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서 잡담이 가지는 힘
“수업시간에 잡담하지 마라.”
“밥 먹는 중에 잡담하지 마라.”
“업무 중에 잡담하지 마라.”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말을 떠올려 보면, 특정 개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알 수 있다. '잡담'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경우 ‘하지 마라’라는 경고와 함께 사용된다. 수업시간에도, 식사 시간에도, 업무 중에도 잡담은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잡담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용건이 있는 말과 없는 말이다. 용건이 있는 말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말이다. 반면, 용건이 없는 말, 즉 잡담은 하지 않아도 그만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간주된다. 그래서 잡담은 흔히 쓸데없는 말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하지 마라'라는 경고가 따라 붙을까.
그러나 잡담에도 분명 쓸모가 있다. 언어의 역할을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어는 사람들간의 친분을 다지고, 신뢰를 형성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잡담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이다.
말하자면, 잡담은 인간관계에서 자라는 잡초와 같다. 반면, 용건이 있는 말은 화려한 꽃이다. 꽃은 중요하고 아름답지만, 잡초가 전혀 없는 척박한 땅에서는 꽃도 자라기 힘들다. 잡초처럼 흔하고 사소한 잡담이야말로 인간관계라는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에서도 잡담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동료들과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느새 유대감을 쌓아 올리고, 조직 내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런 사소한 대화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벽을 허물고, 팀워크를 자연스럽게 강화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잡담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소모적인 대화가 아니라, 업무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실제로도 잡담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회사들이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우아한형제들이 발표한 ‘송파구에서 일을 잘하는 11가지 방법’에는 “잡담이 경쟁력이다”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잡담이 공동체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신뢰를 쌓는 원료 역할을 하며, 커뮤니케이션의 벽을 낮춘다는 이유에서다.
아마도 우아한형제들이 이런 결론에 도달한 이유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그들이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든 잡담의 빈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위계는 어쩔 수 없이 잡담을 방해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상하관계에서 잡담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줄어든 잡담이 업무와 공동체 분위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잡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업무 환경에서 잡담을 더 활성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 위해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접근법이 눈에 띈다. 바로 공간 설계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 본사를 설계할 때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잡스는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에서 나온다. 누군가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건물 한가운데 화장실을 단 하나만 설치해,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마주치도록 계획했다. 물론 불편을 우려한 직원들의 반발로 화장실은 두 개로 늘어났지만, 그의 의도는 여전히 효과를 발휘했다. 직원들은 우연히 마주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었다.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 뿐인데' 188-190쪽, 바스 카스트 지음, 2017, 한국경제신문사)
하지만 이런 방식이 한국에서도 효과를 발휘할까? 한국에서는 눈이 마주쳤다고 바로 말을 건네는 문화가 흔하지 않다. 영어권에서는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엘리베이터에서 스몰토크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어색함과 경계심을 느끼기 십상이다. 그래서 단순히 공간만 바꾼다고 잡담을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공간설계 위주의 접근 방식이 한국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잡담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직접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1분 대화 훈련'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 짧은 잡담의 주제를 준비한다. 최근에 본 영화나 어제 있었던 재미있는 일, 혹은 새로 데려온 반려동물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각 주제에 대해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을 미리 생각해두면 더욱 좋다. 준비가 끝나면 1분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지나면 옆 사람으로 이동해 다시 대화를 반복한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낯선 사람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부담감이 훨씬 줄어든다.
짧은 대화가 자연스러워지면, 이를 2분, 5분, 10분으로 확장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잡담을 할 때 말을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벼운 한마디가 잡담의 시작점이 되고, 그 자체로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잡담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말이 아니다. 가벼운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긴장을 풀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피어나는 기회가 생긴다. 특히 회사에서는 이런 사소한 대화가 동료 간 신뢰를 쌓고 협업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잡담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오늘은 작은 스몰토크로 시작해 보자. “어제 뭐 먹었어?” 같은 간단한 질문이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작은 대화로 시작한 잡담이 업무와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