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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윤 Aug 01. 2024

동네의 의미

무의미에서 의미로 바뀌는 순간들.


 기차 차창 너머로 휙휙 지나가는 작은 동네의 풍경을 볼 때면 기차에 내려 그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어떨 때는 상상이 꼬리를 물어 이미 그 동네의 주민이 되어있다. 매미가 맴맴 우는 여름에 나무 밑 평상에 앉아서 잠자리가 몇 마리인지 세고 있기도 하고, 옆집 할아버지 외양간에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가기도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며 이미 지나버린 그 동네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되새김한다. 다음에 같은 구간을 지나가는 열차를 탄다고 해도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구분도 못 할 이름 모를 그 동네는 이미 내 마음속 또 다른 유토피아가 되어있다. 머리가 굵어지기 전 어린 시절부터 해왔었지만, 주변에 말하기엔 실없어 보여 이야기한 적 없던 이 의미 없는 상상을 굳이 이 글에 다시 담는 데에는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한몫한다.     

<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     

 호천마을이라는 달동네에 부산일보의 젊은 기자 네 명이 모여 무료로 빨래방을 운영하며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도서이다. ‘젊은 사람은 떠나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남아 지키는 이 동네에 왜 빨래방을 지으려 했을까?’ 챕터의 마지막에는 해당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의 QR코드가 있었다. QR코드를 발견할 때면 항상 핸드폰을 들어 해당 영상을 관람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주황빛의 가로등과 그 가로등 사이로 보이는 달동네 특유의 간격이 좁고 많은 계단. 옥탑방 평상에 앉아 내려다보는 동네 야경. 익숙하면서 정겨운 풍경들이 겹치면서 어느 순간 호천마을에서 이름난 180계단을 걷고 있는 나를 상상하게 되었다.책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책을 덮고 나서도 그 동네에 있는 검은 얼룩 고양이, 주말이면 열리는 동네 에어로빅 행사, 그리고 그곳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이름도 몰랐던 그 동네에 정이 들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미 ‘쌈마이웨이’ 배경지로 유명했던 동네라고한다...)     

 동네에 대해 깊이 고찰해본 적 없지만 어쩌면 동네라는 건 선택하기보다 정해지는 경우가 더 많을 거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곳이 내 동네였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독립해 대학 주변이 내 동네가 되었다. 올해는 부산으로 이직해 부산 시청 근처에 주거지를 마련하였다. 지금은 그곳이 내 동네다. 10년 전의 내가 현재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좋든 싫든 무의미했던 공간이 우리 동네로 여겨지는 순간부터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두서없이 우리 동네 자랑거리를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하철역 7번 출구 앞에서 월요일엔 타코야끼 차가, 금요일엔 닭꼬치 차가 장사를 한다. 타코야끼는 8알에 4,000원이고, 닭꼬치는 1개에 3,000원이다. 미리 조리하지 않고 주문이 들어올 때 조리를 하시기에 갓 받은 요리는 엄청 따끈따끈하고 맛이 좋다. 그런데 가격까지 착하다니! 항상 월요일과 금요일 퇴근길이 가벼워진다. 가끔 저녁을 먹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곤 하는데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끼리 공원 한가운데에 모여 있다. 공원을 한바퀴 걷고 근처 벤치에 앉아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운이 좋으면 주인 허락을 맡고 강아지를 쓰다듬을 기회도 생긴다.


 우리 동네의 불편한 소식도 전해야겠다. 1분 거리에 있던 세탁소가 얼마 전에 폐업하였다. 지금은 횡단보도를 건너 10분 거리에 있는 세탁소에 빨래를 맡기고 있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이면 사장님께서 폐업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말렸어야 했나 생각한다. 1분 거리에 세탁소가 있던 시절을 벌써 그리워하고 있다. 처음 오피스텔을 구했을 때부터 문제였지만 집 도어락이 오래되어 손가락 인식을 잘 못 할 때가 있다. 특히 습한 날이나 운동을 해서 손에 땀이 많은 날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몇 차례 도어락 비밀번호를 틀리고 나면 도어락이 잠기는 데 그렇게 5분간 집 문 앞에 서 있으며 허탈한 웃음을 짓곤 한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현재의 우리 동네가 좋다. 처음에는 그저 낯설기만 했던 이 풍경들이 쌓여 지금은 정든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쳤던 풍경을 바라보고 곱씹으면 생각보다 웃고 사랑할 것들이 투성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 사는 집은 주상복합이다. 3층의 상가 건물이 따로 있는데 그 건물 옥상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문득 궁금해져 올라갔던 옥상의 정체는 놀이터였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란 것도 잠시 그곳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네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힘들거나 기분이 센치해질 때면 이 옥상에 찾아와 이 그네에 앉겠노라고. 그곳은 앞으로 내 아지트로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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