게 잘 해내는 바람에 벌어진 비극이라 하겠다.     


 선남선녀의 사랑이 무슨 죄냐 물으신다면, 단언컨대 그건 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제 당시 마사히로는 일본 국민배우 ‘와타나베 켄’의 딸과 결혼한 상태였고, 에리카는 솜털 보송한 미/성/년/자였으니까.  덕분에 두 배우 모두 영화계에서 퇴출 위기를 맞았으니 감독으로서도 마음 편치 않았을 터. 빚진 마음을 동력 삼아 쓴 <스파이의 아내> 시나리오를 통해 마사히로는 재기에 성공하고, 류스케는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두는데- 에리카는 아직 이렇다 할 복귀 소식이 없으니, 오호, 통재라.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모모족 족장으로 등장한 '카라다 에리카'


 2019년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족장으로 등장해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녀인지라, 그녀의 두문불출 근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자자, 분위기 전환 겸- 두 남자에게는 해피엔딩, 두 여자에게는 새드엔딩인 일본 영화계 이모저모는 이쯤에서 접고. <드라이브 마이 카> 썰 좀 풀어보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


 이 작품 역시 <아사코>만큼 내공이 대단하다. 일본의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원작에,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 이력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루키 소설을 영화화할 때마다 원작에 못 미친다는 꼬리표가 붙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제대로다. 필자가 일전에 썼던 <버닝> 칼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원작 영화 중, 탑 오브 탑이라면 단연코 <버닝>"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데, 이 멘트- 수정할 때가 온 것 같다. 왕좌는 이제 <드라이브 마이 카>로 넘어갔으니.      


 러닝타임 역시 대단하다. 무려 3시간. 기함할 시간적 압박만 봐도 이 감독이 원작의 감정선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구현해냈을지 감이 올 것이다. 어찌나 디테일했던지 남녀가 사랑하고, 증오하다, 끝내 한 명이 죽고 나서야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간다.     


 오프닝 여는 데만 몇 십분 걸리는데, 나머지 서사는 또 얼--마나 촘촘할지 할/많/하/않. '봉테일' 잡는 '하테일' 되시겠다. 그 디테일하고 촘촘한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올해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상 수상 때 예견되던 바도 바로 이것- 그가 수상소감을 참 기-일-게 하겠구나 하는 거였다. 그래,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지.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통역사와 함께 무대에 오른 류스케 감독이 스페셜 땡스 명단을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제2의 샤론 최의 탄생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기도 했고. 통역은 아웃 오브 안중인 채 소감 독주를 이어가던 류스케가 땡큐 땡큐를 연발하는 순간, 오케스트라가 엔딩 시그널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실수다. 류스케 감독 멘트가 안 끝났거든. 그가 또 한 차례 명단 공개를 하다 추임새처럼 땡큐를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엔딩 시그널이 울린다. 어라, 이건 실수가 아닌데. 그만 말하라고 한 방 먹이는 기분인데.     


 이렇게 국제 장편영화의 국제적 망신이 몇 차례 거듭되고 나서야, 그는 시상자 여배우 손에 등 떠밀리듯 퇴장했다. ‘드라이브 마이 펠로우’ 랄까. 그 와중에도 그의 얼굴엔 못 다 뱉은 땡큐 탓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 그였으니- 의상상 수상자의 꺼진 불도 다시 보게 하는 일장연설이며, 젖은 눈물도 마르게 하는 윌 스미스의 일장연설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안다. 말 안 해도 다 알아. 간바레.     


제인 캠피온 감독


 류스케 감독만큼이나 이번 시상식에서 ‘할/많/하/않’인 감독, 한 명 더 있다. 바로 ‘제인 캠피온’ 감독.  제인 감독과 후보작 <파워 오브 도그>에 관해서는 아카데미 전야제 격으로 이미 리뷰 올린 바 있으니 <아카데미에 대처하는 영화광의 자세>를 읽어보시라. 읽어야 진행이 원활해지니, 롸잇 나우 클릭 바란다. 제한시간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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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 카레가 먹기 좋게 데워졌으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파워 오브 도그>는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영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석권한 바 있어 오스카에서도 양쪽 부문 수상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 작품상을 <코다>에게 내어주며 감독상 하나로 만족해야 하는 - 기대에 훠-얼-씬 밑도는 성적표를 받았다.     


 12개 부분 노미네이트로 올 아카데미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음에도 정작 손에 쥔 트로피는 하나뿐이라니, 야박해도 너무 야박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남우주연상에서 고배를 마신 것도 아쉽지만, 작품상 수상 불발에 실망한 사람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론가 대부분이 <파워 오브 도그>의 작품상 수상을 확신하던 터라, 반전 결말에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으니까. 지난겨울, 베니스영화제에서 <레벤느망>에게 황금사자상을 내준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코다>에게 영광을 뺏긴 건 아무래도 아쉽다.     


아, 같은 얘기 하고 또 하면 ‘좋아요’가 ‘싫어요’로 돌아설 테니 이쯤에서 눈치껏 할/많/하/않.      





***** 덧 글 *****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스캔들이 밉다고 <아사코>를 보이콧해서는 안된다.

볼 가치가 있는, 아니, 꼭 보셔야 할 명/작이니.     

요즘 내가 격하게 밀고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와는

또 다른 깊이의 첫사랑을 만나게 되실 거다. 틀림없이.     


영화 <아사코> 속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카라다 에리카'

다만 한 가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빵이나

신발 사러 나가는 애인 뒷덜미를 잡게 되는,

격한 후유증에 시달릴 거란 점만 빼면 구석구석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화라 하겠다. 의심할 여지없이.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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