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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현 Apr 21. 2023

불확실한 미래를 그린다는 것

비즈니스에 만연한 함정들 2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알 수 없는 미래,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필자는 앞서 비즈니스란 굉장히 불확실하며 이를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어떤 사상이나 태도에 관한 것이 아니며, 경험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한 논증이다. 물론 이 또한 100%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가 불확실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상정할 것이며, 필자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태도와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주장을 이어가고자 한다.


실험과 협업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무작정 인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실험적 태도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사회적 유행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그냥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신중하게 자신의 직관을 테스트한다.”라고 지적했다.


 올리비아 시보니는 더 나아가 여기에 ‘수준 높은’ 토론을 추가할 것을 권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분석은 거의 항상 선결 조건이고(분석의 대상, 데이터의 선결조건인 테스트/실험 또한 마찬가지이다) 좋은 프로세스(토론)를 통해 활용된다. 이 토론의 근본적인 목적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편향들(자기 과신, 집단사고, 확증 편향 등)을 극복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편향과의 개인적인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나쁜 결정을 막기 위한 집단적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결과란 선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릿이 필요하다.

 그릿(Grit) 이란, 미국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가 주창한 개념으로 열정과 결합된 끈기라 할 수 있다(그녀가 주장하는 열정이란 ‘지속적 열의’를 뜻한다). 이해한다. 이미 그릿을 아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성공에 빗대어 생겨난 개념을 사회적 현상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일 수 있다. 또한 초기 성과가 불분명한 마케팅은 당사자들의 우려를 가중시킬 수 있으며, 태생적으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모호성 회피 성향 (ambiguity aversion)'이라고도 하며, 미지의 위험보다는 계량적으로 파악된 위험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그릿은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들을 통해 대부분의 성공적 변화는 처절한 물밑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티핑 포인트]에서는 사회적 변화, [아웃라이어]에서는 개인적 변화를 다룬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와튼 스쿨의 교수인 애덤 그랜트 역시 그의 저서 [오리지널스]를 통해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독창성을 보여준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창출해 낸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애덤 그랜트는 뒤이어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로 몇 가지 아이디어만 생각해 내고 완벽해질 때까지 다듬고 수정하는 데 집착하는 행위를 지적한다. 맥락 상 그는 끈기보다는 다량의 아웃풋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이 또한 끈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또한 첨단 기술 분야의 마케팅 전문가 제프리 무어의 이론에 따르면, 제품의 수요는 ‘캐즘’이라는 깊은 단절 구간을 지나며 급격히 확산된다(정확히는 대량판매가 가능한 시장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물이 100도씨가 되면 단박에 끓어오르듯 성공적인 마케팅 또한 그 임계점을 넘어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예측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변화는 비교적 단기간에 찾아올 수도 있으며 엄청나게 긴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 혁신 확산 이론(Rogers, Everett M. (1964), Diffusion of Innovations, Glencoe: Free Press), 캐즘 마케팅(Crossing the chasm, Geoffrey A. Moore).


 이제 우리는 체계적인 테스트와 밀도 높은 토론이 마케팅의 성공률을 높여줄 것이며 충분히 공들이지 않은 성과는 운이 따랐을 뿐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장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성공까지의 시간을 줄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자신은 평균 이상의 창의력을 갖춘 특별한 사람일 거란 착각과 함께.*

자기 과신 : 대체로 우리는 자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 번뜩이는 아이디어조차도 여러 미사여구와 같이 ‘섬광처럼 떠오르거나’ ‘불꽃이 튀거나’ 하는 방식으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저명한 과학저술 작가 스티븐 존슨은 그의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유레카!’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레카 모먼트’도 유동적 네트워크와 느린 예감(토론과 장기간의 학습)의 결정체다. 그는 맥길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케빈 던바(Kevin Dunbar)의 연구를 근거로 “혁신의 시작 지점은 현미경이 아닌 회의 탁자”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혼자 일할 경우 아이디어는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편견 속에 갇혀버린 채 발전하지 못할 수 있다. 집단과의 대화를 통한 사회적 흐름은 그런 개인적인 고체 상태(맥락상 ‘경직된 상태’로 해석할 수 있겠다)를 유동적 네트워크로 바꿔준다.”라며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Dunbar, Kevin. “How scientists build Models: InVivo Science as a Window on the Scientific Mind.”, 1999


 또한 그는 찰스 다윈의 예를 들며 ‘유레카!’는 축적된 학습과 기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윈의 아이디어는 현재 진행으로 생각하는 두뇌와 과거에 일지에 기록한 내용의 관찰로 이루어진 이중주를 통해 등장했다. 다윈은 1838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던 순간에 위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유레카!), 1837년부터 그의 공책에는 모든 핵심 개념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다윈은 퍼즐의 조각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 조각들을 올바른 형태로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Gruber, Howard E., Charles Darwin, and Paul H. Barrett. Darwin on Man: A Psychological Study of Scientific Creativity. New York: Dutton, 1974.


 축적된 학습과 충분한 토론 없이 ‘불꽃이 튀는 순간’을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오만이다. 재능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힘들지만, 재능론에 빠진 사고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통제 불가한 외부 요인을 방패로 삼는 건 그저 쉽고 간단한 변명일 뿐이니. 물론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떤 접근 방식도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동전 던지기가 아니다. 학습과 협업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있다.


 일각을 다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멀리 내다보는 것이 비현실적 여유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장기적으로 조망하고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쩌면 이 문제는 선택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고장 나지 않은 나침반은 한쪽만을 가리킨다.

비즈니스엔 모호한 상황이 많아 심리적 편향들이 끼어들기가 매우 쉽다. 그뿐인가. 당장 우리 눈앞엔 매출 지표와 개인 성과, 급변하는 트렌드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 환경들은 우리의 시선을 흩트려 종종 잘못된 길로 이끈다. 그러니 눈앞의 데이터나 성과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지금의 방향이 맞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또한 실험과 협업을 통해 작은 실패들을 이겨내며 목적지로 나아가야 한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면 길을 헤매기 마련이다. 좋은 글엔 분명한 주제가 존재하듯, 좋은 비즈니스 또한 하나로 관통하는 심지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관되게 나아가는 태도다. 방향이 계속 바뀌어서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고장 나지 않은 나침반은 한쪽만을 가리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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