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과학일까?

by 리자

내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 살고 있는 인생이 나의 얼굴과 목소리, 손짓, 발짓, 행동에 미친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다.

어제 투표를 하기 위해 중학교 운동장에서 줄을 서며 사람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30대의 젊은 남자는 아내와 통화하며 다정하게 말을 한다. 말투도 이쁘다. 나이가 있는 어떤 남자는 일단 목소리가 거들먹거린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허세가 목소리와 행동에 스며든 것 같다.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고 가족에게 다정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20분 동안 사람들의 말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어떠한가? 평소에는 친절한 말투와 관용적인 자세로 살지만, 예민함이 친절한 말투와 관용적인 태도를 누를 때가 있다. 내가 예민해지는 경우는 체력이 소진되어 피곤이 풀리지 않을 때다.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체력은 바닥으로 치닫고 피곤은 풀릴 겨를이 없다. 보통은 주말에 쉬면 체력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8개월째 쉬어도 회복이 안된다. 다행인 것은 블로그를 하며 기분전환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재미있기도 하다. 예민함을 온몸으로 장착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말투가 서늘해지고 용인되었던 것들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관상은 과학이라는 소리를 종종 한다. 괴팍하거나, 특이하거나, 까칠하거나, 난폭한 사람들의 얼굴은 그러한 행동을 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러한 얼굴이 아니었겠지. 괴팍한 성격이 그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만들었을 것이며, 까칠하거나 난폭한 사람도 살면서 발현된 성격으로 본인의 얼굴과 표정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는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이 좋다. 나의 예민함이 까칠함으로 발현되어 나의 표정, 손짓, 발짓, 목소리, 행동으로 스며든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글쓰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함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가족을 바라보며 지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이 좋은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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