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예의로 살아가기
가끔 직장은
커다란 쓰레기통 같다.
누군가는
자기 안에서 처리하지 못한
날카롭고 더러운 것들을
아무데나 쏟아버린다.
한 번이면 충분했을 말을
여러번의 가시로 묶어 던지는,
그 사람의 소음 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어디선가
이렇게 당해본적이 있어서 ,
똑같이 던지고 있는건가.
나는 그저
처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 생각이 들자
분노보다 먼저
측은함이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요.”
무색무취의 이 한마디는
그녀를 향한
내 마지막 예의였다.
상처를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덮어줄 수 있는 말.
그 서글픈 훈장이
가슴에 닿는 순간,
참아왔던 씁쓸함이
조용히 스며 나왔다.
내가 건넨 배려는
사실 내가 흘린
눈물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까.
오늘도 나는
거친 파도 속에서
웃음으로 노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섬을 향한다.
상처를
던지지 않기 위해,
상처를
껴안는 쪽을 선택하며.
직장은 나에게 소중한 곳이다.
세상에 속해 있음을 느끼고,
나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중한 터전은 때때로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 군상을
견뎌내야 하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직장에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다.
굳이 재수없게 얄밉게 말하는 사람.
상대방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감정만 과하게 쏟아내는 사람.
며칠 전에도 그런 장면을 마주했다.
한 번의 지적이면 충분했을 일을
마치 내 꼬투리를 잡기라도 기다렸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으름장을 놓으며 상대를 깍아내리는 태도.
나보다 고작 3개월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인격 위에 서려는
그 모습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 앞에서 나는 웃으며 대처했다.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은
똑같이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웃음은 비굴함이 아니라
나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 한 사람의
몰상식한 행동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차라리 내 일을 하면 이런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될텐데...’
왜 나는 이런 무례함을 견디며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 전제는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요즘 듣고 있는 오디오북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배려심이 많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마치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의 무게를 안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가슴에 남는지 알기에,
나는 내 말의 날을 스스로 깎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고르게 된다.
내가 겪었던 그 아픔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고 싶지 않아서다.
엊그제 그 일이 다시 떠오른다.
불필요할 만큼 과하게 자기 감정을 쏟아내던
그녀 앞에서 웃으며 대처했던 내 모습.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남은 씁쓸함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본 전제를 놓지 않으려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람 사이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