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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Jul 20. 2023

선생님 그 발걸음 뿐이라 미안합니다.

몇 해 전, 4년 차 교사일 때의 일이다. 20대 중반의 젊은 교사였던 나는 첫 학교를 떠나고 맞이한 두 번째 학교에서 1학년과 학폭업무를 담당했었다. 분명히 지난해에는 학폭이 단 한 건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던 인수인계자의 말과는 다르게 그 해에는 학폭이 5번이나 터졌었다. 


그리고 난 같은 해 통화녹음기능을 켰다. 


이유는 하나다.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남자 학부모님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학교를 고소하겠다.'라고 하셨다. 아이의 일이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고 여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난 두려웠고 녹음 기능을 켤 수밖에 없었다. 


길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아이의 학부모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분은 나를 본 체 만 체 턱을 흥, 들고는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죄인인 것만 같았다. 내가 그분의 자녀를 해한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했나?


나는 우울했다. 


당시 결혼 전이었던 나는 동료교사에게 종종 말하곤 했다. 


"진짜 쉬고 싶은데 못 쉬어요. 지금 당장 임신이라도 해서 출산휴가나 들어가 버릴까요?" 




내 아이는 정말 소중하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친구에게 물려온 내 아이의 멍을 보는 그 며칠 동안 샤워를 시킬 때마다 가슴이 만 갈래로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 죄송해요."


내 아이가 물린 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는 문을 빼꼼 열고 이 말부터 하셨다. 


목소리를 한껏 낮추시고 한참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그 풍경 속에 속한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 묘한 기시감.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놀이터에 가보자. 아이들 5명만 모여도 시끌시끌하다. 없던 일도 생긴다. 어른보다 몸과 마음이 미숙한 아이들이니 문제는 항상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놀이터에 함께 간 어른 보호자는 항상 입과 몸이 바쁘다. 물론 안 그런 보호자도 있다.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지 마.'

'앞 좀 보고 뛰어다녀.'

'그네 꽉 잡아.'


그렇다면 교실을 들여다보자. 적게는 스무 명 남짓, 많게는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글우글 모여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한다. 


하물며 놀이터도 저러할진대 교실은 안 그럴까. 놀이터보다 더 많은 규칙과 규범과 통제가 있다. 


있어야만 한다. 


규칙과 규범을 지켜야 우리 모두의 안전이 보장되며 그 테두리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창의? 인성? 자유? 다 좋은 말이지만 그 단어가 앞서 나오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가. 



점심시간.


식당으로 이동해야 하는 그 바쁜 시점에 기분이 나쁘다고 삐져서 교실 뒷문에 시위하듯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 


식당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교실에 두고 간다면 아동학대다. 


식당으로 가자고 아이를 끌고 가면 그 역시 아동학대다. 


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고픈 배를 끌어안고 선생님과 친구를 기다린다. 


아아, 아동학대다. 


그날 나는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아동학대'의 늪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아동기분상해죄라고. 


분명, 도에 지나치는 폭력을 교사가 있다면 그건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밥을 먹지 않겠다고 모든 이에게 폐를 끼치는 그 아이를 교사가 어쩌할 방법이 없도록 손 발을 다 묶어 놓은 작금의 교실이 과연 옳은가. 



나의 경험은 다른 선생님들의 경험에 비하면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다른 반 아이의 거짓말로 1년 내내 아동학대 조사를 받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복도에서 위험천만하게 뛰어내려오는 다른 학년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고 교무실에 불려 가 민원인인 학부모와 아이에게 사과를 한 나의 후배. 


지속적으로 교사의 이름을 가지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남자아이들에게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고 그저 교권 관련단체와 통화를 하며 눈물로 속을 달랬던 나의 선배. 


체육시간에 줄 좀 잘 맞추자고 한 마디 했더니 '시발.'이라며 교사가 다 듣게 한 욕을 듣고 있어야만 했던 나의 동기. 


얼마 전 교실에서 6학년 남자아이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서울 양천구 모 초등학교의 동료 선생님. 


그리고 매일같이 교사 커뮤니티에 쏟아지는 여러 교권침해 이야기들. 


나는 오늘도 나의 행동을 검열한다. 


고소당하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저럴 땐 그냥 확 와사바리를..."


남편이 뉴스를 보며 분노한다. 


"여보, 그거 아동학대야."


내가 대답한다. 




선생님.


교실에서 생을 마감하셔야 했던 그 마음이 너무 비통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오늘 하루종일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빠진 앞니 때문에 한껏 귀여워진 저 얼굴과 


오물오물 밥을 먹는 귀여운 입술과 


선생님, 부르는 저 해맑은 목소리와 


나의 명치밖에 오지 않는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하염없이 주는 사랑을 등지시고 


떠나야만 했던 당신의 슬픔을 나는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요, 이기적이게도 아주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저 나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므로 나는 불행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신 당신의 그림자를 우리는 밟습니다. 


선생님. 


그 발걸음뿐이라 미안합니다. 




서울에 사는 교사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오늘 서이초에 간다면 내 몫까지 국화꽃을 놔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친구는 흔쾌히 그러리라 대답했다. 고마움을 담아 보내준 키프티콘은 차마 자신이 쓸 수 없어 선생님을 기리는 곳에 생수를 사다 놓겠다 한다. 


한숨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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