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글 초반부터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라고 하여 실망하지 말자.
사는 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느끼고 맞이하면 된다.
p. 14~15
"그런데 내가 생각한 제주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무척 실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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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곳 제주도가 당신이 생각한 제주도여야만 하죠?
자신의 관념 속 제주도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제주도를 경험하기 위해 한 달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곳에 온 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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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풍경이 너무 평화로운가요. 아니면 견디기 힘들 만큼 변화무쌍한가요? 귤이 너무 시큼한가요. 달콤한가요? 사려니 숲길에 사람이 너무 많은가요, 아니면 반복되는 고독이 싫은가요? 만약 당신이 상상한 것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제주도라면 며칠 못 가서 지루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생각과 기준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더 역동적인 섬이 아닐까요?"
위 글은 제주도에서, 류시화 작가와 제주도에 여행 온 여성과의 대화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며 류시화답게 본인의 생각을 말한다.
p.30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기쁨이나 지혜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반영이다."
(카이오와족 큰구름이 한 말)
p.77
칼융이 말한 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치유받지 못한다는 것. 그저 놓아줄 뿐이라는 것. 우리는 흉터를 보면서 자신이 상처를 극복했음을 알 수도 있고, 흉터를 보면서 상처 입은 일을 기억할 수도 있다.
p.122
해 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지만 하지 않은 일의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 하찮은 일들과 소란한 만남들 때문에 언제까지나 뒤로 미룬 일, 주위의 만류와 일반화의 논리 때문에 포기한 일, 안전한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과 진실을 감춘 일이 그것이다.
p.130
"대단하네요. 하지만 이 많은 상나무 잎들을 그리면서 화가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을까요. 정말 지겨운 일이었을 거예요."
드가가 발레리에게 말했다.
"그런 말 말게. 지겹지 않으면 즐겁지 않을 테니까."
드가의 그 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발레리가 썼듯이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별로 다를 것 없는 동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이 그림에도,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집중이다. 반복해서 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p. 190
그런데 주인공은 이어서 뜻밖의 말을 한다. "나는 그 무화과나무의 갈라진 가지에 올라앉아서 굶어 죽어가는 나를 보았다. 그 무화과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열매들을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를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을 못 하고 앉아 있는 사이, 앞의 무화과들은 주름이 지면서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내 발 앞의 땅에 떨어졌다"
무화과 이야기는 미국 시인 실비아플리스의 소설 "벨자"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대사이다. 내가 그러했다. 많은 것들 중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을 잃는 것 같고 저것에서 패배하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책을 읽어갈수록 어떤 무화과를 선택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물론 또 왔다 갔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