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가 카페에서 주무시는 동안, 100일간 머리에 담아 뒀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마저도 얼마나 잘지 알 수 없기에 내 손가락은 화면을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고 있다.
육아는 불확실의 연속이다.
아이가 나이 듦에 따라 불확실의 가능성이 낮아지기에 점차 (육체적으로) 편해지고는 하는데 불확실성이 영 사라지는 건 아니다.
첫째의 경우는 요즘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하원부터 잠들기 전까지 거짓말 안 보태고 50번 정도 한다.
참으로 성실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둘째의 경우는 어제 6시까지 죽 자주 었다. 몹시 박수! 하지만 문제라면 내일은 새벽 2시부터 빽빽 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주는 대로 다 먹더니, 내일은 입에 젖병만 가져가도 혀로 밀어내기 바쁠 수 있다.
뭐, 불확실의 요소는 이 아이의 24시간 통째로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첫째 때는 그걸 몰라서, 아니 알지라도 경험이 전무했으므로 육아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나는 여태껏 우리 첫째가 신생아였던 시절 살던 집의 안방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아직도 우는 아이를 안고 어르던 늦여름의 그 순간, 같은 교직에 있던 유명한 랩 하는 친구가 경기도교육청 광고에 나오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육아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란 건 큰 선물이었다.
둘째를 키우는 나는 굽어지던 등과 어깨도, 운동할 짬이 없어 아이가 노는 그 짧은 10분 동안 후다닥 해치우던 스트레칭도, 늘어진 배도, 무슨 옷을 입어도 아줌마 같던 모습도, 화장기 없는 칙칙한 얼굴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예전으로 비슷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이미 포기가 편해진 사람이라서 그렇다.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문을 닫고 용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것을, 머리를 하루에 두 번 감는 것을, 친구들을 만나 밤에 술 한 잔 하는 것을, 그 외에도 참 많은 것을 포기했다.
포기라. 포기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매정할까.
첫째 돌까지의 시간은 더는 그것들이 전처럼 자유롭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관성이라 나는 더 이상 그리 힘들지는 않다.
둘째를 낳고 포기한 것이 있다면 오롯이 첫째에게 할애하던 나의 시간이다.
전처럼 그리 아프지는 않다. 아프긴 하지만 금방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론, 잠든 첫째의 얼굴과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며 글썽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자란 나의 품에서 아이 둘이 크고 있다.
그 품이 온 세상인양 말이다.
모자라도 괜찮다고 아이들이 말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첫째가 최근 나에게 했던 말을 적으며 글을 갈무리해 본다.
"유치원에서 잘 지냈어?"
"응! 엄마는 (뒷짐을 지며) 오늘 동생 돌보는 일 잘했어?"
다정한 네 말이 나의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