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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Jul 15. 2021

이른 방학을 했습니다.

<안내> 6반 휴점 기간 : 7월 16일~8월 16일

벤자민 6반의 시간은 한 달 빠르게 흐른다.


아이들은 사물함과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제 짐들을 꺼낸다. 부지런하게 짐을 가방에 옮기고 쓰레기를 정리해서 버린다. 책상에 뿌려진 소독제로 개인 용품들을 야무지게 닦고, 바닥까지 쓸고 나니 밥 먹을 준비가 되었다. 오늘 점심은 카레라이스와 치즈돈가스. 마스크를 벗고 밥을 먹기 때문에, 점심시간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은 한 학기 중 가장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지고 하교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그제야 내가 정리를 시작한다. 한 학기 동안 처박아 놓을 줄 만 알았지 정리할 줄은 몰랐다. 역시, 집에서 살림 못하는 티를 여기서도 팍팍 낸다. 다양한 학습준비물과 여러 종이들을 꺼내고 분류해서 노란 바구니에 담아 책장에 착착 정리했다. 음, 보기 좋았다. 진작할 걸! 하며 후회하지만 나는 안다. 나란 인간은 분명 2학기 때도 처박아 놓을 것이다.


여기저기 정리를 하고 나니 교실은 전반적으로 방학을 맞을 준비가 끝났다. 참, 하나 남았구나! 부랴부랴 칠판 꼭대기에 있는 날짜를 개학일로 돌려놓는다. 6반의 시간은 한 달 먼저 빠르게 흘러가 있었다.


칠판 꼭대기, 내 손과 가장 먼 곳의 날짜 돌림판. 내 손과 가장 멀어서 내가 가장 게으르게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어제'에 산 적도 많다.


거꾸로 된 8을 고치지 않고 버틴 게 4년 째다. 다른 사람들이면 당장 거꾸로 돌려서 구멍을 다시 뚫을 법한 일도 나는 미룬다. 이쯤 되니 8이 고맙다. 넌 참 멋진 숫자다.


바깥은 더운데 교실은 살얼음판


코로나 4단계가 되었다.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훌쩍 넘어선 상황. 덕분에 이번 주 대부분의 학교들이 원격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정부에서는 특별한 조항 하나를 추가해놓았다. 바로, 방학이 인접한 학교는 학교 사정에 따라 등교 수업을 유지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목요일, 오늘이 방학이므로 교육청 고시에 따라 12일부터 원격수업을 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했다. 결국 1, 2학년만 등교 수업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주는 유독 덥기까지 했다. 교실에 에어컨을 틀어놔도 주기적 환기를 위해 창문을 조금씩 열어 놓고 수업해야 했으므로, 교실은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 스물네 명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방역을 해야 하는 나는 살얼음판에 있는 기분이었다. 바깥은 푹푹 찌는데, 정작 마음은 살얼음판 위였으니 그 온도 차이가 극명해서 정신이 혼미했다.


이번 주에 내가 가장 신경 써서 한 일은 친구들이 너무 좋은 녀석들을 친구들과 떼어놓는 일. 만화 속 악역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친구랑 거리두기 하세요.'

'친구한테 물건 빌려주지 마세요.'

'화장실에서 친구랑 놀지 말고 바로바로 오세요.'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으세요.'

'마음대로 화장실 가지 말고, 선생님한테 허락받으세요.'


월요일부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들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들을 검열했다. 누군가의 본능까지 통제해야 한다는 건 정말 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살얼음판 위, 혹여나 내가 게을러서 생긴 균열로 아이들이 물속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덕분에 지금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올라온다. 작년에 아이 모유 수유하랴, 이유식 다 해먹이랴, 몸이 축났을 때 났던 다래끼가 이번 나흘 만에 올라왔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대만큼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오늘 1학기 마지막 알림장을 적으며 학부모님께 써 드린 편지의 한 구절이다. 1학년을 허둥지둥 지나온 아이들은 올해 반쪽짜리 등교 수업을 계속했다. 내가 '반쪽짜리'라고 표현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아이들이 35분 단축수업과 5분 쉬는 시간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 모둠학습이나 놀이학습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어쨌거나 성장해주었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빈틈이 많은 공부였다. 짧아진 수업시간과 간소화된 학습활동으로 기존의 즐거운 수업을 하기가 어려웠다. 원래는 모둠 수업이나 놀이학습을 진행해야 하는 내용도 교사 전달 위주의 수업과 개인 놀이 활동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친구들과 부딪히며 직접 몸으로 배울만한 기회가 적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대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 학습적인 면을 제외하고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습관이 개선되었다는 건 정말 좋은 발전이었다.


기특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만큼은 제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 어른들은 제자리일지언정, 아이들 만큼은 열심히 헤엄쳐 한 단계 위로 나아갔다는 것이.


평범한 안녕을 꿈꾸며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방학은 왜 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더워서?' 맞다. 오늘 정말 덥다. 앞으로 더 더워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며 ebs나 보고 책이나 읽으며 수박이나 먹으라지!


그렇게 푹 쉬고 나서 다시 만날 날을 꿈 꾼다. 2학기. 전면 등교가 계획되어 있다. 휴가철이 끝나고 2주 뒤가 개학이다. 아주 위험한 시기이지만, 고질적인 아이들의 돌봄 문제와 배움의 지속성을 생각하자면 학교가 영영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비록 마스크와 함께겠지만, 여기에서 스물네 명이 다시 공부하는 것을 꿈꾼다. 자리의 주인들이 오늘 가져갔던 짐을 다시 챙겨 와 제 자리를 꾹꾹 채울 것을 기대한다.


그 평범한 것들을 위해 다시금 교실을 정비한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 같다. 교실 창문과 앞, 뒷문을 걸어 잠근다.


6반은 앞으로 한 달간 휴점이다. 그동안 모두들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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