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등받이는 아직 좁고,
다리는 가늘어서
서툴게 흔들린다.
누군가 머물다 갈 때마다,
다듬어지지 않은
옹이를 들키곤 했다.
어떤 체형의 고단함이 찾아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단단한 평면이 되기 위해
인생이라는 공구로
오늘도 몰래,
나사를 조인다.
내가 단단해질수록
당신은 편해지므로.
그저 묵묵히
삐걱대면서도 버티는
— 당신 전용 의자가 되고 싶다.
일하다 보면 하는일은 늘 비슷한대
마음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시험받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순간들 때문이다.
연세가 많고,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매번 시험대 위에 오른다.
상황은 대개 비슷하다.
과한 요구, 공격적인 말투, 논리 없는 항의.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혹은 불안하다는 이유로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실 때,
솔직히 말하면,
그 반응들이 성숙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미성숙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미성숙함 앞에서
나 역시 미성숙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날이면 꼭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그 미성숙함 앞에서 내가 흔들리는 건,
결국 내 그릇이 아직 그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정말 착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감정의 온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정제해서 표현한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감정의 온도.'
감정을 느끼되, 그 온도를 조절하는 것.
따뜻함은 유지하되,
뜨거움도 차가움 내려놓는 것.
상대방의 미성숙한 반응도
품을 수 있는 그릇을 키우고 싶다.
그들이 미성숙한 건 그들의 한계다.
하지만
그 앞에서 내가 흔들리는 건, 내 한계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내 그릇을 키우는 것이다.
감정의 온도를 드러내지 않고,
말은 짧고 정제되게,
태도는 따뜻하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게.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상황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직은 자주 흔들린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흔들린 뒤에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멈춰 서서 돌아보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한다.
오늘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