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극복 방법
첫 이별은 스물에 만난 여자친구였다. 이별을 하며 온갖 시련을 다 겪은 주인공처럼 침대에 누워 지냈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즐거웠던 추억을 되새김하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두어 달쯤 지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데 첫 이별을 잘못 끼운 듯했다. 그 이후에도 찾아오는 몇 차례의 이별에 늘 취약했다. 매달리고 울고 침대에 누워 망상하며 이별을 겨우겨우 소화했다. 햄버거를 먹다가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났다. 기차에 앉아 콧물 질질 흘리며 울다 휴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콧물이 마를 때까지 창문에 얼굴을 가리고 있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별은 정말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계속 있었다. 자주 가던 미용실을 바꾸던 순간, 한때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시간이 지나 소원해지는 순간, 이사를 하는 날처럼 작은 이별까지 세어보면 이별은 정말 잦았구나. 이렇게 흔하다면 이별은 특별한 일이 아닐 텐데.. 이렇게 별거 아닌 일에 매번 세상이 끝날 듯 아쉬워하다니…. 어쩌면 바뀌는 환경에 금방 적응하지 못하는 개복치 같은 성격이 한몫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느 정도 방어 기제가 생겨서 이별을 겪어도 덤덤한 척 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1. 기대하지 않기 / 2. 이별하는 순간을 미리 그려놓기 / 3. 의지하려 하지 않기 / 4. 모든 만남에는 결국 이별이 있다고 여기기
이 방법 덕분에 지금은 제법 어른스럽게 이별에 쿨한 척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감정이 온전히 숨겨지지는 않는 것 같아 조금은 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방법 중 4번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더 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에 의하면 모든 만남은 반드시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갈등하며 헤어지거나, 상황이 달라져 헤어질 수도 있지만, 결국 물리적으로 수명이 다해서 이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모임, 인연들에도 이별하는 순간을 그려놓는 중이다. 조금씩 할부로 슬픔을 계산하며 그 순간에 조금은 가볍게 대응하려 한다.
작년 가을부터 다니던 배구 모임이 있다. 배구를 못 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끼리 어디서 무시당하지 말고 재미있게 배구를 하려고 만든 모임이다. 실력을 길러 다른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나는 배구를 잘한다.) 게임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어리숙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 웃음거리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찾아간다. 꼭 지나가는 낙엽에도 배꼽 빠지게 웃는 어린아이끼리 어울리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누가 더 못하나 경쟁하며 바보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다. 잠깐씩 다니려고 했던 모임이 어느새 인생에서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유니폼까지 맞추며 꽤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지금, 이 사람들과 영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누구는 사정이 생겨 떠나려 하고, 누구는 배구가 진지해져 이 모임에 어울리지 못한다. 또 누구는 모임 내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잘 안되는 모양이다. 이 모임도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이어지더라도 내가 아는 모임이 아니게 될지 모른다.
바쁜 와중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영화를 보려 하는데 최근에는 ‘조블랙의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께서 사신에게 죽음을 구걸하는 장면이 있었다. 보통은 더 살려달라고 할 테지만 할머니께서는 단호했다. 자신의 목숨을 거두지 않는 사신을 나무랐다.
“좋은 추억을 안고 집에 돌아가자. 속지 말고. 우린 이곳에 살지만, 대개가 외로워. 운이 좋다면 좋은 추억을 안고 이곳을 떠날 수 있겠지.”
“추억을 충분히 만들었나요?”
“그래.”
할머니의 말씀대로다. 우리는 대개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존재일 것이다. 인연은 달콤한 휴가고 이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으로 여겨보면 어떨까? 힘들 때면 그때 그 휴가지에서 유난히 따사로웠던 그 햇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며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여행을 그리며 부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만남과 이별은 꼭 눈사람 같다. 결국에는 해가 뜨고 봄이 오면 녹기 마련이다. 눈사람이 얼마나 단단하든 화려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녹는 과정이 못내 아쉬워도 햇살은 봐주지 않고 가차 없이 눈사람을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정직하게 흐를 것이고 무더운 여름, 선선한 가을이 지나면 다시 겨울이 올 것을 안다. 작년에 만들었던 아름다운 눈사람을 떠올리며 새로운 눈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사는 내 모습이 꼭 그런 것 같다.
어울리지 않게 가끔 클래식을 들을 때가 있다. 유튜브에 ‘트로이메라이’라는 음악을 검색해서 댓글을 읽다 보면 대부분 노래가 감성적이라는 평이다. 그중 한 댓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둘째 애가 하늘로 가기 전에 자주 들려줬던 노래네요. 제목을 몰랐는데 드디어 알게 되었어요.’
‘트로이메라이’를 들을 때면 그 어머님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섣부른 추측은 무례를 불러일으키겠지만 음악을 찾아 댓글을 다신 걸 보니 아마 어머님께서는 지난 이별을 딛고 평소처럼 잘 지내고 계시지 않을까?
사촌 형제가 많아 명절이면 친할머니댁이 바글거렸다. 친할머니는 그중에서 유난히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유독 구박덩어리던 내가 아픈 손가락이었으려나…. 지금도 전화를 걸면 할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도윤아 너는 꼭 잘 살아야 해.”
할머니는 어느새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고생을 많이 하신 우리 친할머니께 좋은 추억이 많이 없을까 걱정이 된다. 사실 할머니와의 이별 이후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지지 않는다. 트로이메라이 속 댓글처럼, 조블랙의 사랑 속 할머니처럼 살아보고자 하는 희망에 확신이 안 서 애써 당당한 척 글을 써 내려갔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