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백석)

by 리자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사람이라고 믿었다. 아빠는 그만큼 훤칠하고 멋졌다. 아빠보다 인물이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옛날 영화 속 배우들도, TV에 나오는 배우도 우리 아빠와 비교하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잘생긴 배우, 아이돌 가수를 봐도 "정~~말 잘생겼다"라는 감탄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시인 백석을 알게 되었다. 1912년 평안도에서 태어난 백석은 당시 모던보이로 불릴 만큼 멋진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었다. 멋짐에 반했고, 시에 반했다. 백석이 좋아서 그의 시집을 읽고 안도현의 "백석평전"도 읽었다.


남북이 38도선을 경계로 나뉘자,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북한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년의 백석 사진을 보았는데, 마른 체형에 고생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만약 백석이 고향으로 가지 않고 남한에 남았다면 백석은 시인으로서 더 큰 꽃을 피웠을 텐데 안타깝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 갈라진 그 시절에는 나라도 가족이 있는 고향을 선택했겠지.




흰 바람벽이 있어


시인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도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근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다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다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기단 물레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마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머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도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은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낼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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