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달 Aug 05. 2021

목덜미라는 순진함

까만 목덜미의 추억

12살의 목덜미 

뜨겁다. 정말 너무 뜨겁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매미의 구애 소리와 더불어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은 말도 못 하게 뜨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은 공 하나에 열댓 명이 매달려 즐거운 놀이를 했다. 숨만 쉬어도 떨어지는 땀방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20분 정도의 짧은 점심시간, 태양의 열렬함 속에서 뒹굴다 온 남자아이들의 목덜미는 검게 그을렸고 구정물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솔직히, 조금 더러웠다. 땀이 너무 불쾌해 보이는 와중에, 땀으로 절은 남자아이 하나는 옆반 아무개가 반칙을 했다며 담임 선생님께 씩씩 거렸다. 역시, 그것은 그거대로 불편했다. 그냥 잘 놀았으면 됐지 이기고 지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니, 그 나이대의 남자, 여자아이들은 필시 다툴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이 달랐으니 말이다.


28살의 목덜미

교사가 된 이후, 나는 다시금 여름의 목덜미를 마주했다. 나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5학년 아이들의 담임이 되었었다. 축구를 하기 위해 그 맛있는 밥도 대충 먹고 나가는 열정을 매일 같이 목도했다. 날씨가 여름에 가까워져도 남자아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봄과 여름 사이 친구와 함께 축구하는 맛을 제대로 들인 탓이다.


역시나,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될 무렵 교실 뒷문으로 남자아이들 한 무리가 씩씩 거리며 들어왔다. 연이어 2반의 어떤 남자아이 하나를 나에게 고발한다. 짧게 자른 머리는 진즉에 땀에 젖었고, 목 뒤는 햇빛에 검게 그을린 추억 속의 그 모습으로 말이다.


"선생님! 2반 애가 핸들링해놓고 아니라고 박박 우겨요!"


애매하다. 너 왜 우리 반 애들이랑 축구하면서 핸들링했냐고 내가 가서 우길 수가 없는 노릇 아닌가. 방과 후에 2반 담임선생님과 얘기 한 번 해보겠다며 적당히 구슬려 자리에 앉힌다. 남자아이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짝꿍이 되는 여자 아이들이 오만상을 한다. 야, 땀 튀기지 마! 라든가, 아, 땀냄새! 라든가 하는 식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풉, 입에서 공기처럼 흘러가버리는 웃음소리가 세어 나왔다. 그 또한 내 추억의 모습이다. 시간은 흘렀어도 역사가 구한 공놀이의 재미가 여전하듯, 한여름날 축구에 미쳐있는 10대 남자아이들의 모습도, 그런 남자아이들을 보면서 투덜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도 여전하다.


30살의 목덜미

그런 목덜미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외출을 했던 남편이 돌아왔다. 문득 눈이 꽂혀버린 남편의 목덜미가 새까맸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라서 더 눈에 띄었다. 어쩌면 거기만 그렇게 타버린 걸까.


남편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귀여웠다. "여보, 목 뒤가 엄청 탔네? 축구하는 초등학생 목덜미 같아."라고 한 마디 하자 남편이 그렇게 탔냐며 머쓱한 듯 목 뒤를 매만진다.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뜬금없게도 말이다. 남편의 새까맣게 타버린 목덜미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 나 조금 이상한 취향을 가진 건가, 스스로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추억이라는 선물상자가 뚝 떨어진 느낌. 그 상자를 열어봤더니 아무 실체가 없는 따뜻한 빛이 한아름 세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뜨거웠던 여름날의 매미소리와 이리로 공을 패스하라는 친구의 눈짓, 씩씩거리던 어린날의 분노와 아침에 엄마가 챙겨준 얼음물 한 잔에 녹던 마음이 만들어낸 그런 빛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이제는 잊어버렸던 혹은 잃어버렸던 그런 빛이기도 했다.


목덜미와 순진함

내가 순진했던가, 순진했던 것도 같다. 허술한 거짓말로도 엄마 아빠가 나에게 속을 거라는 오만도 순진이라면 순진이었다. 친구와 싸웠을 때, 쪽지에 떡볶이 같이 먹자는 말만 써도 화해를 할 수 있었던 얄팍한 미움도 순진이라면 순진이었다.


당연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여전히 떡볶이 한 사발로 친구와 화해를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문구점에서 1000원짜리 문구세트를 선물하던 나는 어느덧 유명 브랜드의 8만 원짜리 핸드크림을 선물하는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바뀐 게 문제 될 것이 있나? 없다. 그러니, 나는 삭막해졌어, 라는 투의 자기반성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시간을 여행하며 나이가 들어갈 뿐이다. 숨기는 것이 편해지고, 귀찮은 건 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때로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래도 가끔은 버스가 멈추지 않는 정류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싫지만 추억은 하고 싶을 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조망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정류장의 투박한 나무의자에서 한때 나의 순진함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엄마가 사준대로 입던 옷, 샤워하기 전 몸에서 나던 구수한 흙냄새, 엄마가 전날부터 얼려둔 페트병 속의 얼음물, 서로의 집으로 전화할 때 쉼 없이 진동 대던 가슴, 그리고 뜨거운 여름날 새까매진 꼬마 아이들의 목덜미.


그날 남편의 목덜미는 나의 순진함이고 정류장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한 질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