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많고, 해결은 없다
조금 이른 저녁이라 주방에 있었던 플랫메이트들은 세 명뿐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내가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도 영국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직까지도 영국인 친구들이 ”영국엔 거미는 정말 많아서 앞으로 거미를 많이 잡게 될 거야. “라고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한 친구는 대걸레로 거미를 쉽게 잡는 요령까지 알려주었다. 나 역시 첫날부터 거미를 두 마리나 잡았기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앞으로의 영국 생활에서 이렇게까지 거미를 자주 마주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산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평소처럼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왔는데, 침대 쪽에서 검은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았다. 설마 설마 하며 다가갔더니,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거미가 내 침대 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설마 이 거미랑 전날 함께 잔 건가?”하는 생각에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더구나 거미가 침대 위에 있어서 쉽게 잡을 수도 없었다. 결국 거미가 바닥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고, 그 바람에 버스를 놓쳐 수업에 지각하게 되었다.
이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지 않았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다행히 기숙사로 돌아올 무렵엔 비가 그쳐 비를 맞지 않고 귀가할 수 있었지만, 기숙사 방에 들어서자마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방 곳곳에 족히 10마리는 넘는 벌레들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 벌레들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김새는 나방파리와 비슷했다. 눈에 보이는 벌레들을 하나하나 다 잡고 나니 기운이 쏙 빠지고 입맛도 없어져서, 씻고 그냥 잠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서 누군가와 격하게 싸우는 꿈을 꿨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개 근처에 죽은 벌레들이 몇 마리 있었다. 아마도 자는 동안 벌레들이 얼굴 근처로 날아오자 내가 무의식 중에 팔을 휘저은 듯했다. 그 순간 문득 이 기숙사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계속 다독였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슬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학기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기숙사 리셉션에 가서 방 안에 벌레가 너무 많이 나왔는데 누군가 이 방을 봐줄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 기숙사는 숲 속에 있어서 벌레가 많은 편이다, 창문을 열지 말라.”는 형식적인 응대뿐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벌레가 나왔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마치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응하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청소부에게 점검을 요청해 보겠다.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 전까지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알겠다고 답한 뒤 방으로 돌아와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여전히 방 안에는 본 적 없는 벌레들이 새롭게 나타나 있었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숙사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