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하나다. 육아를 도와주던 친정 엄마가 암에 걸리면서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작 몇 백만 원 벌겠다고 엄마를 고생시키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됐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짧은 고민 끝에 남편에게 퇴사를 통보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존버가 승리하는 세상에서 끝내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육아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퇴사하던 날, 친하게 지내던 동료 몇 명과 회사 근처에서 맥주를 한잔 마셨던 기억이 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맥주에 얼음 하나를 동동 띄워 벌컥벌컥 마시며 이 더러운 세상을 욕했었다. 여자만, 엄마만,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느냐고 대답 없는 벽을 향해 화를 냈었다.
취한 김에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억울하다고. 나도 남편만큼 많이 공부했고,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왔고, 내 직업을 사랑하고, 이제야 겨우 인정받는 정도가 됐는데, 왜 내가 그만두어야 하는 거냐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시면 안 되냐고 따져 물었다. 한참을 말없이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정을 잘 이루는 것만큼 잘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니. 일이야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엄마와 아이와 남편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회사를 그만둔 건 참 잘한 일이다.”
맞는 말이다. 커리어를 지키는 것보다 가정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모두 나의 결정과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니 당연히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이 버니까 내가 그만두는 게 상식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그런데 원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엄마는 달랐으니까.
내가 고작 7%의 알콜에 취해가고 있을 때, 엄마는 속상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본인이 아픈 게, 그래서 아이를 봐줄 수 없는 게,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미안하다. 엄마가 아파서...”
엄마는 엄마의 자식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떳떳한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집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해주는 이가 한 명도 없을 테니, 집 밖에서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랐다. 본인이 아파도, 아이를 도맡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이유다. 나는 엄마의 눈물의 의미를 안다. 엄마는 내가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봐 울었던 거다.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듯,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가 될 수 없다. 시어머니 입장에선 아들의 가정을 위한 며느리의 희생은 당연한 거고, 딸이 원하던 바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친정 엄마다. 누구도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세계는 이렇게 다르다.
결혼, 꼭 해야만 한다면 분명히 알아 두자.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아들이고,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했는데도 변하지 않는, 일종의 중력의 법칙 같은 거다. 시어머니에게서 친정 엄마를 기대한다는 건 어쩌면 이 법칙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