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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Jul 04. 2021

바야흐로 여름. 초파리의 계절.

초파리는 과일을 좋아해.


지난주. 호기롭게 사 왔던 복숭아에 초파리가 생겼다. 아기 간식 때문에 늘 과일 몇 가지를 구비해두우리 집은 과일 쓰레기가 제법 나오는 편. 꼬박꼬박 버리다가, 이번 주는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게으름 좀 부렸더니 사달이 났다. 녀석들은 제 대단한 번식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뒷 베란다 분리수거통 밑에 초파리 왕국 비슷한 걸 만들어 놓은 것이다.  


초파리 박멸작전 (1) 쓰레기 없애기


초파리의 일대기를 두 눈으로 목도하자, 기분 탓인지 온 몸이 근지러웠다. 무언가 나를 타고 오르는 듯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리 부부는 일단 이 처참한 광경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그 마음 못 먹은 이가 하나 있었으니, 곧 20개월 되는 딸이 되시겠다. 입으로는 "으, 지지" 하면서 전혀 지지하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녀.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라 말할 수 있겠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제 호랑이 인형을 안 고와서 엄마 등에 매달렸다가 제 아빠 다리에 매달렸다가. 너무 산만하게 굴길래, 거실에 좀 가 있어! 하고 날 선 목소리를 내니 입을 비쭉거리며 끝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그래도 이 작업, 멈출 수 없었다. 분리수거 봉투를 부지런히 정리해서 남편이 나가면 나는 그가 움직였던 자리를 물티슈로 박박 닦는다. 떨어진 잔해물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면 으레 귀여운 방해꾼이 또 나타나 저도 해보겠다고 물티슈 한 장을 뽑아 바닥에 문댄다. 제발, 그거 지지라고.....


귀여운 방해꾼의 지분은 0.1%였던 '남편이 지나간 길목 청소'를 마무리했다. 자, 그럼 이제 그곳만 남았다. 쓰레기가 있던 최초의 곳. 초파리 녀석들이 제 생명력을 감히 뽐냈던 곳. 초파리의 에덴동산. 대망의 뒷 베란다. 최초의 아담과 이브 초파리는 과연 누구였을까.


초파리 박멸작전 (2) 초파리 에덴동산 없애기


초파리를 의도치 않게 키웠던(?) 사람들이면 보았을 참깨 천국. 초파리의 알인지 뭣인지는 참깨랑 어지간히도 닮았다. 여담으로 이 작업을 모두 끝내고 딸아이 점심을 차려주는데, 참깨 통은 보기도 싫더라는 이야기를 잠시 양념처럼 뿌린다. 아무튼, 남편은 그 참깨를 물로 싹 쓸어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나는 그 옆에서 혹여나 남편이 놓쳤을 만한 장소에 있는 초파리 잔당들을 물티슈로 처리한다.


남편이 세제를 풀어 뒷 베란다의 바닥 타일을 삭삭 닦고 물을 뿌려 거품을 없앤다. 하수구 구멍에 락스를 살짝 뿌린 뒤 잠시 기다린다. 그 사이에 근처 벽이나 창틀에 초파리의 흔적이 없는지 다시 살핀다. 꼼꼼한 확인이 끝나면, 락스를 뿌려두었던 하수구에 물을 흘려보낸다. 지긋지긋한 녀석들. 작업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다.


드디어 눈에 띄는 초파리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제 먹고 잘 씻어두었던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이용해 초파리 트랩을 만든다. 친정에서도 초파리가 생기면 종종 써먹던 방법이었다. 야무지게 만든 초파리 트랩을 뒷 베란다 어디쯤에 보란 듯 전시한다.


선전용이다. 이 집 뒷 베란다에 알을 까는 초파리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깨끗하게 손을 씻고, 그 모든 과정을 조용히, 묵묵하게, 그러나 호기심 넘치게 바라보던 딸을 안아 올리면 모든 게 끝난다.


후, 우리는 드디어 인간의 영역을 초파리로부터 되찾을 수 있었다. 길고 긴 고난의 시간이었다. 물론 심정적으로. 물리적으로는 3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부부는 팀 플레이


남편의 고생한 등을 바라본다. 고난을 함께 한 전우애가 싹튼다. 신혼 때, 가수 이적이 어떤 예능에 나와 부부는 팀플레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며 나는 남편에게 어쩌고 저쩌고 했다. 그 어쩌고 저쩌고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팀플레이라는 말에는 사랑이 없어. 무슨 스포츠팀도 아니고 그런 말로 부부 사이를 얘기하는 게 말이나 돼? 나는 그 말 별로야.


이야, 신혼의 호기로움에 박수를 보낸다.


요즘, 나는 부부가 팀플레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한 사람이 기저귀를 갈고 있으면 나머지 하나는 이유식을 데우는 팀플레이. 특히 오늘도 그랬다. 한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나머지 하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는 팀플레이.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고생한 남편이 말한다. "오늘 점심은 내가 떡볶이 살게."


난 정말. 이 남자랑 결혼하기 참 잘했다.


잠시, 초파리의 눈으로 우리 부부를 바라본다. 초파리들 눈에는 저승사자 부부쯤으로 보였으려나. 작은 미물들의 전희 끝에 만들어진 소중한 알들이 물에 휩쓸려 하수구 구멍으로 내려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픈 초파리 부모들도 있었겠지? 갑자기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 생각나면 너무 지나친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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