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115, 116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김용심/보리
글에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녹이려는 사람과 자유분방한 문체를, 제도를 통해 다스리려던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 박지원과 이옥은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문체로 글을 쓴다. 한국사 시간에 문체반정을 배웠지만 정조 시기의 있었던 일 정도로 알고 있다가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본문
가장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곳은 바로 백성들의 머릿속, 곧 '생각'이었다. 바로 전 시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굵직한 전쟁을 거듭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 귀하다는 양반네들이 도덕을 내던지고, 인의를 내던지고, 짐승처럼 아귀다툼을 벌였다.
저들의 어디가 예의를 알고, 도리를 안다는 양반들이란 말일까... 의병들, 농민군들, 착한 말단 병사들 그들이 지배층이 사라진 휑한 나라를 지켰던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성리학이라는 질서가 여전히 굳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밑에서 신분제의 터무니없음을 '몸으로' 깨달은 백성들이 조용히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시기... 현실에서는 아직 바뀌지 않은 세상이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근사하게 바뀔 수 있었다.
정조가 문제 삼았던 글들도 모두 다 이른바 '관각문'이라 하여 관청이나 과거 시험에서 쓰는 공식적인 문서들이었다.
그래서 문체반정을 연구한 한 학자는 '정조가 행한 정치적 조처의 핵심은 관각문의 문제였으며, 실제로 처벌과 탄압은 그 말의 실제 의미처럼 강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돌이 크든 작든, 뾰족하든 넓적하든, 도톰하든 얇든 다 생김새에 맞게 잘 쓰이는 데 견주어, 사람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조금만 다르거나 튀거나 하면 바로 벌을 받고 내쳐지지 않던가... 그 틀에 맞추라고 하는 세상. 그래서 나머지 것들이 모두 단숨에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세상.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유한 말투가 있습니다. 부드럽게 조근조근 설명하는 말투도 있고, 또박또박 따지며 가르치는 말투가 있는가 하면, 유난히 거칠게 욕을 섞어 하는 반말투도 있고, 토박이말을 섞어 구수하게 푸는 사투리 말투도 있을 것입니다. 말투에 따라서 그 사람의 첫인상도 달라지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죠. 말투는 그 사람만이 지니는 특성이자 개성이며, 남을 향해 보여주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인 셈이다.
정조만 문체반정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문체반정을 해야 합니다. 차별과 불평등을 불러오는 문체가 아니라 공평함과 평등을 일으키는 문체로 반정, 바르게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체 '바른 문체'는 무엇인가?.. 바로 말하듯이 쓰는 것.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답입니다. 말하듯이 쓰는 것이 왜 좋은 문체냐고요? '정직하기'때문입니다.
말과 글을 일치시켜 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꾸밈이나 허식 없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거나 지식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듯이 글을 쓰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나 다 함께 그 뜻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글인 것이지요.
2025. 6. 16. 리자 생각: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배경을 보면 단순한 문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의도가 있었디. 천주교 최초의 순교 사건인 신해박해로 수세에 몰린 남인을 구하려는 정치적인 의도, 집권 세력인 노론을 견제하고 약화시키려는 것, 노론과 남인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탕평책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박지원이나 이옥에게 큰 벌을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문체반정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정치와 마찬가지로 정조시대에도 정책은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없애기도 했던 것 같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정치의 속성은 과거나 현재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체반정에 대한 의견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