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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Jun 22. 2021

건강한 질투

감정도 똥을 싸야 한다.

너의 소식은  


며칠 전, 인천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기들을 만났다. 교대는 모두 초등교육학과 전공이지만, 그 안에서도 과목별로 세부 전공이 나뉜다. 초등교육학과, 그 안에서 미술학과 졸업생인 내 동기들은 대충 60명 정도. 그중에서, 임용을 인천으로 본 사람들은 꼴랑 4명이었다. 제 고향으로 시험을 친 친구도 있고, 서울로 시험을 친 친구들, 경기도로 시험을 친 친구들.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다. 하지만 경인교대, 경기도와 인천을 근거지로 한 대학교 치고는 꽤 낮은 비율의 사람들만 인천을 쳤으니, '꼴랑 우리 4명'은 1년에 4번씩 꼭 꼭 뭉치는 친구들이 되었다.


자연히, 우리끼리 만나면 여러 동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걔 이번에 책 냈더라?"

"개는 교육방송하던데?"

"누구는 어디에 집 샀다더라."

"누구는 유학 준비하더니, 대학원 합격했다더라. 다음 달 출국이래."

"아, 맞다. 걔 교직 관뒀더라. 그동안 준비했던 사업 한다고." 


나는?


작년에 애 키웠고, 올해는 복직한 아주 흔한 교사. 책을 쓴 일도 없고 교육방송에서 강의할 일도 없고 유튜브에 교사 브이로그 올리는 일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언제 다들 그렇게 많은 것을 이뤘고, 또 이뤄나가는지. 어쩌면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십분 쪼개고 활용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나만 또 그 자리에 멈춰 있었나 보다. 


그들의 대단함을 생각했다. 결국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줄기처럼, 생각은 이렇게 종결된다. 나만 여기 그대로 있었구나.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더니, 내 배가 무진장 아파왔다. 동시에 가슴에 무언가가 불타올랐다. 마음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래. 이건 질투다. 늘 감추기 급급했던 감정이지만 왠지 그날은 동기들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얘기해도 될 것 같았다. 남편은 그런 얘기 사람 잘 골라가며 하라지만, 그날 내 촉이 괜찮다고 했다.


"아, 부럽다. 부러워서 화가 나. 나는 그냥 애 키우는 아줌만데, 걔네는 그렇게 산다니까 나 너무 아무것도 안 한 거 같아서 속상하다? 에이, 다들 더 잘 살아버려 그냥!" 하면서 하하하 웃어버렸다. 친구들도 늘 감정을 숨기고 살기 급급했던 내가 터놓고 이야기하니 그게 또 웃기는지 크게 웃는다. 이 통쾌함이란. 이토록 시원할 수가! 


건강한 질투, 가능할까요?


질투라는 게 웃기다. 아니, 감정이란 게 참 웃기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드러내지 않고 마음에 쌓아두다 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삭아서 진한 녹물을 남기는 것 같다. 사랑도 그렇고, 노여움도 그렇고, 안타까움도 그러니, 질투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을 부러워하고, 남이 이룬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뭐 그리 나쁘니? 왜 질투는 감춰야만 하니? 감정을 드러내는 게 유치한 거니? 왜 감정을 통제하는 게 성숙한 거니? 성숙하다는 건, 감정을 행동으로 잘 녹여내는 것 아니겠니? 


질투를 향한 내 의문은 이렇게 결론지어졌다. 


건강하게 드러내자. 좋은 용어를 사용해서, 질투일지언정 예쁘게 포장해서 표현해보자. 너, 잘해서 내가 부럽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리자. 그러니, 앞으로 더, 더 잘해서 성공해버리라고! 그렇게 질투 덮은 덕담을 하자고. 


감정의 똥 싸기 


감정도 똥을 싸야 하는 것 같다. 음, 감정의 똥을 싼다니. 조금 더러운 표현이지만, 2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애엄마이며 9살짜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에게는 이보다 편한 단어가 없다. 고작 똥 수준인 생활이지만, 정말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을 오랜만에 찾은 것 같다. 감정의 똥 싸기. 


나는 그날, 친구들 앞에서 쾌변 제대로 했다. 1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SNS를 통해 어렴풋이 느끼던 감정을 정렬하고, 질투로 명명하고, 질투한다고 외치니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다시 한번 내 마음의 결들을 살핀다. 어떤 감정이 해묵어 있는지, 새롭게 생겨나는지. 


그리고 또 깨닫고, 고백하고, 다짐한다. 

나는 진실로 질투쟁이였고, 질투쟁이일 것이라고. 그리하여 앞으로 건강하게 질투해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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