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린 어리광

by 이경민

​​​​​가끔 나는 어느 곳에도 서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머리에 꽉 찰 정도로 차 있는 걱정들과 생각들이 미간 주름을 만들어 내고,

미운 말들로 가득 그려진 저기 서 있는 저 사람을 눈에 힘주어 보느라 눈가에 또 주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거울을 마주했을 때, 이렇게 못나 보일 수가 있나 싶더라고요.

나의 자화상은 참 구깃하군요.


나를 웃어주며 부르는 저 사람은

뒤돌아서까지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까요.

나를 위해 울어줬던 사람은

나의 아픔을 안 걸까요, 약점을 안 걸까요.

뭐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저는 늘 밀어내는 삶이었으니까요.

이런들 누군가 찰나의 티끌 같은 것에

내 들보를 모르쇠 하고 혀를 차겠어요.


뇌에 힘을 풀고 살고 싶다는 말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흘려보냈는데,

이젠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계산도 없이 헤프게 웃으면 안 될까요.


가끔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되짚고 싶습니다.

그럴 때 있잖아요.

오랫동안 반지를 끼다가 빼도

반지가 있던 자리가 선명히 남아있고,

손목시계를 착용하지 않은 날

습관처럼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려 할 때.

익숙하다 믿었던 것이 곧 당연함이었고,

그런 당연함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던 그때처럼요.


이것만 그럴까요?

우리 기억 속에는 사라지길 바랐으나

그러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낡은 기억들이 있어요.

그 기억 속의 모든 것들.

늘 비워놓은 그을린 내 옆자리,

어디를 신나게 다녔는지 닳아버린 신발,

이 한 글자 한 글자들을 손끝으로 짚으며

아낌없이 기억을 꺼내보고 싶어요.


이 감정은 어떤 걸까요.

흐린 하늘이 한순간에 만들어지나요.

모든 공기를 담아 그렇게 비로 쏟아내잖아요.

그래야 맑은 하늘이 오죠.


나도 이제 쏟아내버리고 싶어요.

사실 모든 게 좋은 기억은 아닐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렇게만 기억되네요.

쏟아내면 맑은 내가 오겠죠.

밝진 않더라도요.


어리광, 조금만 부릴게요.

나도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조금쯤 후회하고도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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