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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햇님을 봤다

by 서은

"죄송합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IV를 실패할 때마다, 환자 팔에 멍이 들 때마다,

나는 인계장에 이 말을 반복했다.


환자가 적은 날이 이어졌고,

어쩌다 입원하시는 분들은 하필 혈관이 좋지 않은 분들뿐이었다.


실패는 쌓여갔고, 사과는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을 그만둬야 할까요?"

오늘, 나는 박 선생님께 이 말을 꺼냈다.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병원에서 일 하면서 나는 많은 선배들을 만났다.

요양병원은 끔찍했고,

다른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으론 친절해 보여도 일을 가르쳐줄 때면

우월감이 배어 있었고,

말끝엔 늘 가시가 붙어 있었고,

도와주는 척 하면서 생색을 잔뜩 냈다.


수없이 생각했다.

‘가르쳐주니 고맙긴 하지만… 참 차갑다.’


하나님도 아실 것이다.

내가 얼마나 그런 환경에서 버텨왔는지.


그런데 박 선생님은 달랐다. 경력만 25년.

나와 나이 차이는 거의 없지만,

현장에서 쌓인 내공이 완전히 다른 분이었다.


"괜찮아. 원래 많이 해봐야 돼."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다시."

늘 같은 말만 해주셨다.


말투에는 가시도 없었고,

가르쳐준다는 우월감도 없었다.


조언을 해줄때도 나를 깎아내리는 말도 없었고,

실수를 해도 담담하게 받아주었다.

누구에게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


그냥 진짜로 괜찮다고,

진짜로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분이었다.


IV가 너무 안 돼서 ..

"저 그만둬야 할까봐요" 묻던 날도 그랬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이렇게 해봐."라고 말하며,

25년 동안 터득한 요령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알게 되더라.


'아, 이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좋은 분이었구나.

나도 병원에서 이런 분을 만나는구나.'


그리고

“괜찮아” 이 한마디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말이라는 것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에게, 처음으로 느낀 마음이었다.


그리고

진짜 고수는 이런 모습이구나,

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모습이

햇님 같았다.


바람은 아무리 세게 불어도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한다.

햇살은 그저 조용히 비출 뿐인데, 나그네는 스스로 옷을 벗는다.

나도 햇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받은 햇살의 온기를 누군가에게 건네려면,

나도 실력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다.


“괜찮아” 이 짧은 한 마디 안에

얼마나 진심어린 위로가 담겨 있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음으로써,

그 말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도 서툴고 부족하지만,

햇님을 닮고 싶은 마음 하나가

나를 위로하고,

다시 시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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