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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포도 Aug 15. 2022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 며칠 속상한 일이 좀 있었다. 혼자 마음을 추스르다가 괜히 또 울컥해서 혼맥을 하다가 남편의 시답잖은 농담에 빵 터졌다가... 내 마음은 누가 툭 건드리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를 정도로 부풀어있었다. 풍선처럼.     


몇 개의 사건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 유치원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였다. 며칠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좀 짜증나는데, 이 짜증을 누구한테 말할 길이 없다. 내 마음을 이해받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호는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유치원은 재미없어!’라며 스스로 결석을 통보했고, 2호는 8시까지 늦잠을 자더니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다며 생떼를 썼다. 생텍쥐페리가 되려나. ㅎㅎ     


여하튼, 마흔두 살 큰 아들을 출근시키고, 다섯 살 두 아들을 어르고 달래 유치원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다 하고 난 후에도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진행 중인 일 때문에 미팅이 두 개나 있었는데, 그 미팅을 준비하려면 이미 예정되어있었던 일을 두 개나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전직 슈퍼맨이 아니었나 싶다.       


일이 터진 건 마지막 미팅 때였다. 내가 할 일을 머릿속에 착착착 정리해두었던 탓에 무리 없이 일정이 진행되어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나 보다. 4시 전에는 무조건 미팅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미팅 중 무심결에 시계를 보니 3시 50분이었다. 뜨아!!! 심지어, 이 미팅은 도대체 끝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하며 주섬주섬 일어날 수도 없지 않나. 나는 ‘을’이니까.     


초조하고 불안하고 답답하고 갑갑한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미팅이 끝났을 땐 이미 늦었다. 5시 10분... 인사는 하고 나왔나 모르겠다. 머피는 왜 나한테만 찾아오는지... 차도 막혔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울렸다. 유치원 선생님이다.     


“어머니~ 어디세요?” (아직까지는 친절하다)

“선생님.. 가고 있는데 차가 너무 막히네요..” (일단 침착해야 한다)

“얼마나 걸리세요?” (아직까지도 상냥하다)

“저.. 20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죄송해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머니.... 이러시면 곤란해요” (올 것이 왔다)

“네.. 죄송합니다..” (대역죄인이다)

“미리 말씀을 주시던가요. 갑자기 이러시면...” (말을 잇지 못하신다)     


아이들은 내가 올 때까지 유치원에서 TV를 봤다고 한다. 아이들 입장에선 계 탄 거나 다름없겠지. 씁쓸하다.     


내가 속상한 건 미팅 시간이 길어져서도 아니고, 차가 막혀서도 아니고, 유치원 선생님이 화를 내서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인데 그 화살을 오롯이 다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찢는다. 이런 게 여자가, 아니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이유일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나는 계속 일을 할 거니까.


아들들아, 얼른 커라! 엄마 눈치 보인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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