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교실 생존기
6월 4일보다 하루 빨랐던 3일 오전, 나는 아이를 봐주러 온 친정엄마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니, 엄마, 이거 뭐 장마야?
비가 올 것만 같은 아침 날씨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서 할 놀이도 많았고, 퇴근 후 아이와 잠깐 산책도 하고 싶었는데 죄다 무산되었다. 비가 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5월 중 14일이 비가 왔대.
농부의 아내답게 날씨 정보에는 빠삭한 엄마가 대답했다. 31일 중에 14일이 비가 왔다니, 장마나 다름없었다. 이래 놓고 6월 말이면 진짜 장마란다. 온 국민 장마 미리 체험하기도 아니고, 맑은 날씨가 가득해야 했던 끝 봄과 여름의 초입은 어두컴컴한 하늘에 된통 먹혀버렸다.
그러다 4일 아침. 와, 드디어 정말 맑은 해가 떴다. 게다가 미세먼지까지 좋다니. 이런 날씨 또 없습니다. 오늘은 당장 아이들과 나가야겠다.
"선생님 더워요."
"괜찮아. 참아. 이런 날씨 또 없습니다."
구령대를 휘저으며 온갖 기물의 길이를 어림하는 우리 반 아이들. 1cm를 갓 배우자마자 물건을 어림하라니, 거의 덧셈 배우자마자 곱셈하라는 것 같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 교육과정. 하지만 어쩌겠어, 있으니 한 번 해보기나 하자. 응... 괜히 했다 싶네.
기분 좋은 하루에서 만난 기분 좋은 문장. 꾸며 주는 말을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국어활동 책 속에서 다시 한번 어떤 기운을 얻는다.
힘차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동군. 그리고,
굳센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까지. 나 무슨 시인들을 만났나. 저 그림을 가지고, 굳센 바위라니,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라니.
"아무리 강해 보이는 파도라도, 저보다 더 굳센 바위를 만나면 부서질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파도는 또다시 바위를 향해 몰아칠 거예요. 여러분도 파도처럼 다시 도전하는 어린이가 되면 좋겠지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응. 아니야. 2번 봅시다."
그래, 선생님이 괜한 말 했나 봐. 문장에 잠깐 취해있었어.
다리 사이에 공 끼고 반환 점 돌아오기. 공이 빠지지 않도록 살살 걸어가는 신중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냅다 콩콩콩 뛰어가는 대범한 아이들도 있다. 몸 동작 하나하나에서 제 각기 성격이 묻어 나온다. 어쨌든, 아이들은 땀 뻘뻘 흘리며 재미나게도 놀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런 시간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는 편. 손으로, 머리로도 배우지만 몸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게 정말 많단다, 얘들아.
어느새 1학기의 허리가 훌쩍 지나갔다. 다음 달이면 방학이다. 3월에는 매일 등교를 하며 방실방실 웃던 아이들이 날씨가 더워지고 지치기 시작하니 방학을 언제 하냐고 물어본다. 그 질문이 우스워서 깔깔 웃다가 날짜를 말해줬더니 아직 날짜 감각이 없어 뭐 별 생각들도 없으시다.
방학이고 뭐고, 마스크 뒤로 훌렁훌렁 빠져서 바람 쉭쉭 드나드는 앞니들아, 방학까지 무럭무럭 자라렴. 적어도 급식으로 나온 돈가스는 앙앙 베어 물어 먹어야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