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통증의 서막
어제저녁 6시, 오른쪽 위에 있는 치아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충치 네 녀석에게 묻는다. 굳이 6시여야만 했냐고. 저녁 6시는 이미 병원 가기에는 늦었고, 다음날 아침까지 참아야만 하는 시간이다. 요즘은 늦게까지 하는 병원이 많다지만, 주부에게 저녁 6시부터 잠들기 전까지가 어떤 시간인가? 저녁 밥하고 애 씻기고 애 재워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함부로 외출을 해서 치과치료를 받고 오기에는 무리다. 그 모든 과정을 남편에게 지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조금은 참을만했기에, 남편과 상의 후 아침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거 심상치가 않다. 뭘 먹을 때마다 더 욱신거리는가 하면, 자려고 누우니 그냥 참고 있기에는 묘하고 질기게 아픈 것이 '당장 일어나 타이레놀 하나를 먹고자야 하나?' 싶을 정도였기 때문. 하지만 우습게도 잠이 이겼다. 일어나서 약 먹을까? 하다가 스르륵 잠들어버린 나란 사람아. 오늘 밤만큼은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냥 갑자기 벌어진 통증 이리라, 자고 일어나면 꿈처럼 싹 괜찮아지겠지.
는 무슨. 잠이 충치에 무슨 보약이란 말이야! 간밤에 물 만난 세균들이 열심히 치신경으로 삽질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 더운 여름날의 습기에 눈을 뜸과 동시에 통증을 가늠해보니, 아 이거 어제보다는 나은데 여전히 있는 둥 마는 둥하게 느껴지는 통증. 그래서 당장 치과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이른 아침 준비를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에 가기를 꺼리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첫째, 아파서. 둘째, 비싸서. 통증이야 이미 치과에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고, 문제는 돈이다. 나 역시 치과에 가기 전 남편에게 '우리 집에 나 이빨 하나 정도 거뜬히 치료할 수 있는 돈이 있냐'라고 물었다. 남편은 내 이를 모조리 뽑아 새 이를 박아줘도 될 만큼 있으니 다녀오라고 했다. 오우, 박력.
오전 내내 육아를 전담해준 그에게 무한의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뽀뽀는 글로써 전한다. 음, 뫄!
억울한 자의 변
사실 난 하루에 세 번 양치 꼬박꼬박 하고, 저녁 양치질 후에는 치아 전체를 치실로 마무리까지 한 뒤 잠에 든다. 깨끗하게 닦은 것 같지만 치실을 하고 나면 꽤 많은 양의 플라그가 묻어져 나온다. 특히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난 날은 어우, 정말 치실이 난리가 난다. 그러니 치실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나면, 저녁에 치실 마무리를 안 하고 자기엔 상당히 찝찝해지기 마련.
그런데 어떠한 모종의 이유로 나는 충치가 참 잘 생긴다. 그래서 나는 좀 억울하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충치가 잘 생기는지 모르겠다. 음, 생각해보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달달한 빵과 과자를 참 좋아한다. 치과의사 선생님이 들으면 어이고 이놈의 환자야, 라며 등짝을 팡팡 때려줄 만한 말일지도?
신경치료의 늪
역시! 이번에도 신경치료 당첨이었다. 그간 서 너번 신경치료로 조각보처럼 모은 지식에 의하면, 치아 엑스레이의 거무티티한 부분이 충치라는 것과 그 충치가 치아 사이에 있으면 위치 상 치아의 신경부와 더 가까워서 신경치료의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신경치료는 꽤 여러 번 치과에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가운 것보다 뜨거운 걸 먹었을 때 더 아프다고요?'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저 질문을 두 번이나 하고 나에게 두 번의 대답을 더 듣고 나서야 의사 선생님이 다음 말을 이었다. '보통, 치아가 상하면 제일 먼저 차가운 음식에 반응하고, 그다음이 뜨거운 음식이에요. 이미 뜨거운 음식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신경치료를 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겁니다.'
이로써 나는 치아 관련 지식을 하나 더 얻었다. 메모하자, 밑줄 쫙, 그리고 별표. 뜨거운 거에 치아가 아프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다. 뜨거운 것을 먹고 이가 아팠다면, 통장 잔고를 다시금 확인해보도록 하자.
마취를 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위이잉 이를 갈아내는 소리가 들리고, 의사 선생님이 석션! 하기도 전에 노련한 치위생사 선생님이 나의 그득한 침을 고로록 흡수한다. 위이잉, 고로록, 여러 번의 기계소리가 들리고 나니 어느 정도 이가 걷히고 신경조직이 보였나 보다. 선생님이 가느다란 철심 같은 기구를 넣어 열심히 신경조직을 긁어내는 작업을 하다가, 짜잔, 방금 전까지 손에서 충실히 움직이던 철심을 구경시켜 주신다. 이게 내 신경관 모양이라는 설명과 함께.
선생님. 저는 신경치료 관련된 지식은 이제 그만 알고 싶어요. 신경치료 모르고 싶어요.
신경치료받아본 사람은 알만한 신경조직을 긁어내는 느낌. 뭐라고 해야 하지, 통증은 하나도 없는데 막 뭐가 내 치아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가를 계속 반복한다. 설거지를 하며 빨대 속을 닦을 때 브러시를 넣는 것처럼, 혹은 깡깡한 나무속을 깊고 뾰족한 무언가로 퍽퍽 파내는 것처럼.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느낌. 마취가 제대로 된 까닭이다. 신경치료가 마취 안 하고 받으면 까무러칠 정도로 아프다는데, 마취 덕분에 편안하게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마취가 풀리고 있다. 느낌으로 봤을 땐 썰면 세 접시가 나올 것 같았던 뚱뚱보 혀는 제 크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료 부위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집 안에 어딘가 뒀던 타이레놀을 찾아야겠다.
치과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
오늘 나의 신경치료는 몇 달 전, 두 어 번 날아온 '정기검진일' 문자를 무시한 대가다. 일 년 전 깊게 파인 잇몸을 때우는 시술을 받으며 전체적으로 검진을 받았던 터라 크게 충치는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방심하고 있었다. 충치 녀석이 그때는 안 보일 정도로 숨어있다가 일 년 동안 야무지게도 이를 파먹었다. 야, 내 이빨 맛있드나. 내가 물으니 충치가 대답한다. 그러게 처음 문자 받았을 때 치과 좀 가보지 그랬어, 이 멍청이야!
그래서 말 하나 지어내 본다. 친정엄마와 치과의사 선생님은 자주 보면 좋다. 아무튼, 아무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