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년 선생님들과 회의를 하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의 주제가 다른 곳으로 세기 시작했다. 우리 학년은 곧 은퇴를 하시는 원로 선생님부터 발령받은 지 3년 된 막내 선생님까지 60대~20대를 아우르는 황금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내년 여름에 정년이신 원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젊은 나이 좋지. 근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땐 어찌나 불안정했는지. 나는 모든 것이 안정되고 갖춰진 지금이 너무 좋네."
고민에 고민은 꼬리를 물고.
나는 올해로 서른이 됐다. 누군가 보기에는 아주 귀여운 나이, 앞날이 창창한 나이로 보일 테지만, 정작 서른을 맞이한 나와 친구들의 고민은 여러모로 깊다.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은 결혼에 대한 고민으로, 결혼을 한 친구들은 앞으로의 2세 고민으로, 2세를 이미 낳은 나 같은 친구들은 육아에 대한 고민과 둘째 아이에 대한 고민으로,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은 취업에 대한 고민으로, 자산이 부족한 친구들은 투자와 관련된 고민으로. 아, 서른, 아니 30대는 모두 제각기 고민에 침잠 중이다.
모든 게 처음인 서른.
나는 스물일곱 겨울에 결혼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봄에 아이를 가져, 같은 해 가을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스물아홉, 집에서 가만히 육아를 했다. 눈부시게 성장하는 아이 뒤로, 오도카니 멈춰있는 나의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그리고 서른, 다시 복직을 했다.
나는 결혼이 처음이었고, 임신이 처음이었고, 휴직이 처음이었고, 육아가 처음이었고, 복직이 처음이었고, 워킹맘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매초, 매분을 살아간다고.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인생의 중대사는 여태껏 참아온 숨처럼 갑자기 몰아쳤다. 나는 외치기 싫어도 매번 도전을 외쳐야 했다. 도전 드림팀이 별거냐.
불안해서 눈물이 다 나네.
연속된 처음. 그래서 나는 불안했다. 이 모든 문제들이 오직 나하고만 관련된 것이면 모를까, 가족이란 테두리 속에서 아이를 볼모로 잡아놓고 시작된 도전이었다. 어느 날은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었고, 어느 날은 남편이 미워서 울었다. 또 어느 날은 제 처지가 안쓰러워 울기도 했었다. 이유 없이 흘린 눈물도 있었다. 그렇게 육아가 익숙해질 즈음, 복직이 다가왔다. 코로나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교육현장에 다시 적응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길거리의 아줌마는 하루아침에 2학년 6반의 담임교사가 되어 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가물가물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기저귀의 종류와 이유식 재료를 쉽게 다듬는 법뿐인데?
그래서, 다시 돌아갈래?
오늘도 역시나 학년 회의는 다른 주제로 세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목욕탕에 가는 재미를 잃었다는 말을 한 선생님이 꺼내자, 다른 선생님은 "참, 목욕탕에 가면 젊은 여자들의 몸이 진짜 예쁘더라고.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푸릇푸릇하더라니까? 나는 나이 들어서 죽죽 늘어지는데, 이거 봐, 팔뚝살이 날개니?"
출산을 겪었지만, 우리 엄마와 나를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여전히 젊은 몸이다. 주름이 지지 않은 손, 아직 매끈거리는 머리카락, 곧은 자세, 탄력 있는 피부. 결국 이것들은 시간에 따라 저절로 흐드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의 손이 주글 거리고 머리카락이 부슬거리는 날, 다시금 나의 젊은 날을 떠올리며 그때 참 좋았지-하고 쓴웃음 짓게 되리라는 것도 안다.
아, 그래서 돌아올 것이냐고. 아니, 절대로 안 돌아온다. 너무 많은 시작과 도전이, 그로부터 파생된 고민이, 그래서 불안한 나로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 불안한 마음에 갇혀버린 젊은 몸보다는 늙은 몸에 갇힌 안정된 마음이 지금으로서는 더 좋아 보인다.
그래도, 또 모른다.
그래그래, 모르지. 그때 되면 또 모른다. 고작 서른인 걸. 원로 선생님이나 우리 엄마의 나이가 되려면 두 배는 더 살아내야 한다. 그동안 나의 어떤 경험이 또 나를 요리조리 개조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쯤 되니 조금은 억울하네? 왜 안정과 젊음은 함께 있기 힘들까. 한숨 한 번 쉬어 본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불안할 예정이다.
오래전 읽었던 신경숙 작가님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된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이 구절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