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업 때 그린 은행나무의 수피가 너무 어려웠다. 나름 열심히 그려보는데 수피의 굴곡과 음영을 표현하긴 능력밖의 일이었다. 안 되겠다. 다른 나무를 그려야지 주말 나 혼자 쌈지 숲을 찾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십여분 헤매다 보니 앙증맞은 청미래덩굴이 보인다. 이걸로 그려야겠다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잎사귀를 하나 꺾어 돌아왔다. 모니터에 사진을 크게 띄우고 비율과 각도를 살펴가며 열심히 그렸다. 잎맥이 자연스럽지 않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물을 적셔 칠하고 최대한 비슷한 색으로 조색하여 칠해본다. 청미래덩굴 잎사귀에 반사되는 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건지... 모니터 속 잎사귀의 반사광은 하늘색을 띤 회색에 가깝다. 색을 만들어 반사되는 부분을 살짝 건들어본다.
오 마이갓!! ~~~ 베레부럿따~! (망쳐버렸다는 전라도 사투리)
이 작품을 도저히 제출할 수는 없다. 결국 한 작품을 건너뛰기로 한다. 추석을 지내고,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 부모상, 가을이 되어 시작되는 작가와의 만남과 각종 전시회, 문학수업으로 백수는 날마다 고되고 바쁘다.
수업시간에 맞춰 만난 수이샘을 만나자마자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물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핸드폰의 밝기 정도, 모니터가 표현해 내는 RGB의 비율에 따라 다른 색감을 나타낼 수도 있으니 육안으로 관찰하는 현장스케치가 필요하다. 사진은 보조용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다. 수이샘은 이 더운 여름에도 매주 순천만공원으로 스케치를 나가신다고 하셨을 때 의미를 두지 않고 흘려들었는데, 이래서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한다....ㅋㅋㅋ
오늘은 컨디션도 난조인 데다 늦게 도착한 탓에, 동기들의 사진 중 노각나무를 얻어 그리기로 했다. 현장에서 관찰하지 않은 탓에 약간 어두운 사진을 건네받고 보니, 잎의 순서와 앞뒷면이 구별이 잘 되지 않아 몇 번이고 확대해서 살펴봐야 했다. 집에 와서 컴퓨터로 노각나무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잎사귀 가장자리가 물결모양의 톱니형태이다. 더욱 매력적인 건 노각나무의 수피가 사슴뿔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하여 얻은 이름이 녹각나무, 발음하기 어려워 사람들이 노각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이며, 나무의 목재가 단단하여 스님들의 목기나 제기로 제작, 사용된다고 한다. 꽃은 산딸나무를 연상시키듯 하얗고 커다란 꽃이 피는데 꽃잎은 다섯 장이다. 동기의 사진을 얻어 내 수준에 맞게 작은 가지를 선택해 그려놓고 보니 죄잭감이 든다. 내일은 이렇게 예쁜 우리나라 토종 노각나무를 찾아 쌈지숲에서 길을 잃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