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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나무 Feb 16. 2024

이제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작은 아들의 예비군 훈련이 구례 훈련장에서 있다고 한다. 자가용으로 35분 거리를 버스를 이용하면 한 시간 반이 걸린다며 내게 구조 요청을 보낸다. 흔쾌히 내가 모셔다 드리겠노라 약속했다.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미어터질듯한 군복을 욱여넣으며 아들은 구례로 향한다. 구례는 크고 작은 사찰이 많은 여유로운 고장이다. 아들 훈련받는 동안 구례 돌아보기나 해야지. 도착해서 막상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니 다들 두세 번씩 가본 곳, 별로 감흥이 일지 않는 곳들이다.


  누군가가 언제 가도 좋은 곳이라며 추천해 준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떠올랐다.

벚꽃이 필 때면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빌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곳, 불일폭포 올라가는 길에는 돌계단이 너무 많아 무릎 안 좋은 나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특히나 봄철에는.


 얼마 전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며 지인이 추천해 준 카페에서...

유리창 가득 따뜻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면 엄마 무릎 베고 뒹굴거리던 어릴 적 대청마루가 떠오르는, 와! 이런 카페도 있네 하면서도 좋다~ 하는 순간은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왜 이 카페 시스템은 이럴까 이렇게 바꾸면 고객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텐데, 여기 구조를 이렇게 바꾸면? 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카페를 나와 가족이 들려 식사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입해야 할 물품 목록과 집에 도착해 차례차례 해야 될 일을 떠올리며 마음이 분주했다. 이게 뭐야!...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쉬러 왔잖아, 머리 비워~! 하면서도 그날도 그랬었다.


  안개비가 가득한 길을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텀블러 속 향 좋은 커피와 함께 천천히 조용히 달린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이게 뭐라고. 호젓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이 언제 있었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볼 겨를도 없이 왜 허덕거리며 살았을까? 내게 맡겨진 일에 나는 최선을 다하면 살아왔어 라며 떳떳하게 말하기 위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버티는 삶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삼십 분도 안 걸리는 곳인데, 안개 낀 산사에 도착해서 천천히 둘러보고 계곡에 앉아 멍 때리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가 차를 세우고 지나쳐 온 길을 다시 걸어보기도 하고, 사람들은 만개한 벚꽃 길만을 기억하겠지만 벚나무는 봄에는 화려한 벚꽃을, 여름이면 우거진 녹음을, 가을이면 빨간 버찌와 울긋불긋 단풍 든 낙엽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꽃이 진 여름과 가을에도 벚나무는 여전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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