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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May 31. 2021

2021.05.31일 자 교실

2021 교실 생존기


2학년 통합교과 여름 교과서의 소단원 1. 가족


가족에 대한 심도(?) 깊은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가족에 대해 그릴 일이 많다. 2학년이라지만 만 7~8세. 고작 열 해도 살지 못한 아이들이 사람을 어찌 사실적으로 잘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이 사람은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가 그린 할아버지다. 아.. 할아버지는 가운데 머리가 없는 탈모인이셨다.



귀여운 집 내부 만들기 활동 작품.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렴!' 하고 풀어놓는 편이다. 다리를 만드는 것도, 종이를 접는 것도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관찰하며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편. 아이들의 실력이 날로 는다. 옷장과 책상, 침대를 야무지게 만들어낸 작은 손 끝이 마법사의 지팡이 같다. 포인트는 책상 위의 풀색 덩어리. 저것이 책이란다. (웃음)



우리 가족 조사활동의 일부. 우리 가족은 저녁에 주로 무엇을 하나요?라는 질문에 '쌰워'하기를 적은 한 아이. 쌰워라니, 약간 초록색 때타월에 때 비누를 묻혀서 온 몸을 벅벅 씻어 내려야 할 것 같은 강렬한 무언가의 느낌이 난달까. 지난주 다른 아이는 '물곡이'라는 기상천외한 단어를 쓴 적도 있다. 그래도 기특하다. 물고기가 어색해서, 혹시 물곡이 아닐까 한 번 더 생각한 그 속내가. 오늘은 물곡이 저녁밥을 먹고 쌰워나 한 판 때리고 자야겠다.


괘씸한 너저부리 삼 형제. 제일 앞 녀석은 테이프랑 가위를 바닥에 뿌리고 하교. 두 번째 녀석은 스티커 뿌리고 하교. 마지막 녀석은 연필과 종이, 받아쓰기표를 뿌리고 하교. 차마 버렸다고는 하고 싶지 않다. 마치 흙에 씨를 뿌리듯, 저 물건들을 뿌린 거라고 하자. 그리하여 저곳에 선생님의 잔소리가 생명 머금은 풀잎처럼 자라날 것이라고. 아, 그렇게 좋게 생각하고 싶다.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아이들의 그림책은 정말이지 향기롭다. 그 예쁘디 예쁜 향기를 이 아이들은 맡지 못한다. 그들은 대체로 향기 나는 삶을 사니까. 세상의 더러운 냄새 다 맡아본 어른들만이 동화책의 향을 제대로 맡을 수 있다.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은 '장벽(the wall)'.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를 쉽고 단순하게, 그리고 깊게 그려냈다. 함께 책을 읽고 한 독후활동. 그 조막만 한 엄지로 물감을 꾹꾹 찍어 표현한 자신의 세계. 그리고 친구의 세계. 결국은 우리의 세계. 너희들이 과연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은 기억이 쌓여 훗날 너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믿기에, 그것이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에, 또 힘을 내서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는 것일 테다.


-2021. 05. 31. 우리 교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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